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둘기와 ‘트라우마’

지역내일 2019-06-11

새중앙상담센터 · 심리상담연구소행복나무
박선영 전문상담사


‘트라우마’란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다시 느끼게 되는 심 리적 불안을 말하는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이라고 보통 표현되고 관련된 정신질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참전 후 군인들이 겪는 심리적 증상에서 비롯되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 트라우마는 전쟁터가 아닌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닭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것은 6살 무렵에 양계장을 하던 큰 집에서 살면서 시작되었다. 어린 내 눈에 수천마리의 닭들이 좁은 계사에 갇혀서 먹이를 쪼아 먹는 모습은 너무 두려웠고 아침마다 밤새 죽은 닭들이 쌓인 수돗가에 가까이 가는 것은 내게 죽기보다 싫고 무서운 일이었다.

사촌 언니, 오빠들 심지어 두 살 터울의 친언니도 멀쩡하게 세수하고 이를 닦는데 나는 너무 닭을 무서워하니까 오빠들이 피 묻은 닭날개를 내게 던져서 정말 까무러치게 놀란 기억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닭 공포증이 생겨서 닭고기도 잘 안 먹고 멀리서도 닭이 보이면 도망가거나 피해 다니곤 했는데 성인이 되어 도시에 살면서는 닭이 아닌 비둘기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새만 보면 놀라거나 경직되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그것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기 이해와 분석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내가 가진 새 공포증은 단순한 사물에 대한 무서운 마음이 아니라 유아기의 유기불안이 닭에게 전이(전치)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딸 중 둘째인 나는 5살 때까지 엄마에게 업혀 다닐 만큼 엄마와 밀착이 심했는데 동생이 생기고 두 달쯤 있다가 온 가족이 양계장을 하는 큰 집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엄마는 갑자기 동생을 보면서 시집살이와 양계장 일을 돕느라 나를 제대로 돌볼 여력이 없었다.

동생이 생기면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 내게 환경의 변화까지 더해지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도 없고 돌보지 않는다는 슬픔과 분노, 불안은 모두 닭에 대한 공포로 굳어진 것이었다. 삶에서 남자는 60%,여자는 50% 정도 외상적 사건을 경험하는데 남성은 사고, 신체적 폭력, 전투, 재해 경험에서 여성은 성폭력, 아동기 성학대에서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특히 이 트라우마가 아동기에 발생하면 성장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어 발달을 저해하고 불안, 분노, 자기비판, 무기력 등이 나타나 일상생활이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놓이게 된다. 성인의 경우 꿈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심한 경우 사건의 일부나 전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 증상을 나타내며, 지나친 각성으로 항상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불안해서 수면장애, 조절 장애, 공황발작, 환청, 우울장애등 여러 증상으로 삶이 무너진다.

다행히 나는 안전한 상담의 현장에서 나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으로 어린 시절 홀로 남겨진 불안과 공포을 직면하고 얼어붙은 내면 아이를 만나 치유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좀 더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향한 길도 열려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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