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7일 김진표 의원을 교육부총리로 낙점한 것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글로벌 시대에 밑바닥을 헤매는 대학경쟁력을 볼 때 한번 해볼 만한 실험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붕괴된 공교육을 살리는 데 적임자가 아니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파격’ 인사
김 교육부총리는 1980년 이후 24번째 교육부총리(장관)다. 대학교수가 아닌 사람이 교육부 수장이 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정치인 출신인 이해찬 장관이다. 경제관료 출신은 김 부총리가 처음이다. 교육학 정치학 철학 사회학 교수가 대부분인 교육부 수장에 경제학 전공자가 발탁된 것도 드문 일이다.
교육에 경제논리나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김대중 정부 때도 있었다. 대학에 처음으로 경영논리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영학자인 송 자 연세대 총장을 교육부장관에 임명했으나 개인적 사유로 24일 만에 사퇴했다. 노 대통령은 역시 ‘대학경영인’ 출신인 이기준 전 서울대총장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했지만 개인적 하자로 6일 만에 하차했다.
두 번의 실패는 ‘시장논리’나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사회지도층이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기준씨 사례는 우리 사회가 교육책임자에게 어떤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잘 보여줬다.
노 대통령은 장고 끝에 개인적 하자만큼은 오랜 관료생활과 선거를 통해 검증됐다고 판단한 김 교육부총리를 선택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장남의 병역문제가 바로 여론의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분노’ 교육계
교육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인성교육과 공공성이라는 교육논리를 뿌리부터 부정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앞으로 평준화정책이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재갑 한국교총 대변인은 “부총리는 교육시장 개방, 외국인학교, 특목고 같은 문제를 부동산 대책과 연계하려 했던 경제관료”라며 “노 정부는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다”고 비난했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인사철회를 요구했다. 한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교육정책과 전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임명한 것”이라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총이나 시민단체와 연대해 교육시장화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했다.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는 “경제마인드를 내세우며 부익부 빈익빈 식의 교육정책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등이 참여하는 ‘교육연대’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복종 운동과 김 부총리 퇴진운동을 펼쳐갈 것임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과거 국회 교육위원의 보좌관 출신은 “교육부총리는 이념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는 사람이 필요한데 김 부총리는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긍정적 의견도 있다. 중부권에 소재한 한 국립대학의 총장은 “교육계에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이라야 교육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며 “오늘의 대학현실은 개혁에 시장경제논리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대’ 재계
재계는 일단 환영했다. 교육이 공공성에 안주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이나 실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국성호 홍보실장은 “신임 부총리가 전경련이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대로 산업의 수요에 맞는 인적자원 양성에 많은 신경을 쓸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교육계가 지금까지 개혁에 둔감했는데 신임 부총리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한 재계 관계자도 “교육계는 그동안 전문성을 빌미로 한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개혁을 거부해 왔다”며 “신임 부총리가 교육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개혁을 더 잘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오리’ 대학사회
재계와 교육계의 상반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을 살리고, 대학개혁을 통해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교육은 연간 20조원의 예산을 쓰면서 효율성은 낮았다.
노 대통령은 ‘대학도 산업’이라며 대학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부총리는 27일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대학교육은 개혁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의 퇴출이나 통폐합 등 대학사회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험난’ 공교육
김 교육부총리는 반대세력을 의식한 듯 교육계와 폭넓은 대화를 강조했다. 교육개방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초중고교 교육은 공교육을 튼튼히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장관 시절 내놓았던 의견을 보면 공교육의 방향을 둘러싸고 교육계와 사사건건 충돌이 벌어질듯 하다.
▲교육에 외국자본이 유입돼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판교신도시 성공을 위해 학원단지를 건립하겠다 ▲부동산 대책으로 강북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해야 한다 등등 그동안 발언을 보면 김진표식 공교육관이 엿보인다.
평준화 정책을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않겠지만 공교육의 일대 개편과 이에 따른 충돌이 예상된다.
김진표 부총리의 앞길은 험난하다. 교육계나 교육단체를 설득해 개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관료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른바 ‘교육마피아’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관가에서는 김 부총리가 교육부에 ‘경제마피아’를 외부수혈할 경우 ‘교육마피아’의 물밑저항이 예상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200만 학생이 또 한 번 실험용 몰모트로 전락할지, 기사회생할지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실험이 시작됐다.
