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한 산악인 오은선씨

나는 나를 넘어섰다 그 순간 세상이 내 발아래 있었다

지역내일 2005-01-13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었다. 갑자기 숙연해지면서 가슴 속 저 밑바닥으로부터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엘브루스, 매킨리, 아콩카과,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 코지우스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높은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온 몸을 휘감았다.
2004년 12월 20일 AM 5:20.
드디어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에 우뚝 섰다. 2년 4개월,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오은선씨(영원무역)의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은 국내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이고 허영호(1995년), 박영석씨(2002년)에 이어 세 번째다.
그의 가슴 속에 산이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커서 꼭 해보리라’ 했다. 85년 수원대 전산학과에 입학하고 산악부에 들어갔다. 2학년 봄 인수봉에서 첫 암벽등반 훈련을 받으면서 그는 ‘말로 표현 못할’ 성취감을 느꼈다. 대부분 암벽등반 후에는 파김치가 되는데 그는 펄펄 날았다. 산악부 선배들은 ‘너처럼 암벽등반 신나게 하는 애는 첨 봤다’며 혀를 내둘렀고 그때부터 그는 ‘날다람쥐’로 불렸다.”

안정된 직장 버리고
세계의 지붕으로 가다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꿈의 봉우리’ 에베레스트. 93년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러나 당시 공무원(서울과학연구원 전산직)이었던 그는 원정기간 3개월을 휴가로 얻지 못하면 에베레스트를 포기하든지 평생 보장된 밥그릇을 포기하든지 선택을 해야 했다. 휴가계를 내밀어 봤으나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았다”. 사표를 던졌다.
당시 여성 산악인으로만 꾸려진 원정대 중 지현옥(99년 추락사), 최오순, 김순주 세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다. 지원조로 참가한 그는 고소 적응이 안 돼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바람에 남동릉 루트로 7천300m까지만 오르고 에베레스트와의 첫 조우를 아쉬움 속에 마쳐야 했다.
평생직장을 ‘용감하게’ 버린 그 앞에 놓인 세상은 “험난했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주5일 근무에 주말이면 자유롭게 산에 다닐 수 있는 직업으로 학습지 교사를 4년 정도 했는데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는 그는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인기 짱’이었다.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동안 몽블랑(4천800m, 96년) 등반에 성공하면서 ‘고소 첫 경험’도 마쳤고 97년 대학산악연맹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해 처음으로 8천m봉(가셔브룸2봉 8천35m)에도 올랐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서서
오씨가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세우게 된 계기는 2001년 박영석씨가 히말라야 14좌(8천m 이상 봉우리) 마지막 등정이었던 파키스탄 K-2봉 등반에 성공하는 걸 보면서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남극점·북극점을 ‘그랜드 슬램’이라 일컫는다.
“영석이 형이 목표했던 히말라야 14좌를 정복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맹목적으로 산에만 가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도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워보자 결심했죠.”
오씨는 팀워크가 생명인 히말라야 14좌 도전은 함께 도전할 여성 산악인이 거의 없어 포기하고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삼았다. 2002년 8월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매킨리에 이어 2004년 5월, 그 앞에 에베레스트가 다시 다가왔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산행이 될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 5월 19일 에베레스트로 가는 마지막 캠프 8천300m
시간이 점점 흘러가는데 장비를 지원해주러 온다는 셀파는 아직도 오지 않는다. 산소가 부족하다. 내 몸은 점점 나른해져 가고 사고도 행동도 판단력도 흐려져 간다.
끊겼던 무전기에서 정상 등정한 외국팀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연락이 왔지만 그마저도 또다시 감감무소식. 숨쉬기조차 힘든 늦은 밤이 돼서야 계명대 팀을 지원하러 갔던 셀파가 내려와 산소 장비를 건네줬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내 몸은 너무 지쳐 있어 이 상태로는 정상에 설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여기서 등반을 포기해야 하나. 내려가야 하나?

“도저히 내려갈 수 없었어요. 이제까지 쏟아 부은 열정을 포기하긴 너무 억울했거든요. 한 발자국이라도 올라가자, 나의 한계는 분명 있을 테고 그 한계까지만 미련 없이 갔다 돌아오자, 정상이 아니면 어떠냐, 계명대 팀이 어떤 상태인지 볼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 그래 가보자 했죠.”
그가 선택한 북동릉 루트를 따라 가면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스노우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급격한 경사의 거대한 바위지대인데 베테랑 산악인들도 꺼리는 구간이다. 난코스인 세컨드 스텝에 올라서는 순간 그는 숨을 멈췄다. 계명대 산악부 박무택 대장의 시신이 거기 있었다.
박 대장은 “8천500m 고봉에서 비박을 두 번 하고도 살아남았던 뛰어난 산악인”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젖어든다. “도대체 널 구하러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너는 여기에 이렇게 있느냐”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뿐이었다.
1시간여의 사투 끝에 오은선씨는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8천848m) 정상에 ‘홀로’ 우뚝 섰다. 93년 3명의 여성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이후 11년 만에 ‘단독 등정’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것도 잠시. 하산은 죽음의 레이스였다. 라스트 캠프를 불과 몇 미터 앞두고 탈진한 그는 하이포서미아(저체온증)로 그대로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너무 편안했어요.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더군요. 가벼운 솜사탕 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죠.”
만약 그 상태로 시간이 좀 더 흘렀다면 그 또한 에베레스트에 묻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은 3명의 한국 원정대원을 포함해 모두 7명이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다 유명을 달리했을 만큼 눈보라가 심했다. 그러나 아직 그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나보다. 순간 섬광이 번쩍하듯 정신이 들었다.

희망에 도전하는 내 모습에서
용기 얻었으면
죽음의 산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한편으로는 “겸손해졌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작은 존재였으므로.
“내 산행의 마침표는 원래 떠났던 자리예요. 우리 집에서 떠났으니까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산행의 마지막이죠. 그래서 정상에서 5분 이상 머물지 않아요. 오고자 하는 곳에 왔으면 그걸로 된 거죠. 더 중요한 것은 사고 없이 무사히 내려가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고는 하산 길에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오은선씨에게 있어 “산은 생을 마치는 그 날까지 함께 할 삶 그 자체”다.
“숨조차 쉴 수 없는 높은 산에 도전하고 마침내 그 정상에 올라선 산악인들의 모습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연말 귀국해 아직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그는 23일~29일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한국등산학교 30주년 기념행사로 열리는 빙벽교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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