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촛불의 바다’는 최고의 정치교육(임재경 2004.03.24)

지역내일 2004-03-24 (수정 2004-03-24 오전 10:39:11)
‘촛불의 바다’는 최고의 정치교육
임재경 언론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거짓이 따르게 마련이고 정확치 못한 경우가 허다하며 또 말이 전해지면서 과장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3월 20일 밤 서울 태평로와 세종로를 메운 탄핵 반대 문화 집회를 가리켜 ‘촛불의 바다’라 부르는 소리는 그 흔한 과장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나는 느꼈다.
집회 참여 인원 숫자를 경찰은 13만 5천으로, 주최측은 17만 5천으로, 거기에 나갔던 친구들의 말은 20만으로 각기 달랐지만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깝건 간에 이날 밤 TV를 지켜본 사람들은 ‘촛불의 바다’라는 말 이외에 달리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들 것이라 믿었다.
어떤 성격의 단체나 조직의 힘만으로도 도저히 불러모을 수 없는 규모의 인원, 짱돌과 화염병이 난무하지 않은 군중 행렬, 걸음걸이에 따라 일렁이는 인간의 빛은 마치 바다가 잔잔한 촛불의 파도를 이루는 것 같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기원할 때 밝히는 것이 촛불인데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 뜻이 서울 한복판에서 촛불의 바다를 이루었다면 우리 민주주의가 그 저력과 수준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장하였음을 말해준다. 헌정사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3.12 폭거가 가져다 준 망외의 선물이다.
70년대 군사독재에 치열하게 항거하는 대학생과 노동자, 그리고 성직자를 포함한 지식인들의 자기 희생적 행동을 구미의 사회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탄핵반대’ 시민운동, 민주주의 성장 상징
그러한 증거로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의 현실참여 핵심 이론인 <해방신학>을 당시 라틴 아메리카를 풍미하던 <리버레이션 디어올리지(liberation="" theology,="" 해방신학)="">와 구별하여 <해방 디어올로지(haebang="" theology)="">라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3.12이후에 평화적으로 전개되는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행동을 그들은 어떻게 평가할는지가 몹시 궁금하다. 이를테면 조효제 교수는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가리켜 “전투적이지만 폭력적이지 않고, 급진적이지만 근본론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창비과 비평="">,2004/봄). 이런 면이 서구의 시민운동과 다른 성격의 한국 시민운동을 낳았으며 외국말의 대응어가 없어 부득이 고유명사로서 Shimin-undong 이라 불러야한다고 그가 말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매스컴, 특히 전국적 네트워크의 방송과 인터네트 신문을 통해 우리가 보는 촛불시위의 양상은 지난 날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간혹 극렬한 구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 및 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패러디가 주조를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서 기억에 남는 걸작은 “정치인 분류수거”라는 피켓이었다.
정치인 모두를 일단 쓰레기로 비유한 것은 지나치다 할지라도 재활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정치허무주의와는 구별되어야한다. 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자기의 평균 97점의 성적표를 적은 커다란 종이에 적어 어깨에 걸고 나왔는데 학교에서 흔히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말에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오마이 뉴스="">3월 23일자).
각급 학교가 민주주의 정치교육에 담을 쌓은 것은 냉전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원인이 어디에 있었건 간에 정치교육에 실패한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학교와 교과서에서 듣거나 읽지 못하였던 것을 촛불 시위에서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정치교육의 성과다. 주권재민의 원리와 참정권이 그들의 행동과 연결되어 있음을 촛불 시위에서 깨우쳤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체험인가.

주권재민과 참정권, 촛불시위가 일깨워
그럼으로 몇몇 거대 인쇄매체를 배경으로 하는 ‘3고 계층’(고연령, 고학력, 고소득)이 촛불 시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내세우는 국제 경쟁력, 정치안정, 질서라는 가치들을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하루아침에 내팽개친 현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반면교사라 할 것이다. 그들은 젊은 세대와 상대적 저학력 계층, 그리고 땀흘려 일하는 보통시민의 각성이 두려운 것이다.
이런 판에 야간 시위 금지라는 집시법 근거에 매달려 탄핵반대 시위를 봉쇄하겠다는 경찰 책임자, 탄핵반대 시위가 열린우리당과 노사모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폭력시위라고 강변하는 일부 야당의원들, 그리고 2천명 내외의 탄핵지지 시위를 촛불시위와 같은 층위에 올려 놓고 중립적 보도를 가장하는 거대 인쇄매체들의 무기력, 무감각, 무책임은 정말 한심하다.
탄핵정국이 주권재민의 원리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리라는 전망과는 별개로 우리는 엄중한 국면을 통해 이 시대 최고의 정치교육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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