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정동영 황우석
8월 10일 오후 7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50대 초반의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문리대 72학번 마당 모임. 모임 멤버인 이해찬 총리가 친구들을 초대한 것. 대학교수 언론인 공무원이 많았다. 매달 모일 때는 참석자가 20명 안팎. 그러나 이날은 40명이나 모였다. 게스트로 수의대 72학번인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참석했다. 세계적인 학자로 떠오른 황 교수. 그는 배아줄기세포연구와 한국의 미래에 대해 특강을 했다. 명성만큼이나 명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 것. 그는 밤세워 연구하는 청년 과학자 등 우리 젊은이들이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데다 애국심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과학자들이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날 황 교수는 마당 회원으로 추천됐다.
실세총리, 외교안보팀장, 그리고 세계적인 생명과학자
모임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참석했다. 그는 공관에 초대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친구를 대표해 건배를 제의했다. ‘대독총리’가 아니라 실제로 국정을 총괄 지휘하는 ‘실세총리’라며 이 총리의 건승과 친구들의 우정을 기원했다. 정 장관은 지난번 우리당 총무 경선에서 자기가 이 총리를 지원했다면 그가 총무가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총리가 못됐을 것이라며 총리가 된 것은 자신의 ‘선견지명’이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총리도 초대에 응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자신도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온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황우석 교수를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세계적인 과학자로 호칭했다. 그리고 정동영 장관에 대해서도 차기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치켜세웠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못하는 이 총리의 성격상 우리당의 차기 주자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정 장관이고 그가 대통령이 될 확률도 가장 높다는 소리로 들렸다. 정치권의 실세인 두 사람이 서로 협력 상생하지 않고 갈등 반목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찌할 가 걱정하던 친구들의 근심을 그들은 이날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걱정해주는 친구였다.
대부분 6.25전쟁 중이나 전쟁 직후에 태어난 72학번은 불운한 세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입시에 시달렸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0월유신이 터져 암울한 시기에 젊은 시기를 보냈다. 하숙방과 다방 그리고 막걸리집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을 목말라했다. 유신시절 그들에게는 미래와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때로는 격렬히 반항해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나 그들은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서 좌절과 낙망에 익숙해진 세대였다. 낙망을 때로는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년문화로 달래기도 했으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불운한 세대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고 5월광주항쟁에 이어 12.12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탄생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87년 넥타이를 맨 채 거리시위에 나섰던 72학번은 어느덧 50대 초반이 되어 사회 중심에 진입했다. 참여정부의 세대교체 바람에 힘입어 우리 사회 각계의 정상에 오르는 인물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 살리기 과거 청산에 앞장서야 … 거짓말 말실수는 금물
정치권만해도 이 총리와 정 장관 이외에도 천정배 우리당 총무가 서울법대 72학번. 얼마전 부친의 경력 문제로 사임한 신기남 우리당 전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1학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신시절 대학을 다닌 70년대 초반 학번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 뿐 아니다. 학계 실업계 공직 등 각계에서 70년대 초반 학번인 50대 초반의 인사는 그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일제하에서 친일할 일도 없었고 전쟁 중 용공에 가담할 기회도 없었던, 그러나 군부독재의 쓰라린 경험과 경제성장의 기적을 체험한 50대 초반은 분명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는 것. 또 일제에 국권을 뺏긴 1905년이 백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과거사를 정리해 후손에 물려주는 것. 또 그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그것은 선배인 50대 후반과 60,70대를 존중하고 386 등 후배들을 포용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말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교훈이기도 하다.
정 세 용 논설 주간
8월 10일 오후 7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50대 초반의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문리대 72학번 마당 모임. 모임 멤버인 이해찬 총리가 친구들을 초대한 것. 대학교수 언론인 공무원이 많았다. 매달 모일 때는 참석자가 20명 안팎. 그러나 이날은 40명이나 모였다. 게스트로 수의대 72학번인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참석했다. 세계적인 학자로 떠오른 황 교수. 그는 배아줄기세포연구와 한국의 미래에 대해 특강을 했다. 명성만큼이나 명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 것. 그는 밤세워 연구하는 청년 과학자 등 우리 젊은이들이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데다 애국심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과학자들이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날 황 교수는 마당 회원으로 추천됐다.
실세총리, 외교안보팀장, 그리고 세계적인 생명과학자
모임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참석했다. 그는 공관에 초대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친구를 대표해 건배를 제의했다. ‘대독총리’가 아니라 실제로 국정을 총괄 지휘하는 ‘실세총리’라며 이 총리의 건승과 친구들의 우정을 기원했다. 정 장관은 지난번 우리당 총무 경선에서 자기가 이 총리를 지원했다면 그가 총무가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총리가 못됐을 것이라며 총리가 된 것은 자신의 ‘선견지명’이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총리도 초대에 응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자신도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온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황우석 교수를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세계적인 과학자로 호칭했다. 그리고 정동영 장관에 대해서도 차기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치켜세웠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못하는 이 총리의 성격상 우리당의 차기 주자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정 장관이고 그가 대통령이 될 확률도 가장 높다는 소리로 들렸다. 정치권의 실세인 두 사람이 서로 협력 상생하지 않고 갈등 반목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찌할 가 걱정하던 친구들의 근심을 그들은 이날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걱정해주는 친구였다.
대부분 6.25전쟁 중이나 전쟁 직후에 태어난 72학번은 불운한 세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입시에 시달렸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0월유신이 터져 암울한 시기에 젊은 시기를 보냈다. 하숙방과 다방 그리고 막걸리집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을 목말라했다. 유신시절 그들에게는 미래와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때로는 격렬히 반항해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나 그들은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서 좌절과 낙망에 익숙해진 세대였다. 낙망을 때로는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년문화로 달래기도 했으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불운한 세대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고 5월광주항쟁에 이어 12.12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탄생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87년 넥타이를 맨 채 거리시위에 나섰던 72학번은 어느덧 50대 초반이 되어 사회 중심에 진입했다. 참여정부의 세대교체 바람에 힘입어 우리 사회 각계의 정상에 오르는 인물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 살리기 과거 청산에 앞장서야 … 거짓말 말실수는 금물
정치권만해도 이 총리와 정 장관 이외에도 천정배 우리당 총무가 서울법대 72학번. 얼마전 부친의 경력 문제로 사임한 신기남 우리당 전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1학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신시절 대학을 다닌 70년대 초반 학번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 뿐 아니다. 학계 실업계 공직 등 각계에서 70년대 초반 학번인 50대 초반의 인사는 그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일제하에서 친일할 일도 없었고 전쟁 중 용공에 가담할 기회도 없었던, 그러나 군부독재의 쓰라린 경험과 경제성장의 기적을 체험한 50대 초반은 분명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는 것. 또 일제에 국권을 뺏긴 1905년이 백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과거사를 정리해 후손에 물려주는 것. 또 그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그것은 선배인 50대 후반과 60,70대를 존중하고 386 등 후배들을 포용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말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교훈이기도 하다.
정 세 용 논설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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