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1: 최근 모 지방검찰청의 한 수사관은 조폭 수사를 맡았다. 수사가 끝난 뒤 우연히 복도에서 용의자와 마주쳤다.
그런데 그 용의자가 갑자기 카메라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더니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혹행위 수사관이라고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 수사관은 며칠 동안 수시로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해 체크를 해야만 했다.
#상황2: 지난 14일 모 일간지에 광고가 실렸다. 김종서 장군의 후손이라고 밝힌 사람이 자신이 접수한 고소사건이 무혐의 처분되자 발끈해 신문에 광고를 냈던 것. 내용은 ‘법과 정의보다 청탁이 우선된다’는 등이었다.
당시 고소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ㅈ계장은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 사건전말을 해명하느라 며칠 동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상황3: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지난 24일 아파트 재건축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 모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세 차례나 기각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12월, 그리고 올 1월초까지 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뇌물을 준 사람은 구속되고 받은 사람은 기각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검찰이 사면초가다. 조직 안팎에서 개혁요구가 거세다. ‘인권옹호’는 거부할 수 없는 대명제가 됐다.
여기에 사법개혁 차원에서 새롭게 조성된 수사 환경은 검찰의 수사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선 수사검사와 일반직 수사관들은 ‘손발을 다 묶어놓고 도대체 무엇으로 수사를 하라는 말이냐’는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수는 없다”며 되레 검찰의 자세변화와 과학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기존 관행은 안 통해 = 수사환경 변화의 기폭제는 지난해 말 검찰조서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변경이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인정돼 오던 자백을 통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조서작성 상황이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입증해야 하고 추가증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
‘수사기록중심’에서 ‘공판중심’ ‘구두변론중심’으로 가는 과정에 검찰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검찰 내부의 개혁 움직임도 만만찮다.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한 녹음·녹화제 도입 등 인권보호 장치가 계속 늘고 있다. 대검찰청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서울남부지검 등 4개 지검에 녹음·녹화제와 인권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 등을 도입한 신개념 조사실을 시범운영중이다. 이것이 전면확대될 경우 수사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인권보호에 갈수록 무게가 실리면서 점점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심리적 압박이나 공공연한 강요 등을 통한 기존의 수사기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사실상 독점해오던 수사권을 경찰과 나눠야할 처지다. 진통을 겪고 있는 수사권조정협의가 그것이다.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부패행위를 수사하는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도 검찰수사에는 악재로 작용할 조짐이다.
여기에 국민 개개인의 권리의식도 높아져 검찰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승복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검찰이 무장해제 당했다? = 가장 민감한 쪽은 일선 현장에서 직접 수사를 맡고 있는 수사검사와 수사관들이다. 특히 뇌물사건 등을 담당하는 특수부나 조폭 등을 전담하는 강력부 관계자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일선 지검 특수부의 한 부장검사는 “현재 상황은 검사들에게 주어졌던 무기를 다 빼앗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무장해제 상태’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통장에 정체불명의 돈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도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고인이나 피의자 등을 불러도 버티면서 오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이다”면서 “우리더러 어떻게 수사를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검찰일반직 수사관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일선 지검의 한 수사관은 “요즘 검찰에 나와서 잘못 인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면서 “그런데도 언성도 못 높이고 ‘00했습니까’하는 식으로 신문해서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수사환경이 너무 나쁘니까 수사분야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차장 검사는 “조직폭력배 수사 등이 특히 어렵게 됐다”면서 “조폭수사는 초동수사가 중요한데 변호인 입회하에 비디오 촬영까지 해가면서 수사한다는 게 간단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실질적 공판중심주의 구현해야”
= 일선 수사검찰의 이 같은 하소연에 대해 외부 시선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재판부의 판단이 그렇다.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과거회귀적인 발상을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것.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한 배석판사는 “지금까지는 조서를 중심으로 증거들을 엮어 넣는 것이 관행이었다”면서 “검찰에서 지금은 당황하고 있지만 결국 공판중심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상 거쳐야 하는 진통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지법 형사부의 한 부장판사도 “검찰이 꾸며놓은 조서를 재판과정에서 확인하는 정도의 재판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후진적인 재판이었다”고 혹평한 뒤 “이제는 법관이 법정 공방을 통해 유무죄의 확신을 형성하는 공판중심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검사 출신인 양인석 변호사는 “귀찮고 힘들어졌지만 인권이 최우선인 방향은 맞다”면서 “10명 도둑을 잡는 것보다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달라진 환경에 검찰이 적응하고 변화해야지 이를 거스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승규 법무장관도 “수사 환경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결국 방향은 그렇게 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래서 과학수사가 필요하고, 더욱 지혜로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그런데 그 용의자가 갑자기 카메라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더니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혹행위 수사관이라고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 수사관은 며칠 동안 수시로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해 체크를 해야만 했다.
