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새 아침입니다. L부녀회장님, 생전에 그토록 독실한 기독교인이셨으니 지금은 분명 천국에서
해가 바뀌고 세월의 물살이 급히 흐르는 이땅을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L회장님이 반평생을 두고 통한에 차서 울었던 남북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획기
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었습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하여 해방과 분단 이후 50여년 만에 본격적인 이
산가족 교류의 물꼬가 터졌었지요. 그래서 두 차례에 걸쳐 각기의 지역에서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루었으니, 가족을 그리는 그 탄식이 깊고도 깊었던 L회장님께서 천국에서
나마 이 사태를 모르실 리 없겠지요.
지난 해의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그것을 시발로 하여 남북이 더 광범위한 이산가족 사업을 펼쳐나가
는 시발이 되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객관적 성과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추첨에 의해 선택된 소수의 운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들의 등 뒤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는 수도 없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데 실패
했던 것입니다.
근자의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생사확인을 위한 서신교환의 일정이 내년 초반에 마련되었지
만 그 숫자가 극히 한정적이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낼 때 곧 합의될 것 같았던 면회소 설치는 돌
연 회담 결과 발표 문건에서 얼굴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를 매어서 쓸 수는 없는 일이로되, 이렇게 되면 이는 대화와 협상의 우선 순
위에 있어 원칙이 사라지고 본말이 전도된 형국임이 분명합니다.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어려운 경
제여건 아래에서도 대북지원에 성의를 아끼지 않았던 정부와 민간의 동포애 및 인도주의 정신이 끊
임없이 세간의 입초사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처럼 원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협상력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L회장님이 아직 이땅에 계셨더라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의 현관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서서 이런 '무경우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언성을 높이셨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이산가족들이
그동안 정부의 대북 정책을 미덥지 못하게 여기고 있는 연유는, 올바른 원칙을 확립하는 데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L회장님!
돌이켜 보면 제가 이산가족 재회운동의 실무를 맡아 일한 지도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회
장님은 위원회가 발족하던 때부터 이북 부녀회의 회장 자격으로 위원회의 이사를 맡아 정말 열심히
도와 주셨습니다. 약관의 청년이었던 제가 어느덧 이처럼 사십 후반의 장년에 이르렀고, 회장님은 덧
없이 고향과 가족을 찾으려 애쓰다가 천국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흘러갔건만
그때 그 울먹이던 음성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제 두 귀에 생생합니다.
기억이 나시는지요? 넓은 체육관을 입추의 여지도 없이 가득 메운 청중들이 모두 함께 울었던 그 공
감의 순간이 말입니다. 그것은 통한과 탄식 속에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살아 온 이산가족들의 한숨
이요 탄식이었습니다.
L회장님!
이제 조금씩 남북간에 가로막혔던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부 당국의 애쓰는 수
고를 짐짓 외면한 채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재촉하는 것은, 그 노력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걸린 물리적 시간이 너무도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로 가도 쫓기듯 서울만 가면 되는 때가 아닙니다. 한박자 걸음을 늦추어 조정하더라도 그것
이 오히려 더 빠를 수 있으며, 가는 길이 제대로여야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
러면서도 모든 지혜와 능력을 총동원하여 불에 덴 듯 화급히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때이기 때문입
니다.
보십시오. 벌써 L회장님 자신이 천국으로 떠나시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
게 혜택이 돌아가는 상징적인 행사를, 단지 행사를 치른다는 외형적 성과를 좇으며 서둘지 말고, 전
체 이산가족들에게 광범위한 시혜가 가능하도록 접근하는 발상의 방식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
다.
L회장님!그곳 천국에서 그렇게도 간절히 그리던 어머니를,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평생 혼자 사
신 아버지를 만나셨는지요? 그래서 못다한 말을 나누며 회포를 푸셨는지요? 그러나 이땅의 사람들은
더 이상 천국 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도록, 그리고 정녕 남북 간에 일의 순서와 사리가 바로 설 수 있
도록, 새 해에는 뜨거운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축복과 안식 가운데 계실 L회장님께, 평소의 정
을 담아 이 글을 드립니다.
