강한 야당 - 고비마다 ‘야성’ 강조해 고립 자초
집토끼 - 영남·보수만 바라보다 ‘역포위’
안보 - 북한 문제만 나오면 ‘경계론’ 목청
최근 한나라당은 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내정하는 등 당 개혁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일 제천 연찬회 이후 혁신위원장을 둘러싸고 당내 논란이 이는 등 잠시 호흡이 길어지는가 싶더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혁신위는 이후 당내 혁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짠다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 핵심은 한나라당 내에 잠재해 있는 혁신에 대한 ‘두려움’을 잡아내는 것인 듯하다.
그 동안 한나라당 내에는 뭔가 개혁을 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망령처럼 나타나는 콤플렉스가 광범하게 퍼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표현은 여러 가지로 존재했지만 꼽자면 크게 3가지 정도다. 바로 강한 야당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한 야당 콤플렉스, 산토끼 잡으려고 하다가는 집토끼를 놓친다는 전형적인 영남권 의원들의 논리도 콤플렉스를 넘어 거의 병적이다. 또 때만 되면 나와서 한나라당 개혁파 골치를 썩이는 북한 문제도 한나라당 식 레드 콤플렉스다.
정치전문가들은 감히 이들 세 가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2007년 대선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첫번째 콤플렉스 ‘야성(野性)이 뭐길래’ = 21일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2주년을 기념해 대통령을 격려하는 편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소속 의원들에게 노 대통령의 선정도 물어봤다. 이는 그동안 ‘네거티브 정치’에서 ‘포지티브 정치’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당 안팎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호평도 잠시, 이규택 상임운영위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야당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영남권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이것이 고비고비마다 한나라당의 발목을 붙잡았던 강한 야당론이다.
강한 야당론의 역사는 꽤나 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야당이 된 때부터 시작됐다. 97년 대선 직후 김윤환 의원이 ‘강한 야당론’을 주창한 바 있고, 98년 8월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전총재는 강한 야당론과 강한 리더십을 주창해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한나라당에 ‘발목잡기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찍힌 근저에는 대여투쟁을 강조하는 강한 야당론이 버티고 서 있었다. 흐름은 면면히 이어져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후 강한 야당론은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아직도 여당에 유화적으로 나간다 싶으면 어느 의원이든 꼭 나서서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 ‘강한 야당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성토를 늘어놓기 십상이다. 153석까지 가지고 있던 거대 야당으로서 충분히 강했지만 결국 그 강함 때문에 실패했으면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현 부대변인은 “당시 한나라당은 김대중 김영삼 등 카리스마적 야당 지도자가 끄는 강한 대여투쟁을 하는 야당밖에 본 적이 없었고 결국 그 모델을 따랐던 것”이라면서 “DJ, YS 시대에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야당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거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강한 야당론을 대치하는 개념으로 나온 것이 정책정당론이다.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책정당론도 어떤 면에서는 강한 야당의 ‘새끼 콤플렉스’라고 부를 만하다.
정치전문가인 박성민 대표는 “강한 야당론보다 더 심각한 것이 바로 정책정당 콤플렉스다. 지난 대선 때에도 국가혁신위를 만들어서 정책을 내놓는 등 한나라당의 정책적 준비가 미흡하다고 할 수 없는데도 항상 정책정당 디지털 정당을 말한다”면서 “정책은 제품설명서같은 것인데 대중들이 설명서 보고 제품을 사느냐”고 반문했다.
권철현 의원도 “지난 대선 때에도 개혁적 보수로 노선을 정리하고 국가혁신위를 만드는 등 논의는 지겹도록 했는데 이번에 또 혁신위를 만들어서 논의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와 실천력”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콤플렉스 “집토끼를 지켜야 산토끼도 잡지” = 집토끼 콤플렉스는 지역과 계층, 그리고 이념성향 모두에 적용된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계층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이념적으로는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집토끼다. 이들을 일단 지키고 난 이후에 소위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집토끼론의 논리다.
