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소리로 아름다운 사랑을 전달해요” 오랜 세월 청력장애로 고생해 오던 갱생보호대상자에게 보청기로 사랑을 전달한 사연이 전해져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한국갱생보호공단 대전지부(지부장 강덕수)에서 무의탁으로 숙식을 제공받고 있는 갱생보호대상자 문 모씨(74세·전과2회)에게 무료로 보청기를 제작해 전달한 범죄예방위원대전지역협의회 서구지구 이희룡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문 씨는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여의고 젊을 적 만난 아내와도 자녀도 없이 이혼해 혼자 살아왔다. 충남 홍성에서 설비일로 생계를 이어왔으나 군 시절부터 앓아 온 청력장애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생활이 어려워 절도미수로 징역 1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올 4월부터 한국갱생보호공단 대전지부의 생활관에서 생활해온 문 씨는 고물행상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갱생보호공단에서는 문 씨가 고령임에도 생활관 청소 및 교육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등 생활에 대한 의지가 높지만 난청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이희룡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후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희룡 회장은 “생업으로 보청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청각장애로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갱생보호대상자에게 보청기를 지원할 수 있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며 “앞으로도 꼭 필요한 대상자 있으면 언제든지 무료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윤덕중 리포터 dayo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1
- 구미를 알리는 기대주 “지금, 이들을 주목하라” 전국 최고 실력 갖춘 청소년 총집합 지금 구미에는 자신의 재능으로 구미를 빛내고 대한민국을 알리는 미래의 기대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도시만큼 좋은 교육환경이 아니라고 탄식하고 있다면 여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보자. 제4회 아시아유소년국제경기 금메달- 김제근(상모중·16) 4년 후 올림픽을 향해서 ‘최선을 다 합니다’ 지난 7. 4 ~ 12일 러시아 사하 자치공화국 개최‘제4회 아시아유소년국제경기대회’태권도부문(55kg)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상모중학교 김제근 군. 초등학교 1학년 때 도복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는 태권도가 벌써 9년차다. 강산도 변할만한 세월동안 김 군은 흔한 슬럼프 한번 겪지 않았다고. “힘들어도 즐겁게 웃으면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지금 흘리는 땀만큼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습해요”라는 의젓한 대답을 한다. 겨루기 시합 중 부상으로 발가락의 성장판을 다치기도 했지만 김 군 특유의 근성으로 별 어려움 없이 이겨냈다. 늘 즐겁게 생각하고 웃으며 지내다 보면 크게 힘들다는 생각도 안든다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다. “부끄러움도 많고 자신감이 없는 성격이었는데 태권도를 배우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성격도 활달해졌어요.” 김 군은 공인 4단의 실력이지만 교우관계에서는 실력을 쓰지 않는(?) 다정한 친구다. “앞으로 4년 뒤 제가 20살이면 다시 올림픽이 열려요”라며 “열심히 실력을 쌓아 국가 대표로 선발되고 24살 때 올림픽에 나갈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은 경희대를 목표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당찬 열일곱 소년이다. 지금 운동을 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운동이 힘들다고 생각 말고 재미있고 즐겁게 즐기며 꾸준히 열심히 하자”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제4회 대한민국어린이국회 국회의장상 - 권아현(도봉초등·13) “아나운서 꿈을 안고 국회의원도 넘보게 됐어요” ?2008년 7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제18대 대한민국 국회가 개원됐다. 같은 날 국회의사당 제2회의장에서는 “제4회 대한민국어린이국회”가 열려 전국의 어린이를 대표하는 ‘어린이국회의원들’의 열띤 질문과 발표가 진행되었다. ?전국 244개 학교의 어린이국회의원 대표가 모인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 대한 우수 질문으로?도봉초등학교 6학년 권아현 학생이 ‘어린이의 눈 건강을 위한 정책대안에 대한 질문’으로 김형오 국회의장의 상장과 금뱃지를 수여받았다. 권양의 가족은 평소 사소한 가족문제도 ‘가족회의’를 열어 진행하는 등 모여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회의를 자주 한다. 권양의 어머니는 “우연한 기회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없애고 나니 가족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대화도 잦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같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주말에 무엇을 할 건지, 함께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며 소감을 전한다. 권양은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이번에 국회 의사당을 방문해보니 아나운서 출신의 국회의원도 많은 것을 보고 국회의원의 꿈도 함께 품게 되었다”고 포부를 밝힌다. 이번에 받게 된 상금은 우선 권양이 읽고 싶어 하는 탐정소설을 사는 비용으로 일부 사용하고 차후 읽고 싶은 책을 구매할 계획이다. 권양은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고, 학교와 구미의 명성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37회 전국소년체전 역도 동메달 - 권유리(구미여중·15) 제 2의 장미란이 될 때 까지 “지켜 봐 주세요” 이제 역도를 시작한지 채 1년이 된 조그마한 체구의 권유리 양은 지난 전국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2개나 따낸 역도 유망주다. 