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대자동차가 터키 합작진출을 발표하자 유럽과 일본의 기존 자동차업계는 바짝 긴장했다. 한해 전 인도에서 현지 생산한 상트로를 그해 동급 시장점유율 2위에 올려놓은 전력을 알기 때문이다. 이어 현대차 터키공장에서 엑센트와 그레이스가 연간 10만대 규모로 생산되면서 그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편집자주
보스포러스 해협에 밤이 들면 이스탄불의 노상카페 어디서나 나르길레라 불리는 물담배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보름달 휘영청 밝은 톱까프 사라이 주변은 그중에서도 외지인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 너나없이 피워 무는 이 항아리담배에서 퍼지는 온갖 과일향을 맡으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다.
나르길레는 담배가 아니라는 현지인의 말에 길이가 80센티미터는 됨직한 파이프를 힘차게 빨아들였다.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해 속았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렇게 잠깐 어지럽고 나면 곧 익숙해집니다”라니 대들지도 못한 채 주위를 둘러봤다. 야외 레스토랑의 기다란 의자에 각기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파이프를 문 채 걸터앉아 있었다.
그제야 어지러움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여행객들은 여기서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관광을 위해서만 매년 일천만 명 이상이 거쳐 간다는 거대도시 이스탄불. 도시를 유럽과 아시아로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 양안에서 불야성의 장관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과일향에 취하고 차이(터키 차의 일종)에 젖어들고 습기 없는 바닷바람에 나른하게 퍼질 무렵, 눈앞에서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상인이 종잇조각을 흔들어 보인다. 즉석 복권을 사라는 말이다.
거듭 “자판, 꼬레아” 하는 영감에게 “꼬레아”라 답하니 달려들 듯 팔을 벌리고는 한참을 너스레친다. 하는 수없이 복권을 한 뭉치 사서 긁는데 가만 보니 저 영감 입은 옷이 낯익다. 하얀 바탕에 파란 현대차 로고를 커다랗게 새긴 셔츠인 것이다. 어디서 구했냐고 하니 아들이 현대차를 샀다고 또 한참을 자랑한다. 잔돈푼 말고는 모조리 꽝을 긁은 뒤 그를 보낼 때쯤은 이미 차이를 너댓 잔 시켜먹은 뒤였다.
이스탄불은 할 말 많은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운 도시다. 호기심 많고 수완 뛰어난 이 도시 사람들은 특히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는 말은 곧 멍석 깔고 판 벌이자는 말로 들리는가 싶었다. 카팔르 차르시(또는 그랜드 바자르)라 불리며 3만 평방미터에 4000개 이상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고 하는 초대형 옥내시장에 들러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상인들이 여기저기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손짓한다. 그중 하나를 골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물건을 설명하기 전에 대개는 차이를 권한다. 언어가 무슨 문제랴, 상인들은 한국에 관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손님을 구슬린다. 결국 축구 이야기가 나오고 리용(이을용)이 트라브존스포르 팀으로 돌아오게 돼서 기쁘다는 데 합의하면 어느 쪽이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인정하게 되고, 필경 손님은 무언가를 사서 나갈 참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공존을 상징하는 이스탄불 최대의 걸작은 아마도 아야 소피아 박물관일 것이다. 이 건물은 몇 번의 증축과 재건축을 거쳐 537년에 지금 모습을 갖춘 뒤 916년간은 그리스 정교회당, 그후 481년간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고, 터키 공화국 수립 후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건물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할 당시 사흘간의 약탈을 허용하면서 이 건물만은 예외로 했다. 대신 기독교 성화를 회칠로 덮었는데, 1930년대 이래 지금까지 회칠을 벗기는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기둥 없이 네 선반 사이에서 무려 1500년 동안 온전하게 걸쳐 있는 거대한 돔, 그로부터 터키인의 강한 자부심과 넓은 포용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자동차생산의 메카로 부상
자신들의 조상이 동방에서 이동해 온 유목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터키인들에게 자동차는 매력적인 주제다.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를 마치 말처럼 생각하고 다루는 습성이 있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본 외지인이라면 이 사실을 잊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이즈미트라는 도시는 이스탄불 외곽 톨게이트에서 120킬로미터 거리에 있지만, 일단 터키 운전자에게 핸들을 맡기자 이 거리를 한 시간 남짓 걸려 주파했다. 속절없이 앉아 있는 초짜 방문객의 오금이 저리는지 마는지는 관심 밖. 그 와중에 주위를 달리는 자동차들과 시시때때로 경주를 펼치는데, 그럴 때면 속도계는 160을 마구 넘나든다.