/신명식 장세풍 오승완 기자 msshin@naeil.com
‘파격’ 인사
김 교육부총리는 1980년 이후 24번째 교육부총리(장관)다. 대학교수가 아닌 사람이 교육부 수장이 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정치인 출신인 이해찬 장관이다. 경제관료 출신은 김 부총리가 처음이다. 교육학 정치학 철학 사회학 교수가 대부분인 교육부 수장에 경제학 전공자가 발탁된 것도 드문 일이다.
교육에 경제논리나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김대중 정부 때도 있었다. 대학에 처음으로 경영논리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영학자인 송 자 연세대 총장을 교육부장관에 임명했으나 개인적 사유로 24일 만에 사퇴했다. 노 대통령은 역시 ‘대학경영인’ 출신인 이기준 전 서울대총장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했지만 개인적 하자로 6일 만에 하차했다.
두 번의 실패는 ‘시장논리’나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사회지도층이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기준씨 사례는 우리 사회가 교육책임자에게 어떤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잘 보여줬다.
노 대통령은 장고 끝에 개인적 하자만큼은 오랜 관료생활과 선거를 통해 검증됐다고 판단한 김 교육부총리를 선택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장남의 병역문제가 바로 여론의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분노’ 교육계
교육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인성교육과 공공성이라는 교육논리를 뿌리부터 부정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앞으로 평준화정책이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재갑 한국교총 대변인은 “부총리는 교육시장 개방, 외국인학교, 특목고 같은 문제를 부동산 대책과 연계하려 했던 경제관료”라며 “노 정부는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다”고 비난했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인사철회를 요구했다. 한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교육정책과 전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임명한 것”이라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총이나 시민단체와 연대해 교육시장화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했다.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는 “경제마인드를 내세우며 부익부 빈익빈 식의 교육정책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등이 참여하는 ‘교육연대’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복종 운동과 김 부총리 퇴진운동을 펼쳐갈 것임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과거 국회 교육위원의 보좌관 출신은 “교육부총리는 이념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는 사람이 필요한데 김 부총리는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긍정적 의견도 있다. 중부권에 소재한 한 국립대학의 총장은 “교육계에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이라야 교육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며 “오늘의 대학현실은 개혁에 시장경제논리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대’ 재계
재계는 일단 환영했다. 교육이 공공성에 안주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이나 실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국성호 홍보실장은 “신임 부총리가 전경련이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대로 산업의 수요에 맞는 인적자원 양성에 많은 신경을 쓸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교육계가 지금까지 개혁에 둔감했는데 신임 부총리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한 재계 관계자도 “교육계는 그동안 전문성을 빌미로 한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개혁을 거부해 왔다”며 “신임 부총리가 교육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개혁을 더 잘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오리’ 대학사회
재계와 교육계의 상반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을 살리고, 대학개혁을 통해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교육은 연간 20조원의 예산을 쓰면서 효율성은 낮았다.
노 대통령은 ‘대학도 산업’이라며 대학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부총리는 27일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대학교육은 개혁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의 퇴출이나 통폐합 등 대학사회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험난’ 공교육
김 교육부총리는 반대세력을 의식한 듯 교육계와 폭넓은 대화를 강조했다. 교육개방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초중고교 교육은 공교육을 튼튼히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장관 시절 내놓았던 의견을 보면 공교육의 방향을 둘러싸고 교육계와 사사건건 충돌이 벌어질듯 하다.
▲교육에 외국자본이 유입돼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판교신도시 성공을 위해 학원단지를 건립하겠다 ▲부동산 대책으로 강북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해야 한다 등등 그동안 발언을 보면 김진표식 공교육관이 엿보인다.
평준화 정책을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않겠지만 공교육의 일대 개편과 이에 따른 충돌이 예상된다.
김진표 부총리의 앞길은 험난하다. 교육계나 교육단체를 설득해 개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관료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른바 ‘교육마피아’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관가에서는 김 부총리가 교육부에 ‘경제마피아’를 외부수혈할 경우 ‘교육마피아’의 물밑저항이 예상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200만 학생이 또 한 번 실험용 몰모트로 전락할지, 기사회생할지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실험이 시작됐다.
/신명식 장세풍 오승완 기자 mssh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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