구미여중 역도부는 지난 2006년 5월에 창단되어 만 2년이 지난 신설 팀이지만 역도 8체급에서 3체급을 석권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팀이다. 지난 시간동안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련도 있었지만 감독과 코치의 열띤 노력으로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권양이 역도부에 들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50m 달리기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독님이 역도부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김종일 감독은 “권양은 순발력, 관절의 유연성이나 근육 유연성이 아주 뛰어나다”며 “친구들과 놀고 싶고 훈련을 건너뛰고 싶은 마음도 생길 수 있는 사춘기 소녀지만 연습을 게을리 한적 없는 ‘연습벌레’이고 자신을 극복하는 노력이 상당하다”고 극찬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감독님이 설득해 주시고 제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지금은 많은 지원을 해주시죠”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운동을 시작한 이후 집중력이 좋아져서 성격도 밝아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생겼다고 한다. 현재 인상 55kg 용상 70kg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권양의 포부다. “장미란 선수처럼 국가대표가 꿈이에요. 앞으로 큰 선수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대구지회장배 청소년 무용콩쿨 특상 -김예지(야은초·3) 전통을 이어갈 한국 창작 무용의 기대주 작년 9월 방과 후 수업으로 스포츠 댄스를 배우던 김예지는 그 끼를 알아본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양의 아버지는 지인이었던 강준영 원장에게 조언을 구하고 김양의 진로를 정해 줄 수 있었던 것. 강준영 원장은 “예지의 부모님은 일찍 예지의 재능과 끼를 보신 거죠” 라며 김양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살려 늘 최선을 다한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김양이 처음부터 한국무용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경쾌하고 화려한 스포츠 댄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터라 처음 한국무용을 접하고 의아해 했었단다.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지금은 한국 무용이 더 좋아요”라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아직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깊이 표현할 정도의 속 깊은 이야기는 없지만 그저 춤추는 게 좋고, 옷이 예뻐서 좋다는 10살 아이의 천진함이 묻어난다. 불과 1년도 안되는 경력이지만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최근으로는 지난 7월 사단 법인 한국무용협회의 대구지회장배 청소년 무용 콩쿨에서 특상을 차지했으며, 그전에도 다양한 대회에서 초등부1등 및 장려 등의 수상경력으로 실력을 자랑한다. “대회에 나갔다가 상을 받아오면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한다”며 학교 단상에 올라가 상 받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단다. 김나경 리포터 inloveing@hanmail.net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8-08
- “떡이 좋아 떡과 함께 평생 동거동락” 우리 조상들의 지혜 담긴 떡 … “앞으로도 떡과 함께 살아갈 것” 6.25 후 피란민들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좌판을 벌여 떡을 팔면서부터 시작된 염매시장 떡전골목. 대구의 오랜 명물이었던 이곳이 대기업의 쇼핑센터건립부지로 허가가 나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떡집들은 바로 근처 종로거리로 옮겨 여전히 구수한 옛 맛을 전해주고 있다. 매년 명절이면 우리 차례상에 없어서는 안 될 떡. 이 떡과 함께 떡전골목을 지키며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반미영(50)대표를 만났다. 어릴 적 엄마 몰래 먹던 떡 맛 잊을 수가 없어 반 대표는 어릴 적 엄마 몰래 먹던 떡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떡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떡 장사를 해서 세상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겠다는 희망이 떡과 함께하는 인생의 시작이되었어요. 지난해 어버이날 고향 동네 어르신들 경로잔치에 떡을 해드렸는데 이때야 말로 고단한 내 삶이 보람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기뻤지요.” 그가 떡전골목에서 장사를 해온지 10여년. 떡전골목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 전통 떡에 대한 애착과 사랑만큼은 특별하다고. 그래서 그는 떡 공부를 위해서는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피자와 햄버거에 밀리는 우리 전통음식인 떡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민족의 먹거리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야지요. 그래서 이번 달부터 전남대 전통무형문화재 선생님께 남도전통음식을 전수 받기위해 전라도까지 공부하러 다닐 예정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호기심으로 기쁨이 가득하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음식 떡이란 본디부터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때와 시절에 맞추어서 해 먹었던 음식. 떡은 종류에 따라 쓰이는 용도도 다르고 그 속에 담긴 의미도 다르다고 한다. 