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새로운 1년의 시작학교를 떠난 아이들

지역내일 2017-03-16

학교는 3월이면 신입생이라는 새 식구를 맞이한다. 새 식구를 맞이하기 전인 2월에는 몇 년을 같이 생활하던 식구들을 졸업생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낸다. 나도 지난 2월,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을 같이 생활하던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벌써 20년째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최근 몇 년의 졸업식 즈음에는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씩 울적해지곤 했다.

그래서 나의 겨울은 정들었던 아이들과 정을 떼는 기간이다. 아침 7시 30분 이전에 출근해서  1~2일 제외하고 밤 10시까지 학교라는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농담과 진담이 섞인 우스갯소리도 하고, 종례를 핑계로 길고 긴 잔소리도 하며, 때로는 아이들의 진로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등 많은 시간을 같이 했던 아이들은 한동안 쉽게 잊히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 수업을 하려고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교실의 문을 반쯤 열었을 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 한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졸업하고 꼭 찾아뵐께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 아이들. 약속을 꼭 지킬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을 갖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정말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너무 너무 감사하다. 졸업한 아이들이 학교에 와 다시 보게 되면 어찌나 반갑고 예쁘던지 그 아이들을 또다시 나의 마음이 뭉클 뭉클 들썩거렸다.

새로 맞이한 아이들
그런데, 막상 졸업한 아이들이 찾아오면 속마음처럼 격하게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와줘서 고마워”라고 얘기는 하지만 너무 예쁘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미 나에게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것처럼 올해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새로운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과 비워졌던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1학년 신입생들이 들어왔고 새로운 3학년들이 작년의 그 교실을 채워 주었다. 올해는 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며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이미 우리 반 31명의 아이들과 한 차례씩 면담을 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꿈과 희망과 계획에 대해 물어 봤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1학년 때 나에게 화학을 배우고 벌써 2년 동안이나 알고 지내온 아이도 있고, 지난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된지 2개월쯤 되는 아이도 있으며 3학년이 되어 처음 만난 아이도 있다. 만남은 조금씩 다른 시기에 조금은 다른 인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어찌되었건 올해는 3학년 13반으로 우리학교의 가장 구석이자 가장 꼭대기 반의 자기 위치에서 수능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을 하고, 대학별 고사를 보는 등 고3으로서 해야 할 자신의 일에 매진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위치에서 이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공부하는 것을 관찰하고, 지쳐 힘들어 할 때는 따뜻한 위로의 말로 격려해주고,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어떤 전형으로 지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일 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마 10개월간은 그렇게 정을 들이고 겨울이 되면 또 정을 떼기 위해 아이들과의 일을 하나씩 정리하겠지.

나의 일상
어떻게 보면 ‘교사들은 매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들을 쳇바퀴 돌듯이 반복해야 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직업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매년 하는 일인데’라고 생각해서 준비를 소홀히 하면 작년과 같은 시기에 똑같은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일의 진행속도가 다르고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고 일이 끝난 후 결과를 돌아보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왜 그런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도 잘 알고 계신다.

새 학년을 맞이하고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선생님들은 ‘올해 아이들은 작년과는 이런 점이 달라’라고 이야기 하곤 하신다. 그렇다.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똑같다고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년 전 아이들과 분위기가 조금 비슷한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다름’을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첫 경험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처음으로 고3이 되었다. 며칠 전 첫 모의고사를 보던 날 아침에 그날의 시험에서 지켜야할 것들을 이야기하다 “너희들 올해 수능 처음 보는 거니?”라고 했더니 실없는 농담에 웃는 아이들도 있고 진지하게 “예”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에겐 올해 겪어야 하는 그 어떤 일도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매년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어떻게 지내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쿵쾅 쿵쾅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하다. 두근거림과 함께 이렇게 다짐한다.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올해의 아이들에게도 소홀히 하지 말고 나의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겠다’라고 말이다.

서문여고 이효종 교사(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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