최근에는 이 콤플렉스가 더욱 강화되는 현상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중산층 이상을 대변해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중산층의 파괴 및 영남권 역포위 현상으로 지지층이 축소된다는 위협감을 받고 있고, 이 때문에 기존 지지층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축소되려고 하니까 더욱 집착하고, 집착하다 보니 중간에 위치하는 지지층들은 외면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
지난 연찬회에서도 표현은 달랐지만 바로 이 ‘집토끼 콤플렉스’를 타파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살 길이라는 논리가 많이 주장됐다.
여의도연구소 발제문에는 보수성향의 사람들만 대변할 것이 아니라 중도 쪽으로 몸을 옮겨 보수를 중도 쪽으로 견인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를 집토끼론에 대입해 본다면 산 쪽으로 몸을 옮겨서 산토끼를 잡는 것에 더 신경을 쓰면서 집토끼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오지 않는 집토끼는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시도되고 있는 호남 지역에 대한 접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기 위한 법안 발의 노력,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등은 바로 이런 집토끼 콤플렉스를 버리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다.
◆세번째 콤플렉스 “안보와 체제수호가 만고의 선” = 마지막으로 레드 콤플렉스는 최근에도 그 위력을 보인 바 있다. 연찬회를 마친 뒤 불어닥친 북한의 핵보유선언 파장은 한나라당에 밀어닥쳤고 어김없이 대북 강경론이 나왔다.
물론 이번 경우는 북한의 잘못이 상당 부분 있다는 점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맹목적인 안보론은 한나라당을 고리타분하게 보이게 하는 가장 크는 요인 중의 하나다.
사실 이런 경우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개혁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도 북한 문제가 나오면 보수적인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곤 해 정작 개혁 이슈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물론 희망적 모습도 보인다. 안보론을 주도해온 영남권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에서 안보도 중요하지만 보수란 결국 자유에 중심을 두는 세력이라는 문제제기가 내부적으로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출신의 이명규 의원은 “한나라당이 합리적인 보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안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보수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박근혜 대표가 6·15 행사에 참석했던 것이나 최근 원희룡 박계동 의원이 북한 민화협 인사들과 접촉했던 것들도 모두 이런 콤플렉스를 타파하는 모습중의 하나다.
윤건영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한나라당이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너무 경직돼 있는 면이 있다”면서 “유연성을 가지고 북한 문제나 지역 문제 등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집토끼 - 영남·보수만 바라보다 ‘역포위’
안보 - 북한 문제만 나오면 ‘경계론’ 목청
최근 한나라당은 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내정하는 등 당 개혁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일 제천 연찬회 이후 혁신위원장을 둘러싸고 당내 논란이 이는 등 잠시 호흡이 길어지는가 싶더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혁신위는 이후 당내 혁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짠다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 핵심은 한나라당 내에 잠재해 있는 혁신에 대한 ‘두려움’을 잡아내는 것인 듯하다.
그 동안 한나라당 내에는 뭔가 개혁을 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망령처럼 나타나는 콤플렉스가 광범하게 퍼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표현은 여러 가지로 존재했지만 꼽자면 크게 3가지 정도다. 바로 강한 야당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한 야당 콤플렉스, 산토끼 잡으려고 하다가는 집토끼를 놓친다는 전형적인 영남권 의원들의 논리도 콤플렉스를 넘어 거의 병적이다. 또 때만 되면 나와서 한나라당 개혁파 골치를 썩이는 북한 문제도 한나라당 식 레드 콤플렉스다.
정치전문가들은 감히 이들 세 가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2007년 대선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첫번째 콤플렉스 ‘야성(野性)이 뭐길래’ = 21일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2주년을 기념해 대통령을 격려하는 편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소속 의원들에게 노 대통령의 선정도 물어봤다. 이는 그동안 ‘네거티브 정치’에서 ‘포지티브 정치’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당 안팎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호평도 잠시, 이규택 상임운영위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야당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영남권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이것이 고비고비마다 한나라당의 발목을 붙잡았던 강한 야당론이다.