반미영 대표는 떡을 두고 “자식들을 위하는 부모의 염원이 담긴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아이들 돌잔치 백일 상에는 무지개떡, 백설기, 수수경단이 올려 지는데 거기에는 새로운 탄생을 축하한다는 의미와 함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깃들어 있어요. 함 떡, 이바지 의례음식에는 오색고물에 단장을 마친 인절미와 경단을 만들어서 먹는데, 새로 살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가 찰떡처럼 붙어서 잘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그 밖에 개업식이나 천지신명님께 고사를 올리는 날에는 붉을 팥 시루를 사용하는데 잡귀를 쫓아내고 사업번창하길 바라는 염원이 그 속에 녹아 있고, 조상님들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제사상에는 영혼을 달래주는 노란 콩 시루떡을 올린다고 한다. 여러 가지 떡의 다양한 의미를 알려주며 반 대표는 “떡은 맛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더 아름답다”며 떡 예찬론을 펼친다. 어디 그뿐이랴. “가을이 되어 곡식과 감과 대추가 익으면 거두어 들여 섞어서 버무려 빚은 마구설기는 세상에서 으뜸인 보양식인데 일 년에 한번 맛보는 별미였어요.” 그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진 우리네 먹거리가 우리의 정서와 생활에 얼마나 이로운 음식인지 바로 아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후손에게 좋은 의미가 담긴 먹거리가 퇴색되지 않도록 물려줘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글 쓰는 떡집 아줌마 반 대표는 떡집 아줌마 말고도 또 다른 이름들을 갖고 있다. 떡을 만들며 있었던 일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수필도 쓰는 그녀는 대구문인협회회원이기도 하고 대구보건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계명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주경야독 학생이기도 한다. “어차피 주어진 삶이라면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그런 삶을 살려면 제대로 배워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힘들어도 학업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며 우리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그를 보며 새삼 전통과 추억이 퇴색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워 진다. 오랫동안 서민들과 함께 했던 떡전골목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반소영 대표와 같은 이들이 있어 우리 전통은 살아 숨쉬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빈떡명가 255-4136 김수진리포터jhjy0926@naver.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1
- 살이 찌면 키가 클까요?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키도 크고, 체격도 좋습니다. 건장한 아이들을 보면 마치 제 키가 큰 것처럼 기쁠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 비해, 먹거리도 풍부하고, 영양상태가 아주 좋아져서 자연히 아이들의 성장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운동, 레져 등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그에 따라 키와 체격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먹고 사는 것이 생활의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먹을 게 풍족하지 못해서 살찐 아이들이 별로 없었지요. 그래서, 잘 먹고 살이 통통하게 찐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흐뭇해하고 좋아라 하셨지요. 못 먹고 자라던 왜소한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도 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이 찌면 나중에 그 살이 키로 다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풍부한 영양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바로 현대인의 적, 비만입니다. 1~2년전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에서 선진국들의 키를 조사해보니 미국인들의 키가 자꾸 작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비만으로 가장 골치를 앓고 있는 나라입니다.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식품, 탄산음료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과도한 고 열량식과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섭취했던 고열량을 소비할 시간이 부족해지게 되니, 비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비만으로 인해 점차 키가 작아져가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보기에 복스러워 보이고 건강해보였던 그 살들이 이제는 건강을 위협하고, 키마저도 작아지게 만들고 있는 골치덩어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런 흐름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는 조사결과가 있었습니다. 2005년에 비해서 2007년에 조사한 아이들의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우리 주위를 살펴봐도 살찐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살찐 아이들의 경우 비만세포가 많아져서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조기성장 및 성조숙증이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다른 아이보다 빨린 자란 결과가 나타나서 지금 현재로는 키가 커 보이지만, 나중에 키가 따라잡혀 역전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미국과 같이 우리 아이들도 고열량식과 운동부족에 노출이 되어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시간보다는 학원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학원에서 친구들과 노는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놀이터가 생활 주변에 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어우러져 노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살이 찌면 우선 움직이기 힘들어져 점점 게을러지게 됩니다. 