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엔 뷰>때로, 사랑은 무작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

노 경 실 동화작가

지역내일 2004-12-01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잠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사랑에 빠져서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 내가 찾아낸 이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네.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잊을 수가 없어. 당신의 마음속에 나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 저기 저 꽃은 당신을 위해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언젠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을 때에…”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 이라는 음악다큐멘터리 영화 속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예순을 넘기고 일흔을 넘고, 심지어는 여든을 훨씬 넘어선 이까지. 그 중,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이며 보컬을 맡은 멋쟁이 노신사, 꼼빠이 세군도를 기억할 것이다. 낮에는 이발사, 밤에는 클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여든이 넘어서 첫 음반을 낸 노신사.
그가 최근에 스페인에서 공연한 것을 보게 되었다. 스페인 여가수 마르띠리오와 함께 부른 노래의 가사이다. 노랫말이야 흔하디흔한 사랑타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슴 한 편이 뜨거워지는 것은 사랑을 노래하는 아흔 노인, 꼼빠이 세군도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당장이라도 한 여인에게 무릎을 굽히고 꽃다발을 건네며 절절히 사랑을 토로할 것 같은 요동침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저도 모르게 탄식처럼 내뱉을 것이다. ‘아니, 저 나이에 어떻게…’
우리들이 지겹도록 듣고 무심히 내뱉는 이야기들 중 하나가 ‘이 나이에 무슨…’이다.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이냐? 이 나이에 무슨 유쾌 상쾌 통쾌한 일이냐? 이 나이에 무슨 감정이냐? 이 나이에 무슨 계획이냐? 이 나이에 무슨 좋은 일을 보겠냐? 등등…. 우리들은 타고난 겁쟁이라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일찍 인생의 쓴맛 짠맛 신맛 떫은맛 다 맛보아서, 이미 삶을 관조하는 경지에 올라서서인지… 그 말 한마디에 웬만한 꿈이나 건전한 욕망, 소박한 바람마저 휘익 등 뒤로 던져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시간도 세월도 잘도 간다. 어느새 12월이며, 2004년은 바삐 짐을 챙기고 있다. 저만치서 2005년의 앞자락이 흘깃흘깃 보이면, 우리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밥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세수를 하면서, 버스 속에서 흔들리면서, 대형할인점의 카터를 남편(아내) 뒤에서 영차영차 밀면서, 그리고 꿈속에서 주절댄다. ‘벌써 올해가 다 가네…’
번잡스럽게 세월이 지나가는 그 앞에 더 재빠르게 시간을 통과하는 제 추레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내가 벌써 저렇게 됐단 말인가? 그동안 내가 뭘 했다고? 손에 잡힌 건 하나도 없는데? 이제는 잡을 것도, 잡을 만한 힘도 없는데?
하지만 이럴 때에 꼼빠이 세군도가 옆에 있다면 ‘이 나이에 무슨…’ 하며 무기력하게 살던 사람이 그에게 물을 것이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라도?’ 꼼빠이 세군도는 남자를 보며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린 다음 이렇게 말해줄 지도 모른다.
“사랑하시오.”
“뭘요?”
“다! 전부! 모두! 몽땅! 당신의 그 낡은 구두를. 당신의 가족을. 당신의 이 구겨진 와이셔츠를. 당신의 머리 위에 한결같이 있는 하늘과 구름을. 당신의 뭉툭한 열 손가락을. 당신의 밥상을. 당신의 지하철을. 당신의 술을. 당신의 쌍꺼풀 없는 두 눈을. 당신의 신용카드를. 당신의 양말을. 당신의 앞집 수퍼마켓을. 당신을 피해 다니는 누렁 강아지를…”
사랑은 위대하지만, 거대한 것을 제물로 원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완전무구한 상대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랑은 달콤하지만, 설탕덩어리는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순간순간의 진정성을 더 소중히 여긴다. 사랑은 늙지 않지만, 담보 잡은 세월의 무게만큼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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