#상황2: 지난 14일 모 일간지에 광고가 실렸다. 김종서 장군의 후손이라고 밝힌 사람이 자신이 접수한 고소사건이 무혐의 처분되자 발끈해 신문에 광고를 냈던 것. 내용은 ‘법과 정의보다 청탁이 우선된다’는 등이었다.
당시 고소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ㅈ계장은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 사건전말을 해명하느라 며칠 동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상황3: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지난 24일 아파트 재건축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 모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세 차례나 기각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12월, 그리고 올 1월초까지 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뇌물을 준 사람은 구속되고 받은 사람은 기각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검찰이 사면초가다. 조직 안팎에서 개혁요구가 거세다. ‘인권옹호’는 거부할 수 없는 대명제가 됐다.
여기에 사법개혁 차원에서 새롭게 조성된 수사 환경은 검찰의 수사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선 수사검사와 일반직 수사관들은 ‘손발을 다 묶어놓고 도대체 무엇으로 수사를 하라는 말이냐’는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수는 없다”며 되레 검찰의 자세변화와 과학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기존 관행은 안 통해 = 수사환경 변화의 기폭제는 지난해 말 검찰조서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변경이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인정돼 오던 자백을 통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조서작성 상황이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입증해야 하고 추가증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
‘수사기록중심’에서 ‘공판중심’ ‘구두변론중심’으로 가는 과정에 검찰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검찰 내부의 개혁 움직임도 만만찮다.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한 녹음·녹화제 도입 등 인권보호 장치가 계속 늘고 있다. 대검찰청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서울남부지검 등 4개 지검에 녹음·녹화제와 인권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 등을 도입한 신개념 조사실을 시범운영중이다. 이것이 전면확대될 경우 수사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인권보호에 갈수록 무게가 실리면서 점점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심리적 압박이나 공공연한 강요 등을 통한 기존의 수사기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사실상 독점해오던 수사권을 경찰과 나눠야할 처지다. 진통을 겪고 있는 수사권조정협의가 그것이다.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부패행위를 수사하는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도 검찰수사에는 악재로 작용할 조짐이다.
여기에 국민 개개인의 권리의식도 높아져 검찰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승복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검찰이 무장해제 당했다? = 가장 민감한 쪽은 일선 현장에서 직접 수사를 맡고 있는 수사검사와 수사관들이다. 특히 뇌물사건 등을 담당하는 특수부나 조폭 등을 전담하는 강력부 관계자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일선 지검 특수부의 한 부장검사는 “현재 상황은 검사들에게 주어졌던 무기를 다 빼앗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무장해제 상태’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통장에 정체불명의 돈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도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고인이나 피의자 등을 불러도 버티면서 오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이다”면서 “우리더러 어떻게 수사를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검찰일반직 수사관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일선 지검의 한 수사관은 “요즘 검찰에 나와서 잘못 인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면서 “그런데도 언성도 못 높이고 ‘00했습니까’하는 식으로 신문해서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수사환경이 너무 나쁘니까 수사분야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차장 검사는 “조직폭력배 수사 등이 특히 어렵게 됐다”면서 “조폭수사는 초동수사가 중요한데 변호인 입회하에 비디오 촬영까지 해가면서 수사한다는 게 간단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실질적 공판중심주의 구현해야”
= 일선 수사검찰의 이 같은 하소연에 대해 외부 시선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재판부의 판단이 그렇다.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과거회귀적인 발상을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것.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한 배석판사는 “지금까지는 조서를 중심으로 증거들을 엮어 넣는 것이 관행이었다”면서 “검찰에서 지금은 당황하고 있지만 결국 공판중심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상 거쳐야 하는 진통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지법 형사부의 한 부장판사도 “검찰이 꾸며놓은 조서를 재판과정에서 확인하는 정도의 재판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후진적인 재판이었다”고 혹평한 뒤 “이제는 법관이 법정 공방을 통해 유무죄의 확신을 형성하는 공판중심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검사 출신인 양인석 변호사는 “귀찮고 힘들어졌지만 인권이 최우선인 방향은 맞다”면서 “10명 도둑을 잡는 것보다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달라진 환경에 검찰이 적응하고 변화해야지 이를 거스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승규 법무장관도 “수사 환경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결국 방향은 그렇게 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래서 과학수사가 필요하고, 더욱 지혜로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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