운동량이 점점 부족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성장에는 햇빛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음식을 통해서 공급되지 못하는 영양소는 햇빛을 쬐어야만 인체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성장호르몬 분비곡선을 볼 때도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아주 많이 분비되게 됩니다. 성장의 기본 3요소는 일찍 잠자기(숙면), 운동, 고른 영양입니다. 좋은 영양소를 공급했다면 적당한 운동이 필수입니다. 우리 아이들 실내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놀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하겠습니다. 다들 물속에서 걸어보셨죠? 어떻습니까? 걷기 힘드시죠. 그럼, 뻘에서 걸어보셨습니까? 앞으로 몇 걸음 나가려면 한세월이고, 힘도 많이 듭니다. 우리 몸속에 모든 조직과 세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체의 70%가 물이라고 하죠. 물이 맑아야 활동하기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지방이 많아지고, 혈액이 혼탁해진다면 우리 몸속도 진흙뻘과 다를 게 없습니다. 모든 생명 활동이 약해지게 되어 자연히 건강도 위협받게 되죠. 따라서 성장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음식을 적당히, 그리고 골고루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느 한 가지 요소만 잘 지킨다고 키가 잘 크는 것이 아니라, 기본 3요소를 꾸준히 잘 지켜나갈 때 키도 제대로 잘 클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가 키가 작다면, 그리고 살이 좀 통통한 편이라면 지금부터 ‘무엇을 주로 먹는지’ , ‘일찍 잠을 자는지’, ‘기본적인 운동은 이루어지는지’를 체크해서 바른 생활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줍시다. 키즈맘한의원 북구점 원장 이정범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1
- 온 가족 행복 외식 공간 ‘이바돔’ 창원 용지호수 맞은 편 레이크 빌스 빌딩에 위치한 이바돔 감자탕 용지 호수점. 300여석의 자리를 갖춘 대형 매장인 이 곳엔 전국 팔도에 맛있기로 유명한 메뉴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서민의 대표 입맛인 감자탕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등뼈찜. 세월의 깊은 맛 묵은지 찌게. 묵은지 찜. 묵은지 양념 삼겹살 등 다양한 메뉴들로 고객들의 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이바돔의 메뉴가 전 나이 대를 아우를 아이템이기에 가족외식메뉴로 각광받는다. 여기에다 실내에서도 탁트인 느낌을 주는 공간 과 대형 어린이 놀이방 등은 고객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다양한 메뉴 감자탕계의 대표 이바돔 명품감자탕은 등뼈를 푹 고아 만든 사골국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백질, 칼슘 비타민 B1이 풍부하며 소화도 잘 된다 커다란 등뼈에 붙어있는 쫄깃쫄깃한 살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장기 발육, 다이어트와 스태미너 음식으로 유명하고 골다공증이나 노화방지에 좋다. 2~3년 묵힌 묵은지와 생고기를 넣어 특유의 깊은 맛과 구수함이 담겨 있는 이바돔 옥아리 묵은지 찜은 모든 재료는 맛의 고장 남도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비교거부의 자부심이다. 얼큰 감자탕은 돼지 등뼈로 국물을 낸 매운 맛을 가진 탕으로, 감자와 야채, 파, 붉은 고추, 들깨가루 등이 들어간다. 늦은 밤 출출할 때 야식으로, 또는 술안주 식사를 하기도 한다. 4~5명이 모여 먹을 때 가격과 양에서 대만족이다. 기호에 따라 얼큰 우거지 감자탕, 묵은 지 감자탕, 등뼈 찜, 해물각시 찜, 부대찌개, 점심특선메뉴, 사리, 식사메뉴, 추억의 도시락 볶음밥, 치즈 계란말이 등은 2% 부족 시 꽉 채워줄 메뉴다. 이바돔은 체인점이다 보니 맛은 여느 체인점이나 비슷하리라 여긴다. 단 음식점의 서비스는 저마다 차이가 난다. 용지 호수점은 신속하고 조용히 이루어지는 친절이 만족할 수 있으며 주변 여건이 한몫을 한다. 용지호수야경과 분수 레이저쇼가 환상적이다. 각종 해산물과 야채 등뼈의 어우러진 맛 좋아 등뼈찜은 커다란 등뼈와 버섯, 고구마, 야채류에 떡, 새우, 스위트콘, 고구마 등을 넣고 만들어낸 것으로 접시 한가득 담아져 나온다. 쫄깃쫄깃 당면은 등뼈 찜의 별미이다. 푸짐하게 담겨져 나와 보는 시선이 절로 즐거움을 느낀다. 카라멜 간장소스로 만들어진 등뼈찜은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아이들 이나 젊은층 특히 고단백 저지방 다이어트 음식으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메뉴다다. 먹고 남은 소스에 사리를 추가하여 넣어도 좋고 밥을 비벼먹어도 좋다. 각시찜은 안동찜닭의 매콤한 맛으로 즐겨먹는 찜과 비슷하다. 매운 듯 안보여도 뒷맛은 숨은 매운맛이 매력적이다. 각시찜은 등뼈와 쭈꾸미, 바지락, 새우, 홍합, 미더덕 등의 해산물을 재료로 넣어 조리한다는 점이다. 야채 콩나물 등 신선한 바다냄새와 등뼈의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다. 위치 : 용지호수 맞은편 레이크빌스 2층 메뉴 :감자탕/등뼈찜/해물각시찜/시골삼겹살/묵은지찜/해장국/냉면/돈까스/시골보리밥/들깨 수제비 영업시간 :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명절 외 휴무 없음) 예약문의 : (055)261-1301 기타 : 용지호수 주차장 이용가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1
