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청산 너무 늦었다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여야 국회의원 171명이 서명한 개정안은 조사대상과 조사위원회의 권한 확대 및 활동기간 연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3월 우여곡절 끝에 입법된 현행법은 ‘진상규명 저지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나귀 귀 빼고 뭐 빼면 남을 게 무어냐”는 비속한 말로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나라당의 반대로 조사대상이 너무 축소되고 기준도 모호해진 것을 두고 한 소리들이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부 신문사 창업주가 조사대상이 되어 한나라당과 해당 신문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지만, 여론은 개정안을 반기는 것 같다. 일부 언론매체의 비공식 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 봄 한 인터넷 매체가 친일 인명사전 편찬비용 공모 캠페인을 시작하자, 열 하루 만에 목표액 5억원이 걷힌 일도 다수 국민의 생각을 말해주는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가까운 2차대전만 보자. 프랑스와 독일이 나치 협력과 전쟁범죄를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산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전쟁과 관련된 나라들 가운데, 전쟁기간의 부끄러운 일들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광복 60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지난 일의 진상을 조사해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때늦은 논의가 이렇게 시끄럽다. 왜들 그러느냐고 외국인들이 물을까봐 겁난다. 광복 직후 제정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법에 따라 일제 때의 악질 고등계 형사를 연행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반민특위가 강제해산 당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기에, 이번만은 꼭 성사시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 많은 국민의 염원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불행의 연속으로 점철된 까닭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반민족적 범죄와 유산을 깨끗이 청소하지 못한데 그 연원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광복절이나 삼일절 같은 경축일에 단상에서 상장을 주는 사람은 모두 친일파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독립운동가거나 그 후손이라는 말이 있었다. 친일파는 대대로 잘 살고 독립운동가는 후손도 못산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을사오적 이근택 형제의 후손이 할아버지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낸 일이 최근에 보도되었다.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의 후손들도 그런 소송을 해 땅을 되찾은 일이 있었다. 친일파가 대대로 잘 산다는 사실을 증명한 이 기막힌 현상은 민족 반역자의 치부와 대물림을 용인한 일제시대 법체계가 혁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처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중용해 기를 살려준 대한민국 체제와 법 제도가 그런 부조리를 낳았다.
광복 직후 미국 군정시절 이래 신생한국 정부는 일제에 협력한 총독부 시대 관리들의 독무대였다. 권력기관의 핵심인 경찰과 군의 실상을 돌아보자. 1946년 경위 이상 전국 경찰간부 1157명의 80%가 넘는 949명이 식민지 경찰 출신이었다. 4.19 당시 각 지방 경찰국장 11명 가운데 6명이 일제 경찰출신, 4명이 일본군 또는 관리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친일파 세력이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내렸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다. 광복 10년이 지난 1956년 우리 육군은 참모총장과 군사령관 2명, 그리고 6명의 군단장 전원이 일본군 출신이었다. 관료와 법조계를 필두로 정치, 사회, 문화, 산업, 교육계 등 어느 분야 한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별법은 사실 밝혀 뒷날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
도덕과 윤리와 가치관이 뒤엎어진 미개한 시대였다. 특히 문화계와 학계가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정신문화의 토양을 병들게 한 요인이 되었다. 몸을 조아려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시로 다짐한 춘원 이광수 같은 문인의 아첨을 단죄하지 않고 교과서에 작품을 게재해 널리 읽히게 함은 민족의 정기를 스스로 부정한 일이었다.
특별법은 친일행위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있었던 일을 밝혀 그대로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뒷날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조사를 받게 될 것이 겁이 나서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반민족 행위를 했다는 고백과 다를 것이 없다.
문 창 재 객원논설위원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여야 국회의원 171명이 서명한 개정안은 조사대상과 조사위원회의 권한 확대 및 활동기간 연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3월 우여곡절 끝에 입법된 현행법은 ‘진상규명 저지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나귀 귀 빼고 뭐 빼면 남을 게 무어냐”는 비속한 말로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나라당의 반대로 조사대상이 너무 축소되고 기준도 모호해진 것을 두고 한 소리들이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부 신문사 창업주가 조사대상이 되어 한나라당과 해당 신문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지만, 여론은 개정안을 반기는 것 같다. 일부 언론매체의 비공식 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 봄 한 인터넷 매체가 친일 인명사전 편찬비용 공모 캠페인을 시작하자, 열 하루 만에 목표액 5억원이 걷힌 일도 다수 국민의 생각을 말해주는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가까운 2차대전만 보자. 프랑스와 독일이 나치 협력과 전쟁범죄를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산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전쟁과 관련된 나라들 가운데, 전쟁기간의 부끄러운 일들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광복 60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지난 일의 진상을 조사해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때늦은 논의가 이렇게 시끄럽다. 왜들 그러느냐고 외국인들이 물을까봐 겁난다. 광복 직후 제정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법에 따라 일제 때의 악질 고등계 형사를 연행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반민특위가 강제해산 당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기에, 이번만은 꼭 성사시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 많은 국민의 염원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불행의 연속으로 점철된 까닭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반민족적 범죄와 유산을 깨끗이 청소하지 못한데 그 연원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광복절이나 삼일절 같은 경축일에 단상에서 상장을 주는 사람은 모두 친일파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독립운동가거나 그 후손이라는 말이 있었다. 친일파는 대대로 잘 살고 독립운동가는 후손도 못산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을사오적 이근택 형제의 후손이 할아버지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낸 일이 최근에 보도되었다.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의 후손들도 그런 소송을 해 땅을 되찾은 일이 있었다. 친일파가 대대로 잘 산다는 사실을 증명한 이 기막힌 현상은 민족 반역자의 치부와 대물림을 용인한 일제시대 법체계가 혁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처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중용해 기를 살려준 대한민국 체제와 법 제도가 그런 부조리를 낳았다.
광복 직후 미국 군정시절 이래 신생한국 정부는 일제에 협력한 총독부 시대 관리들의 독무대였다. 권력기관의 핵심인 경찰과 군의 실상을 돌아보자. 1946년 경위 이상 전국 경찰간부 1157명의 80%가 넘는 949명이 식민지 경찰 출신이었다. 4.19 당시 각 지방 경찰국장 11명 가운데 6명이 일제 경찰출신, 4명이 일본군 또는 관리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친일파 세력이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내렸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다. 광복 10년이 지난 1956년 우리 육군은 참모총장과 군사령관 2명, 그리고 6명의 군단장 전원이 일본군 출신이었다. 관료와 법조계를 필두로 정치, 사회, 문화, 산업, 교육계 등 어느 분야 한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별법은 사실 밝혀 뒷날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
도덕과 윤리와 가치관이 뒤엎어진 미개한 시대였다. 특히 문화계와 학계가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정신문화의 토양을 병들게 한 요인이 되었다. 몸을 조아려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시로 다짐한 춘원 이광수 같은 문인의 아첨을 단죄하지 않고 교과서에 작품을 게재해 널리 읽히게 함은 민족의 정기를 스스로 부정한 일이었다.
특별법은 친일행위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있었던 일을 밝혀 그대로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뒷날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조사를 받게 될 것이 겁이 나서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반민족 행위를 했다는 고백과 다를 것이 없다.
문 창 재 객원논설위원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