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논리를 가져야 한다
임 현 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장·정치사회학
인천국제공항은 북적거린다. 얼마전 들러보니 경기불황이란 얘기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금년 해외여행객이 예년에 비해 25%정도 늘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대로 구매력을 갖춘 내국인들이 다 나가 쓰는 모양이다.
세계화 시대에 나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사람도 빠져나가고 돈도 빠져 나간다면 이것은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역(逆)이민자는 줄어들고, 해외유학생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쓴 신용카드 결제액은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다. 여행수지의 적자폭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규제가 많다보니 개인이고 회사고 손님대접을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로 나간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비용도 싸고 기분도 좋다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금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미래전망이 불확실하다 보니 기업이나 가계 모두 주춤거린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기대지수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39.3%의 가구가 가계수입이 감소했다고 조사되고 있다. 이는 가계수입이 증가했다는 가구 15.0%에 비해 2.6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내수침체에 수출둔화까지 이어지면 내년 우리 민생은 그야말로 더 어려워진다.
사회해체형 위험의 등장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범죄, 자살, 이혼, 실업, 빈곤이 늘어나고 있다. 생계형 범죄에 아노미형 범죄가 섞여 있다. 자살증가율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다. 신혼부부의 이혼율도 세계 최대다. 생활보호가 필요한 절대빈곤층이 다시 늘고 있다. 그런데 혼인과 출산은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낮은 출산율이 계속되면 10년안에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되어 있다. 인구증가가 정지되어 외국인에게 경제활동을 맡기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이러다가 사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른바 ‘사회해체형 위험’의 등장이다.
사회해체형 위험은 산업화에 연관된 현상이다. 구미 선진국들도 이미 겪은 바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도한 개인화로 인해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성이 약화되고, 계층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평등이 확대되고, 급격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아노미와 세대갈등이 증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구미사회는 근대화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철하게 반성해 왔다. 산업화의 물질적 성과 뒤의 정신적 황폐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낮은 공공복지에도 불구하고 사회해체형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과거의 전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이 무너져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질개선을 소홀히 한 나머지 사회안전망에 결함이 많다. 최저생계비의 120%까지 버는 차상위(次上位)계층이나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인 자녀를 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등 ‘준(準)빈곤층’이 대략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층의 감소도 걱정거리다. 소득불평등의 증가가 중간층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계층갈등을 완화할 완충지대가 엷어지고 있다. 중간층은 사회발전 과정에서 지나친 급진이나 반동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한다. 부익부빈익빈 양극화는 사회안정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참여와 통합을 어렵게 한다. 체제전환의 와중에서 한국사회의 중심이 이완되고 있는 까닭이다.
구성원 참여·인내 이끌어내야
사회해체형 위험은 지난 40년간 추구해온 압축적 근대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기존 상호관계를 무너뜨리고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적의를 키워준다. 오늘 사회갈등의 빈번함도 신뢰와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를 경제논리 아니면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사회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논리를 가져야 한다. 사회논리는 정치와 경제의 근시안적 이해를 넘어 성원들의 참여와 인내를 이끌 수 있다. 정부의 공공성, 기업의 효율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발성을 아우를 수 있는 사회논리가 문제해결의 최선의 방안이다.
갑신년을 보내는 우리의 심사가 편안치 않다. 희망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려움이야 예전에도 겪었던 것이기에 참고 지낼 수 있지만 앞날에 대한 확신을 나누어 갖지 못하기에 만사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우리 모두 서로 책임을 탓하기 전에 거시적인 안목아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임 현 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장·정치사회학
인천국제공항은 북적거린다. 얼마전 들러보니 경기불황이란 얘기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금년 해외여행객이 예년에 비해 25%정도 늘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대로 구매력을 갖춘 내국인들이 다 나가 쓰는 모양이다.
세계화 시대에 나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사람도 빠져나가고 돈도 빠져 나간다면 이것은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역(逆)이민자는 줄어들고, 해외유학생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쓴 신용카드 결제액은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다. 여행수지의 적자폭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규제가 많다보니 개인이고 회사고 손님대접을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로 나간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비용도 싸고 기분도 좋다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금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미래전망이 불확실하다 보니 기업이나 가계 모두 주춤거린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기대지수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39.3%의 가구가 가계수입이 감소했다고 조사되고 있다. 이는 가계수입이 증가했다는 가구 15.0%에 비해 2.6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내수침체에 수출둔화까지 이어지면 내년 우리 민생은 그야말로 더 어려워진다.
사회해체형 위험의 등장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범죄, 자살, 이혼, 실업, 빈곤이 늘어나고 있다. 생계형 범죄에 아노미형 범죄가 섞여 있다. 자살증가율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다. 신혼부부의 이혼율도 세계 최대다. 생활보호가 필요한 절대빈곤층이 다시 늘고 있다. 그런데 혼인과 출산은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낮은 출산율이 계속되면 10년안에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되어 있다. 인구증가가 정지되어 외국인에게 경제활동을 맡기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이러다가 사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른바 ‘사회해체형 위험’의 등장이다.
사회해체형 위험은 산업화에 연관된 현상이다. 구미 선진국들도 이미 겪은 바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도한 개인화로 인해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성이 약화되고, 계층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평등이 확대되고, 급격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아노미와 세대갈등이 증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구미사회는 근대화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철하게 반성해 왔다. 산업화의 물질적 성과 뒤의 정신적 황폐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낮은 공공복지에도 불구하고 사회해체형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과거의 전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이 무너져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질개선을 소홀히 한 나머지 사회안전망에 결함이 많다. 최저생계비의 120%까지 버는 차상위(次上位)계층이나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인 자녀를 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등 ‘준(準)빈곤층’이 대략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층의 감소도 걱정거리다. 소득불평등의 증가가 중간층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계층갈등을 완화할 완충지대가 엷어지고 있다. 중간층은 사회발전 과정에서 지나친 급진이나 반동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한다. 부익부빈익빈 양극화는 사회안정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참여와 통합을 어렵게 한다. 체제전환의 와중에서 한국사회의 중심이 이완되고 있는 까닭이다.
구성원 참여·인내 이끌어내야
사회해체형 위험은 지난 40년간 추구해온 압축적 근대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기존 상호관계를 무너뜨리고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적의를 키워준다. 오늘 사회갈등의 빈번함도 신뢰와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모든 문제를 경제논리 아니면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사회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논리를 가져야 한다. 사회논리는 정치와 경제의 근시안적 이해를 넘어 성원들의 참여와 인내를 이끌 수 있다. 정부의 공공성, 기업의 효율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발성을 아우를 수 있는 사회논리가 문제해결의 최선의 방안이다.
갑신년을 보내는 우리의 심사가 편안치 않다. 희망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려움이야 예전에도 겪었던 것이기에 참고 지낼 수 있지만 앞날에 대한 확신을 나누어 갖지 못하기에 만사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우리 모두 서로 책임을 탓하기 전에 거시적인 안목아래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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