- 손발저림 함부로 보면 큰 코 다친다 중추성은 뇌의 이상 신호…방치하면 뇌졸중 신경마비 언어장애, 초기 약물치료로 회복나이든 부모가 가끔 손발이 저리다고 하면 당연히 세월과 함께 오는 일시적 현상으로 여기곤 별 생각 없이 지나친다. 그러나 잦은 손발저림 증상을 함부로 봤다간 큰 코를 다친다. 손발저림은 말초신경과 척추신경 그리고 뇌의 감각신경 이상 신호임을 알리는 건강의 적신호이기 때문이다.손발저림은 중년 이후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일정 시간 이상 책상에 팔을 괴거나 엎드려 잠을 자고나도 팔이 저리고 무릎을 꿇은 후에도 다리가 저리는 경험은 흔히들 한다. 신사동의 서울브레인 신경과 이일근 원장은 “저림증상은 주로 말초신경이나 척추신경이 눌리고 가끔은 뇌의 감각 이상이 손상되어 발생하는 증상이므로 함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두통 어지럼증 동반하면 위험손발저림은 정확한 진단 하에 각 개인의 특징에 맞는 치료가 중요하다. 다행히 요즘 보다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장비들과 치료법들이 나와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증상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이 원장은 “손발저림은 뇌혈류장애, 말초신경장애, 말초신경염, 목척추, 허리척추, 척수질환 등과 심지어는 손목터널증후군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원인을 중추성과 말초성으로 크게 구분지어 치료에 적용한다. 중추성으로 인한 손발저림 증상은 뇌손상으로 인한 것으로 언어장애와 뇌졸중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반면 말초성인 경우 뇌까지 영양이 미치지 않기에 치료를 잘 받으면 호전이 된다.이 원장은 “손이나 발이 양쪽 모두 저리거나 증상의 정도가 밤과 낮 차이가 있으면 말초성이고 한쪽만 저리거나 언어장애, 두통, 어지럼증,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현상, 근력저하 등의 동반증상이 나타난다면 중추성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말초성은 증상이 가볍고 치료도 어렵지 않지만 중추성은 치료가 늦으면 마비현상이 오므로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최근에 알려진 ‘하지불안 증후군’은 중추적인 비혈관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디스크나 뇌졸중 같은 병으로 오진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전문장비로 진단, 치료는 맞춤식 손발저림 치료는 먼저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져 한다. 증상초기부터 추적하는 세밀한 병력청취와 더불어 말초신경염, 손목터널증후군, 목척추, 허리척추 질환, 척추 안에 있는 척수질환, 그리고 중추뇌신경계 이상 여부 확인을 위한 신경전도검사, 유발전위검사 등의 전기생리검사와 뇌혈류초음파 검사 등을 통하여 진단이 가능하다. 신경전도검사는 말초신경과 이에 연결되어 우리 몸을 움직이는 근육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질환의 위치를 알려준다. 유발전위검사는 눈, 귀, 피부를 자극하여 감각기관-말초신경-척수-대뇌 순서로 전달하는 말초신경과 중추신경 이상여부를 진단하는 전기생리검사이다. 전달경로에 이상 소견이 발생하는 말초신경질환, 척수질환, 뇌신경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뇌혈류초음파는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혈관과 혈류를 측정하는 초음파 장비. 이 원장은 “현재 전세계에서 개발된 가장 진보된 기종으로 64개의 센서를 동시에 사용해 64개의 각 깊이에서 혈류를 측정한 후, 각각 깊이를 연결하여 거의 연속적인 혈류상태와 혈관구조까지 알 수 있어 손발저림의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뇌혈관의 동맥경화에 의한 뇌혈류장애 진단을 위해 경동맥초음파를 시행하면 초기 뇌혈관 동맥경화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고 조기진단에 의한 약물 치료를 통해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검사를 통해 확인된 원인에 따라 각 개인별 특징에 따라 맞춤식 치료가 이루어진다. 주된 치료법은 약물치료이다. 약물치료는 약물이 혈관벽이나 혈류에 작용해 중추신경 전단물질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약물치료 이외에 개개인에 맞는 운동치료도 함께 병행하기도 한다. 손발저림 치료는 말초성이든 중추성이든 초기발견이 중요하다. 중추성이면서 증상이 심할 경우는 가급적 빨리 치료를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원장은 “평소 손발저림 증상이 자주 일어난다면 유심히 살피고 될 수 있으면 서둘러 초기에 치료를 받아야 뇌졸중 같은 더 큰 질환을 막을 수 있다”고 충언했다. 한민자 리포터 hmj647@empa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0
- 김영호 칼럼 김영호 칼럼 군사독재 언론통제의 추억 집권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고 벼르고 있다.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더니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을 방불케 한다. 사회문물은 광속으로 변천했는데 긴 세월 박제됐다 이방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동시대인과 대충돌을 빚는 형국이다. 검찰-경찰을 동원한 공안정국, 재벌-수출위주의 성장정책, 친미-반북의 대외정책, 언론장악을 통한 여론조작 등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집권실패를 언론 탓으로 돌려왔다. 그 까닭에 방송장악에 노골적이다. 촛불저항에 입은 화상이 깊은 터라 그 절대성을 더욱 절감하는 모양이다. MBC PD수첩이 미친소의 진실을 말하지 않고 다음 아고라가 여론형성의 구심점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군중이 얼마나 깨어있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쿠데타 군벌은 방송사 마이크부터 먼저 잡았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권세력이 방송계에 언론특보로 편성된 낙하산 부대를 투하하며 점령에 나섰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사장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를 그토록 매도하더니 주파수를 맞춘다며 MB코드로 바꿔치는 꼴이 똑같다. 문제는 KBS 사장을 쫓아내는 일이다. 내·외부의 반발이 만만찮다. 감사원과 검찰을 내세워 압박작전을 편다. 사장선임권을 갖고 있는 이사진을 MB코드로 바꿔 끼는데 그 수법이 야비하다. 국가기간방송인 KBS는 특정정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고 핏대를 올리던 그들이 이제는 알 턱이 없다며 막나간다. 군벌은 정권을 탈취할 때마다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했다. 