강한 야당론의 역사는 꽤나 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야당이 된 때부터 시작됐다. 97년 대선 직후 김윤환 의원이 ‘강한 야당론’을 주창한 바 있고, 98년 8월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전총재는 강한 야당론과 강한 리더십을 주창해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한나라당에 ‘발목잡기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찍힌 근저에는 대여투쟁을 강조하는 강한 야당론이 버티고 서 있었다. 흐름은 면면히 이어져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후 강한 야당론은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아직도 여당에 유화적으로 나간다 싶으면 어느 의원이든 꼭 나서서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 ‘강한 야당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성토를 늘어놓기 십상이다. 153석까지 가지고 있던 거대 야당으로서 충분히 강했지만 결국 그 강함 때문에 실패했으면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현 부대변인은 “당시 한나라당은 김대중 김영삼 등 카리스마적 야당 지도자가 끄는 강한 대여투쟁을 하는 야당밖에 본 적이 없었고 결국 그 모델을 따랐던 것”이라면서 “DJ, YS 시대에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야당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거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강한 야당론을 대치하는 개념으로 나온 것이 정책정당론이다.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책정당론도 어떤 면에서는 강한 야당의 ‘새끼 콤플렉스’라고 부를 만하다.
정치전문가인 박성민 대표는 “강한 야당론보다 더 심각한 것이 바로 정책정당 콤플렉스다. 지난 대선 때에도 국가혁신위를 만들어서 정책을 내놓는 등 한나라당의 정책적 준비가 미흡하다고 할 수 없는데도 항상 정책정당 디지털 정당을 말한다”면서 “정책은 제품설명서같은 것인데 대중들이 설명서 보고 제품을 사느냐”고 반문했다.
권철현 의원도 “지난 대선 때에도 개혁적 보수로 노선을 정리하고 국가혁신위를 만드는 등 논의는 지겹도록 했는데 이번에 또 혁신위를 만들어서 논의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와 실천력”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콤플렉스 “집토끼를 지켜야 산토끼도 잡지” = 집토끼 콤플렉스는 지역과 계층, 그리고 이념성향 모두에 적용된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계층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이념적으로는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집토끼다. 이들을 일단 지키고 난 이후에 소위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집토끼론의 논리다.
최근에는 이 콤플렉스가 더욱 강화되는 현상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중산층 이상을 대변해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중산층의 파괴 및 영남권 역포위 현상으로 지지층이 축소된다는 위협감을 받고 있고, 이 때문에 기존 지지층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축소되려고 하니까 더욱 집착하고, 집착하다 보니 중간에 위치하는 지지층들은 외면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
지난 연찬회에서도 표현은 달랐지만 바로 이 ‘집토끼 콤플렉스’를 타파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살 길이라는 논리가 많이 주장됐다.
여의도연구소 발제문에는 보수성향의 사람들만 대변할 것이 아니라 중도 쪽으로 몸을 옮겨 보수를 중도 쪽으로 견인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를 집토끼론에 대입해 본다면 산 쪽으로 몸을 옮겨서 산토끼를 잡는 것에 더 신경을 쓰면서 집토끼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오지 않는 집토끼는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시도되고 있는 호남 지역에 대한 접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기 위한 법안 발의 노력,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등은 바로 이런 집토끼 콤플렉스를 버리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다.
◆세번째 콤플렉스 “안보와 체제수호가 만고의 선” = 마지막으로 레드 콤플렉스는 최근에도 그 위력을 보인 바 있다. 연찬회를 마친 뒤 불어닥친 북한의 핵보유선언 파장은 한나라당에 밀어닥쳤고 어김없이 대북 강경론이 나왔다.
물론 이번 경우는 북한의 잘못이 상당 부분 있다는 점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맹목적인 안보론은 한나라당을 고리타분하게 보이게 하는 가장 크는 요인 중의 하나다.
사실 이런 경우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개혁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도 북한 문제가 나오면 보수적인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곤 해 정작 개혁 이슈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물론 희망적 모습도 보인다. 안보론을 주도해온 영남권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에서 안보도 중요하지만 보수란 결국 자유에 중심을 두는 세력이라는 문제제기가 내부적으로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출신의 이명규 의원은 “한나라당이 합리적인 보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안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보수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박근혜 대표가 6·15 행사에 참석했던 것이나 최근 원희룡 박계동 의원이 북한 민화협 인사들과 접촉했던 것들도 모두 이런 콤플렉스를 타파하는 모습중의 하나다.
윤건영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한나라당이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너무 경직돼 있는 면이 있다”면서 “유연성을 가지고 북한 문제나 지역 문제 등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