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54·비례대표)은 17대 국회가 개원한 5월 31일 눈물을 흘렸다. “노동자 의원이 한 명만 있었어도…”라고 서러움을 삼켰던 지난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 단 의원은 밖에서 같은 설움을 삼키고 있을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노동자 의원 1호’다. “노동자들에게 쓰임새가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지금 그의 지상과제다.
노동자 단 의원의 삶은 노동현장과 차가운 감방, 그리고 수배생활로 채워졌다. 89년 첫 구속 이후 5년 4개월 동안 다섯 차례 구속됐고 3년 3개월을 수배당하며 지냈다.
그의 투쟁의 역사는 1983년 동아건설 창동 공장에 취업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첫 노조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노동조합협의회 의장으로 있던 89년, 서울지하철 파업과 관련해 구속되었고, 90년대 민주노총 전신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99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대정부 투쟁을 주도했다. 그리고 2004년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단 의원의 몸은 국회에 있지만 마음은 현장에 있다. 그가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반지에서 그런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 반지는 지난 96년 1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이 해산할 때 사무총국 직원들이 기념으로 함께 맞춘 것이다. 민노당 의원들 중 이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심상정 의원과 단 의원 뿐이다. 심 의원과 함께 별칭 ‘단심’이라고도 불리는 단 의원의 전노협 반지는 노동계에 대한 ‘일편단심’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단 의원은 최근 금속노조 파업찬반투표에 참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는 단 의원이 ‘강성’이라는 비판과 통한다. 그러나 단 의원은 “노동자들이 부를 때 가지 않는다면 노동자 의원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런 걸 강성이라고 한다면 난 어쩔 수 없이 강성일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편, 개원 후 보름여가 지난 지금 단 의원의 속내는 복잡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기싸움이 계속되는 국회를 보면서 그는 “이 곳에서 일을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면서도 “그래서 민노당과 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이제 단 의원은 밖에서 같은 설움을 삼키고 있을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노동자 의원 1호’다. “노동자들에게 쓰임새가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지금 그의 지상과제다.
노동자 단 의원의 삶은 노동현장과 차가운 감방, 그리고 수배생활로 채워졌다. 89년 첫 구속 이후 5년 4개월 동안 다섯 차례 구속됐고 3년 3개월을 수배당하며 지냈다.
그의 투쟁의 역사는 1983년 동아건설 창동 공장에 취업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첫 노조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노동조합협의회 의장으로 있던 89년, 서울지하철 파업과 관련해 구속되었고, 90년대 민주노총 전신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99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대정부 투쟁을 주도했다. 그리고 2004년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단 의원의 몸은 국회에 있지만 마음은 현장에 있다. 그가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반지에서 그런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 반지는 지난 96년 1월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이 해산할 때 사무총국 직원들이 기념으로 함께 맞춘 것이다. 민노당 의원들 중 이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심상정 의원과 단 의원 뿐이다. 심 의원과 함께 별칭 ‘단심’이라고도 불리는 단 의원의 전노협 반지는 노동계에 대한 ‘일편단심’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단 의원은 최근 금속노조 파업찬반투표에 참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는 단 의원이 ‘강성’이라는 비판과 통한다. 그러나 단 의원은 “노동자들이 부를 때 가지 않는다면 노동자 의원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런 걸 강성이라고 한다면 난 어쩔 수 없이 강성일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편, 개원 후 보름여가 지난 지금 단 의원의 속내는 복잡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기싸움이 계속되는 국회를 보면서 그는 “이 곳에서 일을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면서도 “그래서 민노당과 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