언론사 숫자를 줄여야 언론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이명박정부는 그 짓도 닮으려고 한다. 현재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방송사를 대신해 광고를 팔아 방송사에 할당한다. 그 까닭에 시청률이 낮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에도 광고가 돌아간다. 이것을 경쟁체제라는 논리로 포장해 없애려고 한다. 방송사가 많으면 시끄러우니 지방방송은 끄라는 소리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도 감축한단다. 조중동은 한나라당과 합세해서 신문법을 언론말살법이니, 언론탄압법이니 하며 광분하듯이 공격해왔다. 신문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건만 누가 이 법에 의해 언론자유가 박탈당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한번도 보도-논평에 제약을 받았다고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숨은 그림이 있다. 바로 신문-방송겸업금지 조항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수년간 KBS2, MBC의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신문법을 없애면 어느 신문사가 방송사를 가질 수 있나? 그 해답은 그들과 정치호흡을 맞춰 온 조중동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방송법은 지상파 방송의 소유한도를 30%로 규정하고 있다. 투자자본이 커서 혼자는 벅찰 수도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IPTV, 보도채널,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방송 사업자 자산기준을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렸다. 중견재벌의 방송진출 길을 튼 것이다. 자본은 속성상 친정권적이다. 조중동이 재벌과 손을 잡으면 방송을 쉽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방송의 ‘조중동화’가 이뤄진다. 지금의 공영체제인 KBS2, MBC처럼 독립성, 공공성을 말하지 않을 테니 정권안보가 견고해진다. 광고를 끌어오려면 시청률 경쟁을 벌릴 테니 벗는 모습과 야한 소리가 넘쳐날 것이다. 이 짓도 군사정권이 했다. 뉴스시간에 헛소리나 늘어놓고 나팔을 부니 뉴스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언론이 비판기능을 포기하니 외면을 당해 영향력도 없었다. 당시 기자실에서도 방송기자는 대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집권세력이 촛불저항의 진원지가 인터넷이란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네티즌 실명제 의무화, 명예훼손 소지 게시물 삭제, 사이버 모욕죄 등 네티즌에게 재갈을 물리는 탄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들이 사이버 공안정국에 맞서 개방, 참여, 공유가 보장되는 해외로 망명을 결행하고 있다. 구글, 야후 이용자가 급증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매체융합시대는 정보유통 경로의 다기화와 쌍방향 소통을 말한다. 그런데 아날로그시대의 언론장악이란 허망한 꿈을 꾸고 있다. 휴대전화가 유용한 정보전달 수단이니 이 또한 어떻게 규제할지 두고 볼 일이다. 공짜에 경품까지 얹져주는 보수신문의 실체도 알았다. 방송이 거짓을 말하면 볼 이유가 없다. 그 암울한 시절에도 대자보, 등사물, 소문(hearsay)이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줬으니 말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8-06
- 신문로 멋진 만남과 깔끔한 헤어짐 전대환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구미안디옥교회 목사) 올해도 좋은 계절, 좋은 명절이 왔다.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만남’이다. 만남을 위해서, 명절마다 고속도로에는 엄청난 차량들이 몰려든다. 만남이 없는 명절은 축복의 절기가 아니라 슬픔의 절기다. 살림살이의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이별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들,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애통해하는 이들,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질병 때문에, 그리고 일 때문에 복된 만남을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이번 명절이 희망의 절기가 되면 좋겠다. ‘만남’에는 일상의 만남, 반가운 만남, 껄끄러운 만남이 있다. 삶 속에서 이 세 가지 만남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반가운 만남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일상적인 만남도 늘 있는 일이니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껄끄러운 만남,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문제다.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은 대체로 ‘껄끄러운 만남’인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자리에 가서 껄끄러운 만남을 견디고 있는데도 남자들은 거들어줄 생각도 않고 술만 마신다든지, 앉아서 TV만 본다든지, 그러면 명절 음식 준비하다가 꼬치에 고기를 끼우는 대신, 남편을 끼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남편들은 조심해야겠다. ‘시댁 문화’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시’자 붙은 것만으로도 며느리들은 불편하다. 남자들이야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 시집에 가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느냐?” 하고 항변하지만, 아무리 잘 해줘도 시댁은 시댁인 걸 어쩌랴? 하긴 이제 세월이 바뀌어서 남자들도 처가에 가면 장모 눈치를 많이 봐야 하고, 시어머니들도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껄끄러운 만남을 잘 해소하는 사람이 집안에 있다면 그는 집안의 보배다. 