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파업 ‘사정권’에 대통령 잡혀

노동계, 공권력 투입하면 정권퇴진투쟁 전개할 터

지역내일 2000-12-26
국민·주택은행 파업의 사정거리 안에 김대중 대통령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26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노동자의 정당하지 못한 주장,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투쟁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세로 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을 갖고 싸운다면 별도 문제지만 합병을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은 은행의 경영진과 주주가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합병 백지화”를 주장하며 지난 21일부터 경기도 일산 국민은행연수원에서 농성중인 국민·주택은행 노조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 노조원도 주주다 = 주택은행노조 관계자는 “우리사주 의무보유기간이 1년 이하로 줄어들어 많이 팔기는 했지만 한 때 직원들의 소유지분이 8%대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며 “노조원도 주주라는 사실을 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민은행노조 관계자는 “합병과 근로조건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는 대통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합병하면 대량감원 등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에 투쟁에 나선 것인데 ‘부작용 해소책’을 내놓기는커녕 ‘엄청 대처’를 운운하다니 갈 데까지 간 모양”이라고 말했다.
특히 파업참여 은행원들은 김 대통령이 “노동자가 경영까지 간섭하는 나라에 대해 세계시장이 신뢰하겠냐”고 말한 것과 관련 크게 반발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 바꾸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나쳤다”며 “언제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노동자가 경영까지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누가 믿고 따르겠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후 파업 농성장 주변에는 2000∼3000명 수준에 머물렀던 경찰들이 9500여명 가량으로 증원·배치됐다. 일순 파업 대오를 지키고 있는 사수대와 경찰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됐다.
◇ 노동계 전체가 은행 파업 엄호 =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26일 오전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중인 금융노조 이용득 위원장 등을 참석시킨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주택·국민은행 총파업 투쟁에 대해 정부가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한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민과 함께 현정부 퇴진투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주택·국민은행 파업현장에 경찰을 투입하면 정권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한국통신노조의 파업에 이은 은행 노동자들의 투쟁은 빈부격차만 확대하는 정부의 잘못된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의 시작”이라며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다면 정권은 돌이킬 수 없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양대 노총 모두가 국민·주택은행 파업과 관련해 동일한 인식을 드러냄에 따라 정부가 무리하게 파업농성 대오를 진압한다면 “반(反)정부 투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구조조정이 군사작전 같다 = 다수의 국민들은 구조조정을 원하고 있다. 지난날의 구조와 시스템으로는 효율과 경쟁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제2의 IMF’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가한 은행원들도 “구조조정을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반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하대 윤진호(경제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진행형인 금융구조조정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방법이 올바르냐에 대해 은행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구조조정을 군사작전처럼 전격적으로 해치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윤 교수는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은 합병이 아니라 부실채권 정리, 관치금융 청산, 여신심사제도의 투명성 제고, 경영의 민주화 등이 오히려 핵심”이라며 “합병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금융당국과 은행 경영진의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군사작전처럼 시한을 못박고 직접 나서서 독려한 것은 관치(官治)를 거부하는 은행노동자들의 기세와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외국의 경우를 보면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필요성을 알리고,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거친다”며 “또 부작용이 있다면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국민·주택은행 합병에는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금융노조 쪽의 주장은 묵살됐다.
대통령이 ‘묵살은 당연했다’는 반응을 보임에 따라 은행 파업 ‘사정권’에 대통령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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