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발굴 20주년 since1997

신주단지와 애물단지, 두 얼굴의 풍납토성

오미정 리포터 2017-12-27

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잠들어 있는 2000년 전 역사
얼핏 보면 잘 정비된 야트막한 잔디밭 구릉지 공원처럼 보일만큼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풍납토성. 오랫동안 백제를 연구한 내로라하는 역사학자들, 여기에 중국, 일본, 베트남 학자들까지 참여한 발굴지 현장 답사에서 뜨거운 이야기가 오갔다. 땅 밑에 잠자고 있는 유물들은 2000년 전 고대사의 신비를 풀어줄 타임캡슐이라 풍납토성은 ‘한국판 폼페이’로 불린다.



시간이 멈춘 채 쇠락해 가는 주택가
풍납토성 주변 5만 명이 사는 주택가는 1990년대에 시간이 멈춘듯하다. 좁은 골목길, 낡은 주택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풍납동은 빠르게 변하는 송파구에 이런 동네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옛 모습 그대로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본 건물은 풍납토성 복원·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보상 완료되어 철거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채 펜스로 둘러싸여 출입금지된 집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토지보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풍납동은 쇠락하고 있다.

풍납토성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두 개의 풍경이다. ‘풍납토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다’ vs '풍납동 주민들은 피해자다‘라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현재 풍납토성은 2.7km 정도만 남아있는데 유실된 서벽까지 감안하면 전체 둘레가 약 3.5km, 밑변이 30~40m, 높이가 최대 15m에 달해 현존하는 국내 토성 중 최대 규모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 후 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엇보다 대형 신전의 건물지, 제기, 동물뼈 등이 발견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시대의 왕궁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타임캡술, 풍납토성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 큰 의미가 있는 풍납토성의 발견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청동제초두, 과대금구같은 중요 유물이 발견되면서 토성의 존재가 드러났다.
1963년에 이르러 풍납토성은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안타깝게 성벽만 지정되고 토성 주변 일대 토지가 제외되면서 현재 겪고 있는 토지보상 갈등의 발단이 됐다.
그러다 1997년 아파트 터파기 기초 공사장에서 백제 토기를 대거 발견한 이형구 선문대교수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신고하면서 풍납토성이 베일을 벗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한편 이때부터 풍납동은 도시개발 제한과 개인 재산권 제약을 받게 됐다. 고급 아파트단지, 상업지구로 변모한 잠실, 강동 일대와 비교할 때 재산권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원성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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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느끼지 못하는 백제유적지’ 풀어야할 숙제
풍납동 토성 정비사업에 현재까지 약 6000억 원이 투입됐지만 유구 보존지역 1~3권역 약 72만7000㎡ 중 35.1%만 보상을 마쳤을 뿐이다.
찔끔찔끔 토지보상이 이뤄지다 2015년 서울시가 202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5137억 원을 들여 주변 토지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풍납토성 일대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2017년 올 한해 약 150필지, 600억 원의 보상이 이뤄졌습니다. 현재 600필지 토지주가 보상을 신청해 대기중입니다”라고 송파구청 역사문화재과 토지 보상 담당자는 설명한다.
풍납토성 서쪽에 자리 잡은 풍납공장 이전을 둘러싼 레미콘업체 삼표산업의 항소심 패소도 올해의 중요 이슈였다.
지난 11월30일~12월1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2017 백제왕성 풍납토성 발굴조사 2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역사학자, 정부관계자, 시민운동가, 언론인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백제를 느끼지 못하는 백제 유적지란 문제점, 풍납동 주민을 모두 내보내고 풍납토성 문화재만 보존하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문화재 보전과 활용에 주민들도 동행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낙후된 지역 재생, 지역경제 활성화, 풍납동 도깨비시장과 연계한 풍납토성 관광자원화가 필요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유산 해설사나 체험강사, 문화재 돌봄이로 활동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지역 먹거리 상점이나 게스트하우스 운영처럼 문화재 활용 기회를 넓히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야 합니다. 보상 완료된 주택을 허물기만 하지 말고 지역이 슬럼화 되지 않도록 주민 편의시설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발표자로 나선 (사)문화살림 오덕만 대표는 말한다. 20년간 우리 문화재 보존·활용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풍납동 일대에서 2015년부터 생생문화재 사업을 벌이며 지역 주민 대상으로 다양한 백제 역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주민 참여의 물꼬를 트고 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고 있는 풍납토성은 서울 600년사가 한성백제시대까지 더해져 서울 2000년사로 확장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 때문에 학계, 정부, 시민단체의 노력은 더디지만 현재진행형이다.



풍납토성 since 1997의 산증인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
이 교수에게 1997년 1월1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호벽 치고 터파기를 하던 풍납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땅 밑에 무수히 박혀있는 백제 토기 조각들을 발견하고 한성백제 왕성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날이기 때문이다.
고초도 겪었다. 풍납동 재개발 조합원들에게 구타, 폭언, 감금이 이어졌지만 그의 백제왕도 유적 보전운동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이 교수는 풍납토성을 관통할 뻔한 올림픽대교의 설계를 바꾸고 석촌동 고분군을 관통할 신설 도로를 지하화하도록 이끈 장본인이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한성백제 유적을 지켰다는 자부심은 크다. “70년대 역사 선각자들이 풍납토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래도 쓰레기더미 속에 방치된 20년 전과는 몰라보게 바뀌었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보존 의지를 보이고 있지요. 풍납토성은 연구할 게 무궁무진합니다. 분야를 쪼개 세밀하게 한성백제 후속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노학자는 다짐과 당부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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