시어머니가 됐든, 며느리가 됐든, 어려워하는 상대를 어렵지 않게 해주는 것,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그런 보배들이 가진 멋진 기술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일단 껄끄러운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편인 사람은 틀린 말을 해도 봐줄 수 있지만,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옳은 말을 해도 얄밉다. 우리 정서가 그렇다. ‘편 가르기’가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한 번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아들 편이 아니라 며느리 편이 되고, 장모는 딸 편이 아니라 사위 편이 되는 구도가 형성되면 껄끄러움은 쉽게 사라진다. 두 눈 질끈 감고 일단 이렇게 편먹기를 하면 그 다음 문제들은 의외로 술술 풀린다. 누가 먼저 편먹기를 시작하면 될까.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장모든 사위든,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쪽에서 먼저 하면 된다. 만남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헤어짐이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하는 유명한 노래를 요즘은 이렇게 패러디해서 부른단다. “설거지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동서….” 날아다니는 새는 앉는 자리가 깨끗해야 하지만 사람은 떠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 떠난 자리가 너절너절하면 그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 내 뒤처리를 내가 하면 괜찮은데, 내 뒤처리를 남이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짜증이 나게 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내 뒤를 내가 닦으면 별 감각이 없지만 남의 뒤를 내가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설거지를 하면서 접시를 닦을 때 안쪽도 물론 잘 닦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경을 써서 닦아야 할 곳이 밑바닥이다. 그래야 겹쳐서 쌓아 놓을 때 다른 접시에 때가 안 묻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도 뒤가 깔끔해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또 그래야 다음에 만날 때 깔끔하게 만날 수 있다. 하늘이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가고 있다. 가볍게 올라가는 하늘처럼, 내가 먼저 마음을 비우고 집안의 보배가 되어서 멋진 만남과 깔끔한 헤어짐을 주도한다면 온 가족의 기분이 모두모두 높이높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10
- 신문로 신문로 ‘이름 석자’ 의 무거움 신명식(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 인간에게서 육신의 무게만 따진다면 보잘 것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한 없이 무겁다. 사마천이 ‘사기’를 지은 지 2098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빛난다. 그래서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거는 일에 도덕관념과 행동원칙이 태산 같아야 한다. 난세에 지식인으로 살면서 이름 석자 값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옛적이나 요즘이나 많은 지식인이 이름 석자를 함부로 굴린다. 있어야 할 곳, 피해야 할 곳을 가리지 않다가 후일 망신을 산다. 개인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고 나라와 민족에 큰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기록의 무서움을 알자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봄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한 후 두 달 동안 이의신청을 받았다. 모두 118명이 이의를 제기했는데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어느 저명한 인사의 기념사업회가 제출한 이의신청을 보자. 일제치하에서 학교를 운영했던 이 인사는 13건의 친일 글과 강연록을 남겼다. 이의신청서 내용에 따르면 이 인사는 조선청년에게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강연회에 나가 총독부에서 써준대로 읽었다. 매일신보 기자가 위의 지시라고 기고를 강요하자 알아서 대필하라고 했다. 단 그의 측근에게 원고검토를 받으라고 단서를 달았다. 기념사업회는 매일신보 1943년 11월 7일자 그 인사의 이름 석자 밑에 실린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글이 ‘허위 날조 왜곡보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당시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학교’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쓴 수백건의 친일 글은 힘없는 민초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제가 전쟁터로 끌고 간 조선인은 6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징병, 특별지원병, 학도지원병, 군속, 일본군 위안부, 여자정신근로대라는 이름으로 사지에 내몰렸다. 사망자만 최소 6만명에서 최대 9만3000명을 헤아린다. 부상자는 8만4000여명이다. 이런데도 겸허한 반성과 사죄는 없고 변명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60년이 지나도록 식민통치 아래서 자신과 민족의 존재를 부정했던 인사들을 엄중히 단죄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격한 자기검열이 필요 더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의 떳떳하지 못한 행적에 분칠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대학총장까지 지낸 분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제 말 최남선의 학병 출정 권유는 우리 민족의 ‘군사지도자’ 양성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직 대학총장은 최남선의 제자다. 