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반환일시금제 확대를 요구하는 가입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소득 재분배 효과를 통해 저소득층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국민연금이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생활이 곤궁한 저소득층의 반발에 흔들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세금이나 강제저축이 아닌 사회보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당장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신이 낸 보험료를 돌려달라는 주장도 높지만 연금제도 자체를 무너지게 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반환일시금 제도를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국민연금 자체 무너뜨릴 수 있다”
일시금 수급 780만명 … 연금발전위도 폐지 검토
국민연금연구센터 연금제도연구팀 김성숙 연구위원은 “당장 어렵다고 찾아가면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며 “중산층이하 소득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국민연금 도입목적이 허물어지는 꼴”이라며 반환일시금 제도의 원칙적 폐지를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발전위원회도 반환일시금 제도 폐지를 검토했다. 이 제도 존속은 △연금수급을 통한 국민들의 생활보장이라는 국민연금 본연의 목적에 맞지 않고 △가입기간에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은 보험료 납부에 대한 인센티브를 유발하지 않는 점 등이 지적됐기 때문. 다만 국민연금 제도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최소가입기간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 완전 폐지보다는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숙 연구위원은 “1989년부터 자격상실에 따른 반환일시금 제도가 있던 1999년까지 국민연금을 일시 반환한 건수가 무려 700만건이 넘는다”며 “대부분이 돈을 찾아가면 연금제도 자체가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1989년말 일시금 지급이 5만7000여건에 55억6000만원이다. 매년 증가해 IMF 체제 2년 뒤인 1999년 96만여건에 3조3900억원을 넘었다.
이 때 이미 누적집계로 700만건이 넘었고 9조5700억원이 빠져나갔다.
이후 국민연금법이 개정돼 반환일시금 지급을 제한적으로 운영함에 따라 크게 줄었으나 1988년부터 올 9월말 현재까지 모두 780만건에 11조3300억원이 지급됐다. 현재 연금 가입자는 1717만명이다.
연금 불만사항 가운데 절반 차지
최근 경제상황 악화로 심각 … 공단측과 실랑이
국민연금 불복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반환일시금을 요구하는 가입자가 예전부터 많았다”며 “국민연금 불만 사항 가운데 40∼50%가 반환일시금 제도”라고 말했다.
1999년 개정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반환일시금제도는 사망이나 노령, 해외이주, 다른 공적연금 이동 등의 이유로 더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고 소득이 없는 경우 그 동안 납부한 보험료 총액에 일정한 이자를 더해 가입자 등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다.
문제는 최근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당장 돈이 필요해 국민연금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다. 국민연금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연금탈퇴 1년 뒤에 연금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국민연금 각 지사에서는 어려운 사정을 들이대며 그동안 낸 국민연금을 돌려달라는 민원인과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애를 쓰는 직원들 사이의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권 모(57)씨는 지난 6월 연금공단 지사를 찾아 “현재 실직으로 소득이 없고 나이 드신 모친이 중증이어서 막대한 치료비가 든다”며 “1988년부터 납입한 보험료 1800여만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연금공단 지사는 한편으로 연금 취지를 설득하는 한편 백방으로 뛴 끝에 무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양시설을 찾아 권유함으로써 소동은 진정됐다.
지난 10월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장에서도 이 문제는 불거졌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국민연금 가입이력이 있는 가입자 가운데 납부한 보험료가 신용불량 등록금액보다 큰 가입자가 16만4000명에 이른다”며 “반환일시금이 보장되면 구제가 가능하지 않는가”라고 질의했다.
김선택 회장은 “당장 어려운 상황에 미래를 위해 돈을 넣어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회보장제도 취지를 살린다면 미래가 아닌 현재 어려운 계층에 도움을 줘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114개국중 17개국만 인정
해외이주 경우에 지급 … 이탈리아 스위스 등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제도는 세계 170여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114개 세계 주요국가를 조사한 결과 반환일시금 제도가 아예 없는 국가가 97개국으로 85%를 차지했다. 여기에 속하는 주요 국가로는 미국 독일 멕시코 대만 인도 태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필리핀 등이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대부분이 이 그룹에 포함돼 있다.