해가 바뀌고 세월의 물살이 급히 흐르는 이땅을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L회장님이 반평생을 두고 통한에 차서 울었던 남북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획기
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었습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하여 해방과 분단 이후 50여년 만에 본격적인 이
산가족 교류의 물꼬가 터졌었지요. 그래서 두 차례에 걸쳐 각기의 지역에서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루었으니, 가족을 그리는 그 탄식이 깊고도 깊었던 L회장님께서 천국에서
나마 이 사태를 모르실 리 없겠지요.
지난 해의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그것을 시발로 하여 남북이 더 광범위한 이산가족 사업을 펼쳐나가
는 시발이 되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객관적 성과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추첨에 의해 선택된 소수의 운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들의 등 뒤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는 수도 없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데 실패
했던 것입니다.
근자의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생사확인을 위한 서신교환의 일정이 내년 초반에 마련되었지
만 그 숫자가 극히 한정적이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낼 때 곧 합의될 것 같았던 면회소 설치는 돌
연 회담 결과 발표 문건에서 얼굴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를 매어서 쓸 수는 없는 일이로되, 이렇게 되면 이는 대화와 협상의 우선 순
위에 있어 원칙이 사라지고 본말이 전도된 형국임이 분명합니다.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어려운 경
제여건 아래에서도 대북지원에 성의를 아끼지 않았던 정부와 민간의 동포애 및 인도주의 정신이 끊
임없이 세간의 입초사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처럼 원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협상력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L회장님이 아직 이땅에 계셨더라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의 현관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서서 이런 '무경우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언성을 높이셨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이산가족들이
그동안 정부의 대북 정책을 미덥지 못하게 여기고 있는 연유는, 올바른 원칙을 확립하는 데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L회장님!
돌이켜 보면 제가 이산가족 재회운동의 실무를 맡아 일한 지도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회
장님은 위원회가 발족하던 때부터 이북 부녀회의 회장 자격으로 위원회의 이사를 맡아 정말 열심히
도와 주셨습니다. 약관의 청년이었던 제가 어느덧 이처럼 사십 후반의 장년에 이르렀고, 회장님은 덧
없이 고향과 가족을 찾으려 애쓰다가 천국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흘러갔건만
그때 그 울먹이던 음성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제 두 귀에 생생합니다.
기억이 나시는지요? 넓은 체육관을 입추의 여지도 없이 가득 메운 청중들이 모두 함께 울었던 그 공
감의 순간이 말입니다. 그것은 통한과 탄식 속에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살아 온 이산가족들의 한숨
이요 탄식이었습니다.
L회장님!
이제 조금씩 남북간에 가로막혔던 인위적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부 당국의 애쓰는 수
고를 짐짓 외면한 채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재촉하는 것은, 그 노력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걸린 물리적 시간이 너무도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로 가도 쫓기듯 서울만 가면 되는 때가 아닙니다. 한박자 걸음을 늦추어 조정하더라도 그것
이 오히려 더 빠를 수 있으며, 가는 길이 제대로여야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
러면서도 모든 지혜와 능력을 총동원하여 불에 덴 듯 화급히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때이기 때문입
니다.
보십시오. 벌써 L회장님 자신이 천국으로 떠나시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
게 혜택이 돌아가는 상징적인 행사를, 단지 행사를 치른다는 외형적 성과를 좇으며 서둘지 말고, 전
체 이산가족들에게 광범위한 시혜가 가능하도록 접근하는 발상의 방식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
다.
L회장님!그곳 천국에서 그렇게도 간절히 그리던 어머니를,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평생 혼자 사
신 아버지를 만나셨는지요? 그래서 못다한 말을 나누며 회포를 푸셨는지요? 그러나 이땅의 사람들은
더 이상 천국 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도록, 그리고 정녕 남북 간에 일의 순서와 사리가 바로 설 수 있
도록, 새 해에는 뜨거운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축복과 안식 가운데 계실 L회장님께, 평소의 정
을 담아 이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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