명절이면 주요 일간지 1면에 어김없이 일일 교통사고 사망자 추이가 도표로 게재되고, 정부는 연간 캠페인으로 과속 자제를 호소하지만 소용없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달리는 이들에게 자동차의 성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인지 이스탄불 사람들은 축구만큼이나 자동차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나토의 일원이자 정식 유럽 국가로 인정받는 터키는 EU와는 관세동맹 국가이며 그 탓에 자동차도 유럽 차종을 선호해 왔다. 그러한 성향이 최근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해외 자동차업계가 터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시장의 잠재력과 국가의 입지 때문. 인구 7000만명에 실질 구매력 기준 GDP 7000달러, 그리고 여전히 거대한 지하경제를 지닌 나라. 그간 들쑥날쑥한 성장률과 높은 물가로 인해 경기 예측이 힘든 나라로 분류되어 온 터키는, 최근 서방으로부터 안정 성장 궤도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낮은 생산비용과 풍부하고 안정적인 노동력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에 따라 그간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 왔는데, 자동차는 투자 열기가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다. 이미 르노, 포드, 도요타, 혼다 등이 투자 증대 계획을 발표했고, 현대차(현대-아산)는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보다 생산대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현지 분석에 따르면 올해 60만대 가량의 자동차가 팔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인구나 GDP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량이다. 때문에 터키 내수시장의 잠재력에 거는 외국 업계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해외 자동차업계가 터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다른 이유는 이곳이 유럽 수출을 위한 전진기지라는 판단이다. 지난 해 터키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72.6%가 해외로, 그중 72.3%가 EU 시장에 팔려 나간 것으로 집계된다. 팔린 곳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순이니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성능은 유럽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차에 덜미 잡힌 도요타
그중 돈 많기로 소문난 후발주자, 도요타자동차의 움직임은 단연 주목된다. 도요타는 지난해 순익 1조1천억 엔을 벌어, 세계 4위이자 자동차업계 1위를 기록했다.
그 도요타가 올 3월 터키 현지 공장을 증설하면서 현지 시장 나아가 유럽 시장 장악에 본격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995년 현지 공장을 가동한 도요타의 지난해 터키 내 자동차 생산량은 7만840대로 전년대비 82% 늘어난 규모다. 도요타는 그중 6만1134대를 수출, 현재 터키의 2대 자동차 생산 업체이자 수출업체로 부상했다.
도요타의 파상공세 전략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터키 내 자동차 메이커별 시장 점유율 1위에서 5위까지는 유럽업체들이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6위가 현대, 8위가 도요타, 9위가 혼다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을 다시 비율로 보면 현대차가 8.4%로 3.5%에 머문 도요타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이에 대해 그간 본사 수출본부를 담당하다 최근 현지 법인장으로 부임한 임흥수 상무는, “7월말로 우리의 월별 시장점유율은 이미 10%를 넘어섰다”며 “이는 그동안 현지화 전략을 꾸준히 실천해 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도요타를 밀어낸 현지화 전략이란 무엇일까. 합작법인 현대아산의 윤준모 공장장은 한 예로 주행시험장을 든다. 즉 현대차는 모든 신차를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주행시험장을 가동중이지만, 도요타는 그러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거대한 공장 부지에 주행시험장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알 길 없다. 문제는 과속을 즐기는 터키인들의 성향을 그들의 유목민적인 습관과 연관지울 수는 있어도, 그들의 문화적 낙후성과 연결짓는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점이다.
현대차와 도요타, 해외 시장 제패를 둘러싼 두 회사의 경쟁은 인도에서 이미 비슷한 전철을 밟은 바 있다. 현대차 주재원들이 인도 현지 생산을 시작할 때 주목한 것 중 하나는 차체의 높이였다. 인도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어지간한 고속도로라도 여기저기 패인 곳이 많고, 더욱이 연중 우기가 길고 강수량도 많다. 인도인 말로 장마 때면 물소가 차도 위를 어슬렁거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차체를 높여 출시된 상트로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동차지만, 도요타는 자국에서 들여온 구형 자동차를 싸게 파는 데 만족했다. 이후 인도에서 도요타는 상트로, 액센트, 쏘나타 전 등급의 차종에서 한 번도 현대차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스탄불=김선태 기자 kst@naeil.com
/편집자주
보스포러스 해협에 밤이 들면 이스탄불의 노상카페 어디서나 나르길레라 불리는 물담배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보름달 휘영청 밝은 톱까프 사라이 주변은 그중에서도 외지인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 너나없이 피워 무는 이 항아리담배에서 퍼지는 온갖 과일향을 맡으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다.