이들 나라는 공적연금제도가 전국민이 강제로 가입하는 것인 만큼 납입한 보험료를 반납하지 않는 원칙에 충실하다는 게 국민연금연구센터의 설명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 반환일시금과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17개국(15%)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으로는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등이고 가나 라오스 말레이시아 버뮤다 스리랑카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수단 싱가포르 홍콩 카자흐스탄 케냐 트리니다드토바고 터키 등이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은 영구출국하는 외국인 가입자에게 일시금을 지급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사망일시금 제도를 운영하는 정도이다. 실직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 자격이 상실된 경우 일시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없다.
수단과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최소 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퇴직연령이 된 경우 노령일시금이나 사망일시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성숙 위원은 “외국 사례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반환일시금 제도가 지급사유나 지급수준에서 비교적 관대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회안전망 필요”
노인부양의식 약화·급속한 고령화
선진국 노인은 공적연금을 주요 소득원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국민연금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자녀 의존이나 개인 개산소득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노인의 소득실태분석과 소득보장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미국, 독일의 60세 이상 노인의 주소득원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예금과 같은 자산소득이 9.9%%이고, 자녀지원 등 사적이전은 56.6%인 반면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6%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독일은 공적지원이 77.6%이고 자녀에게서 지원받는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도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55.8%와 57.4%를 각각 나타냈다. 자녀 의존 비율은 각각 1.6%와 6.6%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센터 윤석명 연구조정실장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노인부양의식이 약화되고 인구구조가 급속하게 고령화됨에 따라 노후생활을 국가가 나서서 맡게 된다”며 “연금제도가 성숙되면 대부분의 노령세대가 연금을 수급하게 되므로 소득보장에서 공적연금의 역할은 강화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일시금을 요구하는 민원이 많은 이유는 앞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과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낼 길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공적연금제도가 정착된 나라는 실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어도 실업급여 등 다양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어 노후에 쓸 국민연금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국민연금 자체 무너뜨릴 수 있다”
일시금 수급 780만명 … 연금발전위도 폐지 검토
국민연금연구센터 연금제도연구팀 김성숙 연구위원은 “당장 어렵다고 찾아가면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며 “중산층이하 소득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국민연금 도입목적이 허물어지는 꼴”이라며 반환일시금 제도의 원칙적 폐지를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발전위원회도 반환일시금 제도 폐지를 검토했다. 이 제도 존속은 △연금수급을 통한 국민들의 생활보장이라는 국민연금 본연의 목적에 맞지 않고 △가입기간에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은 보험료 납부에 대한 인센티브를 유발하지 않는 점 등이 지적됐기 때문. 다만 국민연금 제도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최소가입기간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 완전 폐지보다는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숙 연구위원은 “1989년부터 자격상실에 따른 반환일시금 제도가 있던 1999년까지 국민연금을 일시 반환한 건수가 무려 700만건이 넘는다”며 “대부분이 돈을 찾아가면 연금제도 자체가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1989년말 일시금 지급이 5만7000여건에 55억6000만원이다. 매년 증가해 IMF 체제 2년 뒤인 1999년 96만여건에 3조3900억원을 넘었다.
이 때 이미 누적집계로 700만건이 넘었고 9조5700억원이 빠져나갔다.
이후 국민연금법이 개정돼 반환일시금 지급을 제한적으로 운영함에 따라 크게 줄었으나 1988년부터 올 9월말 현재까지 모두 780만건에 11조3300억원이 지급됐다. 현재 연금 가입자는 1717만명이다.
연금 불만사항 가운데 절반 차지
최근 경제상황 악화로 심각 … 공단측과 실랑이
국민연금 불복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반환일시금을 요구하는 가입자가 예전부터 많았다”며 “국민연금 불만 사항 가운데 40∼50%가 반환일시금 제도”라고 말했다.
