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콧잔등에 붙은 소시지야, 떨어져라~!!!

지역내일 2018-05-17

오늘 '철학의 문' 수업의 주제는 '행복의 크기를 잴 수 있을까'였습니다. 자연스레 벤덤의 공리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한계효용 학파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졌습니다.

국어 비문학이나 사회탐구 수업, 혹은 저에게 철학 수업을 들은 경험이 있는 고학년과 달리, 저학년학생들은 조금 어려워할만한 내용이었지만, 다행히 수업은 나름 활기차게 진행되었네요.

수업을 끝내고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 보니 마법의 고향 브리타니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하나가 생각나더군요. 이른바 "세가지 소원 이야기". 오리지널 버전은 대략 이렇게 전개됩니다.

어느 햇살 따가운 초여름 날, 한 마법사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홀로 마차를 몰고 가다 진흙수렁에 바퀴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거죠. 그런데 마침 그 길을 동네에 살던 나무꾼 부부가 지나가다 마법사를 도와서 마차의 바퀴를 수렁에서 빼내줍니다. 그러자 마법사는 답례로 세 가지 소원을 빌면 즉시 이루어지는 능력을 주겠다면서 '기회는 세 번 뿐'이라고 신신당부하고는 홀연히 자리를 뜨죠...

들뜬 마음으로 소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부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걷느라 목이 탔던 남편,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무심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이럴 때 시원한 에일 맥주에 블랙푸딩 한 덩어리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소원은 진짜였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맥주 한 잔과 먹음직스런 블랙푸딩(브리타니아식 소시지 혹은 '순대') 한 덩어리가 떡 하니 식탁 위에 차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세 번 밖에 없는 소원을 그렇게 써버리면 어떡해요."

"아니, 그게. 소원을 빈 게 아닌데..."

"어쩔 수 없죠. 아직 두 번이 남았으니까, 남은 기회는 제대로 된 소원을 비는데 쓰자구요."

"뭐가 좋을까? 첫 번째 기회는 내가 날려버렸으니, 두 번째 소원은 당신이 생각해 봐."

"흠... 그럼 우리, 이 낡고 비좁은 통나무집 대신 여왕님이 사시는 궁궐 같은 큰 집을 지어달라고 소원을 비는 건 어때요?"

"궁궐 같은 집이라... 나쁘진 않은데, 우리 둘이서 그 큰 집을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서 살려면 시종들이 많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어디 보자... 에이~ 아냐, 아냐. 당신이 궁궐 같은 집에 사는 여왕님 같은 귀부인이 된다구? 그 얼굴에?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나 할거나? ㅋㅋ"

눈치 없는 남편, 아내를 놀려대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배를 잡고 웃습니다. 아내라고 질 수는 없죠.

"아니, 이 양반이? 당신 몰골은 어떻고.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어디 그 좋아하는 블랙 푸딩, 평생 그 주먹코에나 달고 살아욧!"

이걸 어째?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져 버렸네요. 어느새 커다랗고 시커먼 소시지가 나무꾼의 코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겁니다.

"아악~ 이걸 어떡한다지? 그저 농담 삼아 한 말 인데... 여보, 아프지 않아요? 미안해요. 당장 다시 떼 내 달라고 소원을..."

"아이고 코야~. 아, 안돼, 안돼. 여보.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구. 그렇게 허비할 순 없어!"

"그럼 어떡해요. 평생 그 커다란 소시지를 달고 살 수는..."

갑론을박하며 결론을 내지 못한 부부, 어느덧 밤은 깊어 잠자리에 듭니다. 긴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죠. 그런데...

"아이고, 코야! 아니, 이게 뭐야. 아니 이 놈의 들쥐들이! 저리 가! 훠이~훠이~ 저리 가라구~!!!"

세상에,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잘 숙성된 블랙푸딩 냄새에 이끌린 들쥐가 들어와 나무꾼의 코를 갉아댄 거였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여보! 안 되겠어요. 궁궐 같은 집에 귀부인처럼 사는 거, 그런 게 무슨 소용이에요. 저에겐 당신만 있으면 돼."

나무꾼이 말릴 틈도 없이 아내는 소원을 빌었고, 나무꾼의 코는 원래의 주먹코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삶도 마찬가지였구요.

아, 아니네요. 블랙푸딩 소시지와 함께 세 가지 소원도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의 삶은 전과 달랐습니다. 낡고 비좁은 통나무집에서의 삶은 변함없었지만,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은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무슨 마법사가 수렁에 빠진 마차 바퀴 하나 어떻게 못하냐?" "소원을 연장해 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빌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똑똑한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아폴론의 세계관을 가진 분들이죠.
미시경제적 주제인 만큼 "주관적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 가지 소원 전략"을 놓고 게임 이론가와 한계효용학파와 행동경제학파가 토론을 벌이는 재밌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헤르메스의 세계관을 지닌 마법사들은 생각의 결이 좀 다릅니다.

마법사가 굳이 파이어볼트나 님부스2000이 아닌 마차를 타고 숲속 길을 지나 간 까닭, 그리고 진흙 수렁에 바퀴를 빠뜨려 짐짓 곤란에 빠진 척한 까닭은 따로 있지 않을까요?

부부는 눈앞의 욕구와 감정에 휘둘려 두 번의 소원을 '낭비'했지만, '현재의 서로'를 선택함으로써 '평생의 행복'이라는 선물을 얻었습니다. 순박한 그들이었기에, 그들에겐 소원의 기회를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는 똑똑한 머리가 없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폴론은 말합니다.
"현재는 현재고 미래는 미래야."
그러자 동생 헤르메스는 빙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맞아, 형. present는 present지."


일산지역 고등대안학교
우리들학교 강현석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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