그것도 올해 8·15가 광복 63주년이냐, 건국 60주년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토록 역사의 엄중함, 기록의 무서움을 경시하다 보니 한입으로 두말 하는 지식인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언론인은 시류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이름 석자가 따라붙는 기사에 엄격한 자기검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좆는 철새는 왜 이리도 많은가. 줄 세우기, 편 가르기에 자기 이름을 쉽게 빌려주는 것도 잘못된 사회풍조다. 진보든 보수든 어떤 단체를 만들거나 성명서 같은 것을 발표할 때 거창하게 이름을 나열한다. 단체의 강령이나 성명서 내용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름을 빌려주는 일이 잦다. 이름을 한번 잘못 올려놓으면 해명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한 확산이 너무 빠를뿐더러 이성적인 해명이 파고들 틈도 없다. 이런 난세에는 이름 석자를 내거는 모든 행위에 대해 역사가 평가를 해줄지, 또는 심판을 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념의 양극화 시대에 생각의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주장의 일관성과 언행일치는 꼭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려는 정신만큼은 잊지 말자. 이렇게 산다면 세상에 태어나 이름에 먹칠은 하지 않을 것 같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09
- [신문로]‘이름 석자’의 무거움 ‘이름 석자’의 무거움 신명식 (사)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 인간에게서 육신의 무게만 따진다면 보잘 것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한 없이 무겁다. 사마천이 ‘사기’를 지은 지 2098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빛난다. 그래서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거는 일에 도덕관념과 행동원칙이 태산 같아야 한다. 난세에 지식인으로 살면서 이름 석자 값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옛적이나 요즘이나 많은 지식인이 이름 석자를 함부로 굴린다. 있어야 할 곳, 피해야 할 곳을 가리지 않다가 후일 망신을 산다. 개인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고 나라와 민족에 큰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봄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한 후 두 달 동안 이의신청을 받았다. 모두 118명이 이의를 제기했는데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어느 저명한 인사의 기념사업회가 제출한 이의신청을 보자. 일제치하에서 학교를 운영했던 이 인사는 13건의 친일 글과 강연록을 남겼다. 이의신청서 내용에 따르면 이 인사는 조선청년에게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강연회에 나가 총독부에서 써준대로 읽었다. 매일신보 기자가 위의 지시라고 기고를 강요하자 알아서 대필하라고 했다. 단 그의 측근에게 원고검토를 받으라고 단서를 달았다. 기념사업회는 매일신보 1943년 11월 7일자 그 인사의 이름 석자 밑에 실린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글이 ‘허위 날조 왜곡보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록의 무서움을 알자 이처럼 당시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학교’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쓴 수백건의 친일 글은 힘없는 민초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제가 전쟁터로 끌고 간 조선인은 6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징병, 특별지원병, 학도지원병, 군속, 일본군 위안부, 여자정신근로대라는 이름으로 사지에 내몰렸다. 사망자만 최소 6만명에서 최대 9만3000명을 헤아린다. 부상자는 8만4000여명이다. 이런데도 겸허한 반성과 사죄는 없고 변명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60년이 지나도록 식민통치 아래서 자신과 민족의 존재를 부정했던 인사들을 엄중히 단죄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의 떳떳하지 못한 행적에 분칠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대학총장까지 지낸 분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제 말 최남선의 학병 출정 권유는 우리 민족의 ‘군사지도자’ 양성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직 대학총장은 최남선의 제자다. 그것도 올해 8·15가 광복 63주년이냐, 건국 60주년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토록 역사의 엄중함, 기록의 무서움을 경시하다 보니 한입으로 두말 하는 지식인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언론인은 시류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이름 석자가 따라붙는 기사에 엄격한 자기검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좆는 철새는 왜 이리도 많은가. 엄격한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줄 세우기, 편 가르기에 자기 이름을 쉽게 빌려주는 것도 잘못된 사회풍조다. 진보든 보수든 어떤 단체를 만들거나 성명서 같은 것을 발표할 때 거창하게 이름을 나열한다. 단체의 강령이나 성명서 내용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이름을 빌려주는 일이 잦다. 이름을 한번 잘못 올려놓으면 해명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한 확산이 너무 빠를뿐더러 이성적인 해명이 파고들 틈도 없다. 이런 난세에는 이름 석자를 내거는 모든 행위에 대해 역사가 평가를 해줄지, 또는 심판을 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념의 양극화 시대에 생각의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주장의 일관성과 언행일치는 꼭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려는 정신만큼은 잊지 말자. 이렇게 산다면 세상에 태어나 이름에 먹칠은 하지 않을 것 같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