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다수의 횡포
장행훈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인간이 창안해 낸 가장 좋은 정치제도로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맨 처음 실시된 이래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아직도 미완성 상태에 있다. 이 제도를 발명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로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 희생자도 있다. 개인적인 야심을 채우기 위해 민주주의의 허점을 이용해서 민주주의의 규칙을 악용한 정치인도 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운영 원칙이지만 다수의 힘에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기원 전 399년에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도 다수결 재판의 희생자였다.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 소크라테스는 추첨으로 뽑은 5백 명의 시민-재판관이 참석한 법정에서 2백20 대 2백80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사약을 마셔야 했다.
반면에 득표수에서 지고도 대법원의 다수결 결정 덕분에 ‘합법적으로’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다. 지난 몇 년째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그 장본인이다. 그는 200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총 득표 수가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보다 적었다. 대법원이 다수결 판결로 플로리다 주 개표를 중지 하지 않았더라면 부시는 플로리다 선거인단 수를 고어에게 빼앗겨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직시 임명한 친(親)공화당 판사가 다수를 차지한 대법원의 다수결 위력 때문이었다.
주권자인 국민 다수의 의사가 법원의 다수결에 의해 무시 당한 극히 비민주적인 판결이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맹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부시 반대자들이 그의 대통령 당선을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언론 매체들이 대 소란을 벌였을 것이지만 미국 언론은 대법원의 판결을 큰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이것 역시 미국 언론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부패한 다수가 대통령 탄핵, 민주주의 흔들어
이미 1세기 반 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한 프랑스의 토크빌은 다수결의 횡포와 위험을 경고했다. 다수결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독소를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가 3월12일 3분의 2 라는 다수의 위력만을 믿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해서 온 나라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은 것도 다수결의 위력만 알았지 그 행사의 위험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이제 고전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칙의 근거와 그 속에 내포돼 있는 위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수가 갖고 있는 도덕적 위력은 한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 소수의 국회의원보다는 다수의 의원 속에서 더 많은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사람의 지능에 적용한 평등 원칙의 귀결이다. 다수결의 또 하나의 도덕적인 근거는 최대 다수의 이익이 소수의 이익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사회 내의 이해 대립이 양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때는 다수의 의견이 쉽게 존중 받기 어려운 때가 생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다수를 확보하면 사실상 막강한 힘을 갖는다. 여론 역시 다수를 밀어 주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다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다수의 횡포가 된다. 소수의 승복이 없는 다수결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혁명 사태를 유발할 위험도 있다.
다수의 횡포와 관련해서 부패한 다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이해 타산 끝에 흥정해서 만들어 낸 다수를 말한다. 순수한 다수도 횡포의 위험이 있는데 하물며 부패한 정치인들이 흥정한 다수가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임기가 한달밖에 남지 않은 국회 의원들이 자기들의 선거를 의식하고 취임 1년 밖에 안 된 대통령의 말 트집을 잡아 탄핵을 발의하는 행위도 부패한 다수 만이 상상할 수 있는 폭거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직선대통령 해임, 탄핵 아닌 국민투표에 맡겨야
대통령은 국회의원 한 사람도 해임할 수 없는데 국회는 전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임기 전에 탄핵(파면)할 수 있는 법률은 고쳐야 한다. 3권 분립의 원칙에 크게 저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해임하든지 소환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원칙에 맞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20일 앞둔 이 시점에서 당장 우리 국민이 취할 자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주시하며 4 15 총선에서 새롭고 깨끗한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다. 우리 헌재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 같은 비민주적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삼가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는 국민의 자세라고 본다. 국민의 다수를 대표하는 탄핵 반대 쪽도 찬성하는 쪽에 ‘다수의 횡포’라는 비난의 명분을 줄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런 자제가 실리적으로 탄핵 반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장행훈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인간이 창안해 낸 가장 좋은 정치제도로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맨 처음 실시된 이래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아직도 미완성 상태에 있다. 이 제도를 발명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로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 희생자도 있다. 개인적인 야심을 채우기 위해 민주주의의 허점을 이용해서 민주주의의 규칙을 악용한 정치인도 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운영 원칙이지만 다수의 힘에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기원 전 399년에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도 다수결 재판의 희생자였다.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 소크라테스는 추첨으로 뽑은 5백 명의 시민-재판관이 참석한 법정에서 2백20 대 2백80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사약을 마셔야 했다.
반면에 득표수에서 지고도 대법원의 다수결 결정 덕분에 ‘합법적으로’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다. 지난 몇 년째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그 장본인이다. 그는 200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총 득표 수가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보다 적었다. 대법원이 다수결 판결로 플로리다 주 개표를 중지 하지 않았더라면 부시는 플로리다 선거인단 수를 고어에게 빼앗겨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직시 임명한 친(親)공화당 판사가 다수를 차지한 대법원의 다수결 위력 때문이었다.
주권자인 국민 다수의 의사가 법원의 다수결에 의해 무시 당한 극히 비민주적인 판결이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맹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부시 반대자들이 그의 대통령 당선을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언론 매체들이 대 소란을 벌였을 것이지만 미국 언론은 대법원의 판결을 큰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이것 역시 미국 언론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부패한 다수가 대통령 탄핵, 민주주의 흔들어
이미 1세기 반 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한 프랑스의 토크빌은 다수결의 횡포와 위험을 경고했다. 다수결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독소를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가 3월12일 3분의 2 라는 다수의 위력만을 믿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해서 온 나라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은 것도 다수결의 위력만 알았지 그 행사의 위험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이제 고전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칙의 근거와 그 속에 내포돼 있는 위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수가 갖고 있는 도덕적 위력은 한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 소수의 국회의원보다는 다수의 의원 속에서 더 많은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사람의 지능에 적용한 평등 원칙의 귀결이다. 다수결의 또 하나의 도덕적인 근거는 최대 다수의 이익이 소수의 이익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사회 내의 이해 대립이 양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때는 다수의 의견이 쉽게 존중 받기 어려운 때가 생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다수를 확보하면 사실상 막강한 힘을 갖는다. 여론 역시 다수를 밀어 주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다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다수의 횡포가 된다. 소수의 승복이 없는 다수결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혁명 사태를 유발할 위험도 있다.
다수의 횡포와 관련해서 부패한 다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이해 타산 끝에 흥정해서 만들어 낸 다수를 말한다. 순수한 다수도 횡포의 위험이 있는데 하물며 부패한 정치인들이 흥정한 다수가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임기가 한달밖에 남지 않은 국회 의원들이 자기들의 선거를 의식하고 취임 1년 밖에 안 된 대통령의 말 트집을 잡아 탄핵을 발의하는 행위도 부패한 다수 만이 상상할 수 있는 폭거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직선대통령 해임, 탄핵 아닌 국민투표에 맡겨야
대통령은 국회의원 한 사람도 해임할 수 없는데 국회는 전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임기 전에 탄핵(파면)할 수 있는 법률은 고쳐야 한다. 3권 분립의 원칙에 크게 저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해임하든지 소환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원칙에 맞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20일 앞둔 이 시점에서 당장 우리 국민이 취할 자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주시하며 4 15 총선에서 새롭고 깨끗한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다. 우리 헌재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 같은 비민주적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삼가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는 국민의 자세라고 본다. 국민의 다수를 대표하는 탄핵 반대 쪽도 찬성하는 쪽에 ‘다수의 횡포’라는 비난의 명분을 줄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런 자제가 실리적으로 탄핵 반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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