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도시, 정몽주의 곧은 충절과 황진이의 애틋한 사랑이 서려 있는 곳. 고려 500년 도읍지인 개성이 5일 남한 관광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일반관광객과 국내외 취재진, 현대아산 관계자 등 330여명은 이날 오전 6시 서울 계동에서 10대의 관광버스에 나뉘어 타고 개성을 향했다. 출입국 수속을 밟고 군사분계선을 지나 개성까지 오는 데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남측 사람들이 맘놓고 개성을 둘러볼 수 있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시내에 가까워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개성 뒤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었다. 꼭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시내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찾은 곳은 개성에서 북쪽으로 27km 떨어진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담과 함께 송도3절로 꼽히는 곳이다. 폭포 위쪽으로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흐르는 계곡물이 박연을 만들고, 이 물이 37m 절벽 아래로 떨어져 고모담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시대 박 진사라는 사람이 이곳에 머물며 밤마다 피리를 불었는데, 피리소리에 반한 용왕의 딸이 박 진사를 못 속으로 끌고 갔다 해서 박연이 됐고, 박 진사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몸을 던진 곳이라 하여 고모담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모담 옆으로 용머리를 닮아 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에는 조선시대 명기인 황진이가 머리채를 물에 적셔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는 시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폭포를 돌아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관음사가 나온다. 관음사란 이름은 970년 법안국사가 천연굴 속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가져다두고 그 이름을 관음굴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
실제 대웅전 옆 관음굴에는 1.2m 크기에 관세음보살상 좌상이 신비로운 자태로 놓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현재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점심은 개성시내 한복판에 있는 통일관에서 먹었다. 식사는 개성 토속 음식인 ‘13첩 반상기’가 나왔다. 닭고기 신선로를 비롯해 돼지고기 및 생선구이 등이 13가지의 밥과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한 상을 이루고 있는 ‘13첩 반상기’는 기름지지 않고 담백했다.
식사를 마친 후 숭양서원을 들러 선죽교를 찾았다. 숭양서원은 원래 정몽주의 집터로 1573년 개성 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함께 서원으로 고쳐 세웠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은 곳이라 한다.
선죽교는 길이 6.67m, 너비 2.54m의 돌다리로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정몽주의 혈흔이라는 검붉은 자국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돌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게 북측 안내원의 설명이다. 그래도 당시의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고려박물관이었다. 원래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이 있던 이곳을 북측은 1988년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북측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중 고려청자는 뛰어난 색상과 아름다운 형상으로 인기를 모았다.
고려 패망 이후 60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는 왕씨 족보도 눈길을 끌었다. 왕씨 후손이라는 한 관광객은 “집안 어르신 모임 때 보여드릴 예정”이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역사 유적지를 옮겨다니며 개성 시내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개성관광의 특징이다.
개성 첫 관광의 최고령자로 참가한 김윤경 옹(88세)은 “57년만에 고향땅을 밟으니 감개가 무량하다”며 “길과 건물 등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개성관광은 당분간 당일코스로만 진행된다. 요금은 1인당 18만원. 겨울인데도 예약자가 7000여명에 달한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이 개성을 다녀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앞으로 관광코스나 일정 등도 다양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성=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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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관광객과 국내외 취재진, 현대아산 관계자 등 330여명은 이날 오전 6시 서울 계동에서 10대의 관광버스에 나뉘어 타고 개성을 향했다. 출입국 수속을 밟고 군사분계선을 지나 개성까지 오는 데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남측 사람들이 맘놓고 개성을 둘러볼 수 있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시내에 가까워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개성 뒤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었다. 꼭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시내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찾은 곳은 개성에서 북쪽으로 27km 떨어진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담과 함께 송도3절로 꼽히는 곳이다. 폭포 위쪽으로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흐르는 계곡물이 박연을 만들고, 이 물이 37m 절벽 아래로 떨어져 고모담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시대 박 진사라는 사람이 이곳에 머물며 밤마다 피리를 불었는데, 피리소리에 반한 용왕의 딸이 박 진사를 못 속으로 끌고 갔다 해서 박연이 됐고, 박 진사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몸을 던진 곳이라 하여 고모담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모담 옆으로 용머리를 닮아 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에는 조선시대 명기인 황진이가 머리채를 물에 적셔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는 시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폭포를 돌아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관음사가 나온다. 관음사란 이름은 970년 법안국사가 천연굴 속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가져다두고 그 이름을 관음굴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
실제 대웅전 옆 관음굴에는 1.2m 크기에 관세음보살상 좌상이 신비로운 자태로 놓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현재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점심은 개성시내 한복판에 있는 통일관에서 먹었다. 식사는 개성 토속 음식인 ‘13첩 반상기’가 나왔다. 닭고기 신선로를 비롯해 돼지고기 및 생선구이 등이 13가지의 밥과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한 상을 이루고 있는 ‘13첩 반상기’는 기름지지 않고 담백했다.
식사를 마친 후 숭양서원을 들러 선죽교를 찾았다. 숭양서원은 원래 정몽주의 집터로 1573년 개성 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함께 서원으로 고쳐 세웠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은 곳이라 한다.
선죽교는 길이 6.67m, 너비 2.54m의 돌다리로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정몽주의 혈흔이라는 검붉은 자국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돌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게 북측 안내원의 설명이다. 그래도 당시의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고려박물관이었다. 원래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이 있던 이곳을 북측은 1988년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북측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중 고려청자는 뛰어난 색상과 아름다운 형상으로 인기를 모았다.
고려 패망 이후 60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는 왕씨 족보도 눈길을 끌었다. 왕씨 후손이라는 한 관광객은 “집안 어르신 모임 때 보여드릴 예정”이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역사 유적지를 옮겨다니며 개성 시내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개성관광의 특징이다.
개성 첫 관광의 최고령자로 참가한 김윤경 옹(88세)은 “57년만에 고향땅을 밟으니 감개가 무량하다”며 “길과 건물 등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개성관광은 당분간 당일코스로만 진행된다. 요금은 1인당 18만원. 겨울인데도 예약자가 7000여명에 달한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이 개성을 다녀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앞으로 관광코스나 일정 등도 다양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성=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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