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이 내 인생 모든 것 파괴”

실직·이혼, 국가에 대한 믿음마저 사라져 … 대학땐 전형적 모범생

지역내일 2004-07-06 (수정 2004-07-06 오후 2:37:55)
시민단체와 학계로부터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개폐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이미 17대 국회가 여야 모두 이 법의 개정이나 폐지를 공약한 가운데 오는 12일 국가인권위가 법무부에 공식 개폐 권고를 할 방침이다. 법무부 또한 국회의 본격 논의를 대비,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새 법률안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국가보안법의 현주소에 대해 분석한다. /편집자주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가정보원, 경찰청 보안국, 검찰청 공안부가 3년여에 걸친 시간과 인력, 경비를 투입해 저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습니다.”
안덕영(41·사진)씨 두 눈에는 날이 서있다. 그의 삶은 국보법의 덫에 걸려 산산히 파괴됐다. 그가 얻은 것은 실직과 이혼의 상처, 막대한 금전적 손실뿐만이 아니다. 지난 2년여 동안 그는 국가에 대한 모든 믿음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믿기지 않은 연행과정= 안덕영씨는 2002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부인과 네 살된 딸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가 서울 성북구 고대역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연행됐다.
두 팔에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면서 그는 공포에 질린 딸과 부인에게 “뭔가 잘못됐으니 정 모에게 연락해봐라”고 친구이름을 외쳤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 소령으로 근무하고 있던 정씨는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한 순간 ‘어버이날을 맞아 방송국에서 몰래 카메라를 찍는구나’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리워진 눈을 떠보니 그가 도착한 곳은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그에게 대뜸 내민 것은 간첩혐의였다.
“다짜고짜 김일성 유일사상과 통일연방제에 관한 사상교육을 받은 내용을 자백하라는 거예요.”
처음 3일 동안은 빨간 백열등 아래서 잠도 안재우고 밤낮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시로 얼굴이 바뀌는 수사관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2002년 1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나올 때까지 182일 동안 26㎏이 감량될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검찰은 그를 국가보안법위반(회합과 통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네가지 혐의를 걸어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그는 1년 반동안 항소심 재판에 매달린 끝에 지난 5월 13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말하자면 간첩누명을 벗은 것이다.
◆일본 유학이 간첩행위로 둔갑=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82학번인 그는 대학시절 단 한번도 집회나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을 만큼 국가보안법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일찌감치 학군단(ROTC 24기)을 지원해 군복무를 마친 그는 사업상 일본방문 기회가 잦았다. 대학졸업 후인 지난 90년 선진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쓰쿠바 예술대학원에 진학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조총련계와 민단계가 동일한 숫자로 임원을 구성해 공동운영하고 있는 ‘조선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것이 그가 조총련계와 공식적으로 맺은 유일한 인연이다.
그와는 달리 학군단시절 사귄 친구들은 모두 직업군인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시절 사귄 친구들이‘안덕영 간첩사건’의 배후에 있었다. 그는 “간첩사건이 99년 3월 18일 친구 정 모씨가 공식적으로 제보함으로써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정 모 중령은 그가 고대역에서 끌려가면서 부인에게 연락하라고 외쳤던 바로 그 사람. 그에 대한 수사는 가장 절친했던 정모 중령과 배 모 중령 등 믿었던 친구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군수사기관은 도청과 미행을 통해 사업상 일본을 드나드는 안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지만 간첩행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자 친구인 특전사 배 모 소령을 동원했다. 2차례에 걸쳐 배 모 소령은 일본 동경의 조선장학회를 방문하도록 유도했고 조총련계 인사를 만나게 했다. 이로써 안씨에게 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혐의를 적용, 기소한 것이다.
그는 “검사측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민간인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나를 잘알고 있는 현역군인이었다. 사건에 관여한 군인들은 내 유죄판결을 계기로 5명 모두 소령에서 중령 계급장을 달게 됐다”고 말했다.
◆국보법은 남용여지가 큰 악법= 그는 “김대중 정권 출범이후 국가보안법 존폐론에 위기의식을 느낀 집단들이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나를 표적으로 삼아 사건을 조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가 되어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열리는 국보법 폐지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일본을 자주 왕래하다보면 만나는 사람이 조총련인지, 민단계인지 알 수가 없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가지고 재일대남공작지도원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국가보안법상 회합 통신, 지령수수 및 공작금 수수로 만들어놓는 것”이라며 “이 법이 있는 한 수사당국은 끊임없이 악용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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