나르길레는 담배가 아니라는 현지인의 말에 길이가 80센티미터는 됨직한 파이프를 힘차게 빨아들였다.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해 속았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렇게 잠깐 어지럽고 나면 곧 익숙해집니다”라니 대들지도 못한 채 주위를 둘러봤다. 야외 레스토랑의 기다란 의자에 각기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파이프를 문 채 걸터앉아 있었다.
그제야 어지러움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여행객들은 여기서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관광을 위해서만 매년 일천만 명 이상이 거쳐 간다는 거대도시 이스탄불. 도시를 유럽과 아시아로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 양안에서 불야성의 장관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과일향에 취하고 차이(터키 차의 일종)에 젖어들고 습기 없는 바닷바람에 나른하게 퍼질 무렵, 눈앞에서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상인이 종잇조각을 흔들어 보인다. 즉석 복권을 사라는 말이다.
거듭 “자판, 꼬레아” 하는 영감에게 “꼬레아”라 답하니 달려들 듯 팔을 벌리고는 한참을 너스레친다. 하는 수없이 복권을 한 뭉치 사서 긁는데 가만 보니 저 영감 입은 옷이 낯익다. 하얀 바탕에 파란 현대차 로고를 커다랗게 새긴 셔츠인 것이다. 어디서 구했냐고 하니 아들이 현대차를 샀다고 또 한참을 자랑한다. 잔돈푼 말고는 모조리 꽝을 긁은 뒤 그를 보낼 때쯤은 이미 차이를 너댓 잔 시켜먹은 뒤였다.
이스탄불은 할 말 많은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운 도시다. 호기심 많고 수완 뛰어난 이 도시 사람들은 특히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는 말은 곧 멍석 깔고 판 벌이자는 말로 들리는가 싶었다. 카팔르 차르시(또는 그랜드 바자르)라 불리며 3만 평방미터에 4000개 이상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고 하는 초대형 옥내시장에 들러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상인들이 여기저기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손짓한다. 그중 하나를 골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물건을 설명하기 전에 대개는 차이를 권한다. 언어가 무슨 문제랴, 상인들은 한국에 관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손님을 구슬린다. 결국 축구 이야기가 나오고 리용(이을용)이 트라브존스포르 팀으로 돌아오게 돼서 기쁘다는 데 합의하면 어느 쪽이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인정하게 되고, 필경 손님은 무언가를 사서 나갈 참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공존을 상징하는 이스탄불 최대의 걸작은 아마도 아야 소피아 박물관일 것이다. 이 건물은 몇 번의 증축과 재건축을 거쳐 537년에 지금 모습을 갖춘 뒤 916년간은 그리스 정교회당, 그후 481년간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고, 터키 공화국 수립 후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건물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할 당시 사흘간의 약탈을 허용하면서 이 건물만은 예외로 했다. 대신 기독교 성화를 회칠로 덮었는데, 1930년대 이래 지금까지 회칠을 벗기는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기둥 없이 네 선반 사이에서 무려 1500년 동안 온전하게 걸쳐 있는 거대한 돔, 그로부터 터키인의 강한 자부심과 넓은 포용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자동차생산의 메카로 부상
자신들의 조상이 동방에서 이동해 온 유목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터키인들에게 자동차는 매력적인 주제다.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를 마치 말처럼 생각하고 다루는 습성이 있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자동차를 타본 외지인이라면 이 사실을 잊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이즈미트라는 도시는 이스탄불 외곽 톨게이트에서 120킬로미터 거리에 있지만, 일단 터키 운전자에게 핸들을 맡기자 이 거리를 한 시간 남짓 걸려 주파했다. 속절없이 앉아 있는 초짜 방문객의 오금이 저리는지 마는지는 관심 밖. 그 와중에 주위를 달리는 자동차들과 시시때때로 경주를 펼치는데, 그럴 때면 속도계는 160을 마구 넘나든다.
