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 이하의 형을 선고받으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이 말은 법조계에서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다. 그 동안 항소심 재판관들 사이에서는 항소 사건 피고인들의 형량을 1·2개월 정도 줄여주는 경향도 강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법원이 ‘항소심 형량 깎아주기 관행’을 없애자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는 항소심 재판을 맡는 고등법원도 대법원과 같이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심 재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최근 법원의 이 같은 판결 경향을 알아봤다. /편집자주
항소심이 온정주의로 흐른다는 비판은 90년대 초부터 있어왔다. 이에 따라 항소심 형량의 적정성에 대한 토론도 몇 차례 있었지만 항소심 판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대법원과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 ‘1심 판결을 강화하고 항소심에서 불필요하게 형량을 줄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심 판결에 대한 파기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 1심 판결 파기율 줄어 = 항소심 파기율은 지난 76년 32.3%에서 85년 50.9%로 급상승했고 95년에는 63.1%로 10% 이상 높아져 법원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됐다.
하지만 파기율은 2000년 61.2%, 2001년 59.3%, 2002년 56.9%로 점차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51.7%로 감소했다.
1심 파기율 원인은 주로 유·무죄로 인해 파기가 아니라 양형 파기에 의한 형량 변경 때문이다. 지난해도 전체 파기율 중 양형파기율이 90%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1·2개월 형량을 줄여주는 초단기 감형률은 2002년 6.5%에서 지난해 3.0%로 절반 이상이 떨어졌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비율 역시 줄었다.
항소사건 중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비율은 2002년 13.6%에서 지난해 12.2%로 1.4%가 줄었다.
◆ 오히려 1심보다 형량 높아져 = 올해 들어 항소심에서 오히려 1심 선고보다 형량이 늘어난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고법 형사2부(전수안 부장판사)로부터 항소심 선고를 받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600만원이 선고됐다면 항소심에서는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3200만원으로 집행유예 기간이 길어지고 추징금이 올라갔다.
다음날인 28일 서울고법 형사3부(신영철 부장판사)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부녀자들을 납치,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0년에 보호감호가 선고된 박 모(40)씨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고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에 보호감호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부인까지 범행에 가담시키고 범행을 위해 인체 급소 위치와 변장술을 연구한 점,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점 등을 보면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상습적으로 초등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 모(33) 피고인에 대한 성폭력특별법위반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피고인이 20여 차례가 넘게 가학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렀고 어린이들을 학교까지 찾아가 유인하거나 등하교길에서 유인해 성추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은 오히려 형량이 가벼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 왜 1심 판결 강화하나 =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1심 법관들이 재판에 충실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대전고법산하 항소심 양형실무위원회는 지난 2월 회의에서“1심 법관들이 양형에 관해 무관심하게 되므로 적정한 양형을 위해 고심하지 않고 적당한 편의주의적 사고에 따라 양형을 하게 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상소나 파기를 피하기 위해 극히 낮은 형을 선고하거나, 반대로 항소심에서 감형될 것을 고려해 극히 높은 형을 선고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항소심의 높은 파기율은 1심과 항소심 사이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형량의 점진적인 하향화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는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도 항소심 재판에서 1∼2개월가량 형량을 줄여주는 경우가 예전에는 비일비재했다”며 “이 때문에 무조건 항소를 하고 보자는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했고 이는 곧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한편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항소심 법관과 1심 단독 법관들이 모여 양형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각자의 주관적인 양형기준 중 공통되는 부분을 모으면 심급간 양형편차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하지만 지난해부터 법원이 ‘항소심 형량 깎아주기 관행’을 없애자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일부 법관들 사이에서는 항소심 재판을 맡는 고등법원도 대법원과 같이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심 재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최근 법원의 이 같은 판결 경향을 알아봤다. /편집자주
항소심이 온정주의로 흐른다는 비판은 90년대 초부터 있어왔다. 이에 따라 항소심 형량의 적정성에 대한 토론도 몇 차례 있었지만 항소심 판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대법원과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 ‘1심 판결을 강화하고 항소심에서 불필요하게 형량을 줄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심 판결에 대한 파기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 1심 판결 파기율 줄어 = 항소심 파기율은 지난 76년 32.3%에서 85년 50.9%로 급상승했고 95년에는 63.1%로 10% 이상 높아져 법원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됐다.
하지만 파기율은 2000년 61.2%, 2001년 59.3%, 2002년 56.9%로 점차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51.7%로 감소했다.
1심 파기율 원인은 주로 유·무죄로 인해 파기가 아니라 양형 파기에 의한 형량 변경 때문이다. 지난해도 전체 파기율 중 양형파기율이 90%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1·2개월 형량을 줄여주는 초단기 감형률은 2002년 6.5%에서 지난해 3.0%로 절반 이상이 떨어졌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비율 역시 줄었다.
항소사건 중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비율은 2002년 13.6%에서 지난해 12.2%로 1.4%가 줄었다.
◆ 오히려 1심보다 형량 높아져 = 올해 들어 항소심에서 오히려 1심 선고보다 형량이 늘어난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고법 형사2부(전수안 부장판사)로부터 항소심 선고를 받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600만원이 선고됐다면 항소심에서는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3200만원으로 집행유예 기간이 길어지고 추징금이 올라갔다.
다음날인 28일 서울고법 형사3부(신영철 부장판사)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부녀자들을 납치,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0년에 보호감호가 선고된 박 모(40)씨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고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에 보호감호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부인까지 범행에 가담시키고 범행을 위해 인체 급소 위치와 변장술을 연구한 점,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점 등을 보면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상습적으로 초등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 모(33) 피고인에 대한 성폭력특별법위반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피고인이 20여 차례가 넘게 가학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렀고 어린이들을 학교까지 찾아가 유인하거나 등하교길에서 유인해 성추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은 오히려 형량이 가벼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 왜 1심 판결 강화하나 =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1심 법관들이 재판에 충실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대전고법산하 항소심 양형실무위원회는 지난 2월 회의에서“1심 법관들이 양형에 관해 무관심하게 되므로 적정한 양형을 위해 고심하지 않고 적당한 편의주의적 사고에 따라 양형을 하게 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상소나 파기를 피하기 위해 극히 낮은 형을 선고하거나, 반대로 항소심에서 감형될 것을 고려해 극히 높은 형을 선고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항소심의 높은 파기율은 1심과 항소심 사이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형량의 점진적인 하향화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는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도 항소심 재판에서 1∼2개월가량 형량을 줄여주는 경우가 예전에는 비일비재했다”며 “이 때문에 무조건 항소를 하고 보자는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했고 이는 곧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한편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항소심 법관과 1심 단독 법관들이 모여 양형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각자의 주관적인 양형기준 중 공통되는 부분을 모으면 심급간 양형편차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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