1999년 개정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반환일시금제도는 사망이나 노령, 해외이주, 다른 공적연금 이동 등의 이유로 더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고 소득이 없는 경우 그 동안 납부한 보험료 총액에 일정한 이자를 더해 가입자 등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다.
문제는 최근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당장 돈이 필요해 국민연금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다. 국민연금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연금탈퇴 1년 뒤에 연금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국민연금 각 지사에서는 어려운 사정을 들이대며 그동안 낸 국민연금을 돌려달라는 민원인과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애를 쓰는 직원들 사이의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권 모(57)씨는 지난 6월 연금공단 지사를 찾아 “현재 실직으로 소득이 없고 나이 드신 모친이 중증이어서 막대한 치료비가 든다”며 “1988년부터 납입한 보험료 1800여만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연금공단 지사는 한편으로 연금 취지를 설득하는 한편 백방으로 뛴 끝에 무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양시설을 찾아 권유함으로써 소동은 진정됐다.
지난 10월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장에서도 이 문제는 불거졌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국민연금 가입이력이 있는 가입자 가운데 납부한 보험료가 신용불량 등록금액보다 큰 가입자가 16만4000명에 이른다”며 “반환일시금이 보장되면 구제가 가능하지 않는가”라고 질의했다.
김선택 회장은 “당장 어려운 상황에 미래를 위해 돈을 넣어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회보장제도 취지를 살린다면 미래가 아닌 현재 어려운 계층에 도움을 줘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114개국중 17개국만 인정
해외이주 경우에 지급 … 이탈리아 스위스 등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제도는 세계 170여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114개 세계 주요국가를 조사한 결과 반환일시금 제도가 아예 없는 국가가 97개국으로 85%를 차지했다. 여기에 속하는 주요 국가로는 미국 독일 멕시코 대만 인도 태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필리핀 등이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대부분이 이 그룹에 포함돼 있다.
이들 나라는 공적연금제도가 전국민이 강제로 가입하는 것인 만큼 납입한 보험료를 반납하지 않는 원칙에 충실하다는 게 국민연금연구센터의 설명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 반환일시금과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17개국(15%)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으로는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등이고 가나 라오스 말레이시아 버뮤다 스리랑카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수단 싱가포르 홍콩 카자흐스탄 케냐 트리니다드토바고 터키 등이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은 영구출국하는 외국인 가입자에게 일시금을 지급하고 있고 이탈리아는 사망일시금 제도를 운영하는 정도이다. 실직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 자격이 상실된 경우 일시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없다.
수단과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최소 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퇴직연령이 된 경우 노령일시금이나 사망일시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성숙 위원은 “외국 사례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반환일시금 제도가 지급사유나 지급수준에서 비교적 관대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회안전망 필요”
노인부양의식 약화·급속한 고령화
선진국 노인은 공적연금을 주요 소득원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국민연금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자녀 의존이나 개인 개산소득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노인의 소득실태분석과 소득보장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미국, 독일의 60세 이상 노인의 주소득원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예금과 같은 자산소득이 9.9%%이고, 자녀지원 등 사적이전은 56.6%인 반면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6%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독일은 공적지원이 77.6%이고 자녀에게서 지원받는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도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55.8%와 57.4%를 각각 나타냈다. 자녀 의존 비율은 각각 1.6%와 6.6%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센터 윤석명 연구조정실장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노인부양의식이 약화되고 인구구조가 급속하게 고령화됨에 따라 노후생활을 국가가 나서서 맡게 된다”며 “연금제도가 성숙되면 대부분의 노령세대가 연금을 수급하게 되므로 소득보장에서 공적연금의 역할은 강화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일시금을 요구하는 민원이 많은 이유는 앞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과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낼 길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공적연금제도가 정착된 나라는 실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어도 실업급여 등 다양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어 노후에 쓸 국민연금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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