명절이면 주요 일간지 1면에 어김없이 일일 교통사고 사망자 추이가 도표로 게재되고, 정부는 연간 캠페인으로 과속 자제를 호소하지만 소용없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달리는 이들에게 자동차의 성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인지 이스탄불 사람들은 축구만큼이나 자동차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나토의 일원이자 정식 유럽 국가로 인정받는 터키는 EU와는 관세동맹 국가이며 그 탓에 자동차도 유럽 차종을 선호해 왔다. 그러한 성향이 최근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해외 자동차업계가 터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시장의 잠재력과 국가의 입지 때문. 인구 7000만명에 실질 구매력 기준 GDP 7000달러, 그리고 여전히 거대한 지하경제를 지닌 나라. 그간 들쑥날쑥한 성장률과 높은 물가로 인해 경기 예측이 힘든 나라로 분류되어 온 터키는, 최근 서방으로부터 안정 성장 궤도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낮은 생산비용과 풍부하고 안정적인 노동력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에 따라 그간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 왔는데, 자동차는 투자 열기가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다. 이미 르노, 포드, 도요타, 혼다 등이 투자 증대 계획을 발표했고, 현대차(현대-아산)는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보다 생산대수를 늘리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현지 분석에 따르면 올해 60만대 가량의 자동차가 팔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인구나 GDP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량이다. 때문에 터키 내수시장의 잠재력에 거는 외국 업계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해외 자동차업계가 터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다른 이유는 이곳이 유럽 수출을 위한 전진기지라는 판단이다. 지난 해 터키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72.6%가 해외로, 그중 72.3%가 EU 시장에 팔려 나간 것으로 집계된다. 팔린 곳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순이니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성능은 유럽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차에 덜미 잡힌 도요타
그중 돈 많기로 소문난 후발주자, 도요타자동차의 움직임은 단연 주목된다. 도요타는 지난해 순익 1조1천억 엔을 벌어, 세계 4위이자 자동차업계 1위를 기록했다.
그 도요타가 올 3월 터키 현지 공장을 증설하면서 현지 시장 나아가 유럽 시장 장악에 본격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995년 현지 공장을 가동한 도요타의 지난해 터키 내 자동차 생산량은 7만840대로 전년대비 82% 늘어난 규모다. 도요타는 그중 6만1134대를 수출, 현재 터키의 2대 자동차 생산 업체이자 수출업체로 부상했다.
도요타의 파상공세 전략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터키 내 자동차 메이커별 시장 점유율 1위에서 5위까지는 유럽업체들이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6위가 현대, 8위가 도요타, 9위가 혼다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을 다시 비율로 보면 현대차가 8.4%로 3.5%에 머문 도요타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이에 대해 그간 본사 수출본부를 담당하다 최근 현지 법인장으로 부임한 임흥수 상무는, “7월말로 우리의 월별 시장점유율은 이미 10%를 넘어섰다”며 “이는 그동안 현지화 전략을 꾸준히 실천해 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도요타를 밀어낸 현지화 전략이란 무엇일까. 합작법인 현대아산의 윤준모 공장장은 한 예로 주행시험장을 든다. 즉 현대차는 모든 신차를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주행시험장을 가동중이지만, 도요타는 그러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거대한 공장 부지에 주행시험장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알 길 없다. 문제는 과속을 즐기는 터키인들의 성향을 그들의 유목민적인 습관과 연관지울 수는 있어도, 그들의 문화적 낙후성과 연결짓는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점이다.
현대차와 도요타, 해외 시장 제패를 둘러싼 두 회사의 경쟁은 인도에서 이미 비슷한 전철을 밟은 바 있다. 현대차 주재원들이 인도 현지 생산을 시작할 때 주목한 것 중 하나는 차체의 높이였다. 인도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어지간한 고속도로라도 여기저기 패인 곳이 많고, 더욱이 연중 우기가 길고 강수량도 많다. 인도인 말로 장마 때면 물소가 차도 위를 어슬렁거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차체를 높여 출시된 상트로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동차지만, 도요타는 자국에서 들여온 구형 자동차를 싸게 파는 데 만족했다. 이후 인도에서 도요타는 상트로, 액센트, 쏘나타 전 등급의 차종에서 한 번도 현대차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스탄불=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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