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수십억원 약정 강요는 너무 큰 부담”
한달 70만원도 채 못 받는 경우도 있어 … 자영업 꿈 쫓으며 증권사에 사표
지역내일
2004-07-28
(수정 2004-07-29 오전 11:53:39)
그는 증권맨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증권사에만 몸담았던 그는 지난 5월, 증시가 꼬꾸라지면서 인생도 꼬꾸라졌다. 20년 청춘을 바쳤던 증권사를 그는 그렇게 떠났다.
손명호(가명·43). 그가 맡았던 마지막 증권사 보직은 서울 강북의 조그만 지점장이었다. 그래도 손씨는 증권사를 떠나면서 제 집 하나는 손에 쥐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한다. 손씨 친구인 증권사 지점장 가운데는 제 집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화려하고 대박을 노릴 수 있다는’ 증권사 지점장이 말이다.
지점장이 아니더라도 과장·차장의 업무부담은 상당하다. 한달에 올려야하는 약정이 22억원. 증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15~22억원 내외다. 계좌에 묻어둔 예탁금이 아니라 실제 매매가 일어난 금액이 22억원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코스닥 기준 개인 투자자의 평균 거래주가가 2500원 내외였으니까 한 달이면 88만주, 매일 4만4000주 이상을 사거나 팔도록 고객을 ‘꼬셔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안되면 자기 돈이라도 집어넣어서 매매를 일으켜야 한다.
손씨가 있던 증권사의 경우 22억원을 꼬박 채우는 사람은 전체의 30%도 되지 못했다. 직급별로 정해진 약정고에 따라 서열을 매긴 뒤 하위 15%는 기본급의 30%를 깎는다. 다음달에도 약정에 따라 서열을 매겨 하위 15%는 다시 기본급의 30%를 깎는다. 이런 식으로 평가하다보니 손 지점장 직원 가운데는 한달 꼬박 일하고도 채 70만원을 받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가 직원 사정을 봐주지는 않는다. 영업점 직원 1명이 본사 직원 2명을 먹여 살려야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설사 약정 22억원을 올렸다 해도 손에 쥐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최근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채권형 펀드나 MMF(머니마켓펀드)는 더 돈이 안된다. 시장이 불투명하니 고객은 언제라도 돈을 찾길 원하고 이런 상품 특성상 장기 운용을 하지 못한다. 당연히 수익이 낮으니 성과급으로 받는 돈도 적은, 악순환이다. MMF 100억원을 한달 유치하더라도 영업직원은 채 40만원도 건지지 못한다. 직원들은 약정 높이기와 각종 수익증권 판매 전선으로 내몰리고 지점장은 은행 예금 모셔오기에 목숨을 건다.
그래도 “지점장들은 단말기(시세표) 쳐다보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하더라”고 손 지점장은 말했다. ‘증권사 직원이면서 단말기를 보지 않아 행복하다’는 것이 지금 증권가 현실이다.
일선 지점에서는 고객들과의 다툼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운용을 잘못해도 뒤집어쓰는 건 일선 영업직원이다. 수익성을 둘러싼 갈등이 결국 다툼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임 매매를 일삼다가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증권사 직원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손실금을 물어주기도 한다. 일임 매매 문제가 불거질 경우 손실금 보상 책임을 없지만 증권사 직원은 경고에서 감봉, 면직(해임) 등 심각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고객에게 돈을 물어주고 소를 취하하는 게 때로는 속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남들은 대박이 나서 해 뜨고 날 바뀌면 돈을 긁어 담는다던 80년대 후반, 손 지점장은 거래소 시장부에서 근무했다. 남들 주문표에 열심히 도장 찍어주다보니 세월은 금새 저만치 달아나 있었고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요즘 유통업을 해보려고 알아보는 중이다. 음식점이 위험부담이 적지만 유통업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자본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차트와 매매 주문 속에서 살아온 손 지점장은 유통사 사장님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증권사를 그만둔 두달새 손 지점장은 담배가 곱절로 늘었다.
/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손명호(가명·43). 그가 맡았던 마지막 증권사 보직은 서울 강북의 조그만 지점장이었다. 그래도 손씨는 증권사를 떠나면서 제 집 하나는 손에 쥐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한다. 손씨 친구인 증권사 지점장 가운데는 제 집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화려하고 대박을 노릴 수 있다는’ 증권사 지점장이 말이다.
지점장이 아니더라도 과장·차장의 업무부담은 상당하다. 한달에 올려야하는 약정이 22억원. 증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15~22억원 내외다. 계좌에 묻어둔 예탁금이 아니라 실제 매매가 일어난 금액이 22억원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코스닥 기준 개인 투자자의 평균 거래주가가 2500원 내외였으니까 한 달이면 88만주, 매일 4만4000주 이상을 사거나 팔도록 고객을 ‘꼬셔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안되면 자기 돈이라도 집어넣어서 매매를 일으켜야 한다.
손씨가 있던 증권사의 경우 22억원을 꼬박 채우는 사람은 전체의 30%도 되지 못했다. 직급별로 정해진 약정고에 따라 서열을 매긴 뒤 하위 15%는 기본급의 30%를 깎는다. 다음달에도 약정에 따라 서열을 매겨 하위 15%는 다시 기본급의 30%를 깎는다. 이런 식으로 평가하다보니 손 지점장 직원 가운데는 한달 꼬박 일하고도 채 70만원을 받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가 직원 사정을 봐주지는 않는다. 영업점 직원 1명이 본사 직원 2명을 먹여 살려야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설사 약정 22억원을 올렸다 해도 손에 쥐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최근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채권형 펀드나 MMF(머니마켓펀드)는 더 돈이 안된다. 시장이 불투명하니 고객은 언제라도 돈을 찾길 원하고 이런 상품 특성상 장기 운용을 하지 못한다. 당연히 수익이 낮으니 성과급으로 받는 돈도 적은, 악순환이다. MMF 100억원을 한달 유치하더라도 영업직원은 채 40만원도 건지지 못한다. 직원들은 약정 높이기와 각종 수익증권 판매 전선으로 내몰리고 지점장은 은행 예금 모셔오기에 목숨을 건다.
그래도 “지점장들은 단말기(시세표) 쳐다보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하더라”고 손 지점장은 말했다. ‘증권사 직원이면서 단말기를 보지 않아 행복하다’는 것이 지금 증권가 현실이다.
일선 지점에서는 고객들과의 다툼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운용을 잘못해도 뒤집어쓰는 건 일선 영업직원이다. 수익성을 둘러싼 갈등이 결국 다툼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임 매매를 일삼다가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증권사 직원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손실금을 물어주기도 한다. 일임 매매 문제가 불거질 경우 손실금 보상 책임을 없지만 증권사 직원은 경고에서 감봉, 면직(해임) 등 심각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고객에게 돈을 물어주고 소를 취하하는 게 때로는 속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남들은 대박이 나서 해 뜨고 날 바뀌면 돈을 긁어 담는다던 80년대 후반, 손 지점장은 거래소 시장부에서 근무했다. 남들 주문표에 열심히 도장 찍어주다보니 세월은 금새 저만치 달아나 있었고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요즘 유통업을 해보려고 알아보는 중이다. 음식점이 위험부담이 적지만 유통업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자본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차트와 매매 주문 속에서 살아온 손 지점장은 유통사 사장님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증권사를 그만둔 두달새 손 지점장은 담배가 곱절로 늘었다.
/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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