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협약, 실천이 문제다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과 정치인 경제인 등 나라를 움직여가는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팔을 꼬아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다. 뒷줄에 선 각계 인사들도 같은 포즈를 취했다. 지난 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투명성 사회협약에 서명한 사람들이 약속의 뜻을 그렇게 표시했다.
대통령이 여러 사람들과 손을 잡은 포즈도 처음 보지만, 한가운데 자리를 비켜선 앵글도 처음이어서 눈길이 쏠렸다. 탈권위시대의 대통령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의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재벌기업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흔한 일은 아니라 한다.
사회협약은 다수의 양심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약속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고 정면을 바라보며 웃는 지도층 모습이 어떤 부패도 막아내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면 더 좋겠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과 정치 경제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패를 몰아내자는 사회협약에 서명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가차원의 반부패 협약체결이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국민운동의 큰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협약이란 말 그대로 약속이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실효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처벌규정이 있는 법도 안 지키는데 구속력 없는 협약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검은 돈을 받아 명예와 권세를 잃고 감옥까지 가는 정치인을 보면서도 똑같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법적제재라는 수단이 갖는 효용의 한계성을 말해주는 증거다.
그러나 협약에는 양심의 구속력이 있다. 법이 개인적으로 범죄의 유혹을 억제하는 효력을 지닌다면, 사회협약에는 집단적인 억제력이 있다. 행동강령이나 선언 같은 내부적인 약속이 때로는 법보다 유효하다. 소속집단 내에서 받을 손가락질이 처벌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사회협약은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양자간의 업무협약이 아니라, 이것만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수의 양심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약속이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국민적인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협약의 내용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부패가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겠구나”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부패공직자 처벌을 강화하고 부정으로 취득한 수익을몰수하자는 것이다. 불법으로 조성한 정치자금의 국고환수, 국회의원 임기 중 영리목적의 겸직 금지, 직무관련 주식의 백지신탁제도 도입, 국회 윤리위원회에 외부인사 참여, 부패공직자 양형기준 강화, 비위공직자 및 퇴직자의 유사기관 취업제한 같은 공공 및 정치 분야 협약만 이행되어도 한국은 ‘3급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다.
여기에 경제계는 윤리경영 강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하도급 비리 개선, 내부 고발자 보호 등을 약속했다. 주민소환제 및 주민투표제 도입, 시민사회의 책임성과 투명성 제고 같은 시민사회 분야 협약까지 이행된다면 금세 선진국이 될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부패방지를 위해 그동안 논의되어 온 방법과 수단과 법제들이 총망라된 이 협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큰 해독이 된다. 부패방지를 입에 담는 것조차 혐오하게 되고,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부패를 방관하고 방조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자발적 참여로 실천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행해가야
우리는 국민의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 주관으로 맺었던 ‘노동쟁의 없는 세상 만들기’ 사회협약이 실패로 끝난 경험을 갖고 있다. 실패에서 성공의 지름길을 찾는 것이 실패학의 존재이유다. 강요된 약속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가 그 길이다. 공명심에 들떠 욕심 부리지 말고,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행해 가야 한다. 그 많은 제도와 법령을 하루아침에 다 뜯어고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오래 몸에 밴 관행과 머리 속에 굳어진 낡은 생각을 기계부품처럼 간단히 갈아 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법조계와 노동계 등의 불참을 아쉬워할 것도 없다. 정치와 경제계가 하나 둘씩 구각을 벗어가는 모습을 보면 오지 말래도 올 것이다. 서두르는 것이 일을 그르치는 제일 큰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과 정치인 경제인 등 나라를 움직여가는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팔을 꼬아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다. 뒷줄에 선 각계 인사들도 같은 포즈를 취했다. 지난 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투명성 사회협약에 서명한 사람들이 약속의 뜻을 그렇게 표시했다.
대통령이 여러 사람들과 손을 잡은 포즈도 처음 보지만, 한가운데 자리를 비켜선 앵글도 처음이어서 눈길이 쏠렸다. 탈권위시대의 대통령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의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재벌기업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흔한 일은 아니라 한다.
사회협약은 다수의 양심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약속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고 정면을 바라보며 웃는 지도층 모습이 어떤 부패도 막아내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면 더 좋겠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과 정치 경제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패를 몰아내자는 사회협약에 서명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가차원의 반부패 협약체결이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국민운동의 큰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협약이란 말 그대로 약속이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실효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처벌규정이 있는 법도 안 지키는데 구속력 없는 협약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검은 돈을 받아 명예와 권세를 잃고 감옥까지 가는 정치인을 보면서도 똑같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법적제재라는 수단이 갖는 효용의 한계성을 말해주는 증거다.
그러나 협약에는 양심의 구속력이 있다. 법이 개인적으로 범죄의 유혹을 억제하는 효력을 지닌다면, 사회협약에는 집단적인 억제력이 있다. 행동강령이나 선언 같은 내부적인 약속이 때로는 법보다 유효하다. 소속집단 내에서 받을 손가락질이 처벌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사회협약은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양자간의 업무협약이 아니라, 이것만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수의 양심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약속이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국민적인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협약의 내용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부패가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겠구나”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부패공직자 처벌을 강화하고 부정으로 취득한 수익을몰수하자는 것이다. 불법으로 조성한 정치자금의 국고환수, 국회의원 임기 중 영리목적의 겸직 금지, 직무관련 주식의 백지신탁제도 도입, 국회 윤리위원회에 외부인사 참여, 부패공직자 양형기준 강화, 비위공직자 및 퇴직자의 유사기관 취업제한 같은 공공 및 정치 분야 협약만 이행되어도 한국은 ‘3급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다.
여기에 경제계는 윤리경영 강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하도급 비리 개선, 내부 고발자 보호 등을 약속했다. 주민소환제 및 주민투표제 도입, 시민사회의 책임성과 투명성 제고 같은 시민사회 분야 협약까지 이행된다면 금세 선진국이 될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부패방지를 위해 그동안 논의되어 온 방법과 수단과 법제들이 총망라된 이 협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큰 해독이 된다. 부패방지를 입에 담는 것조차 혐오하게 되고,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부패를 방관하고 방조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자발적 참여로 실천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행해가야
우리는 국민의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 주관으로 맺었던 ‘노동쟁의 없는 세상 만들기’ 사회협약이 실패로 끝난 경험을 갖고 있다. 실패에서 성공의 지름길을 찾는 것이 실패학의 존재이유다. 강요된 약속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가 그 길이다. 공명심에 들떠 욕심 부리지 말고,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행해 가야 한다. 그 많은 제도와 법령을 하루아침에 다 뜯어고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오래 몸에 밴 관행과 머리 속에 굳어진 낡은 생각을 기계부품처럼 간단히 갈아 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법조계와 노동계 등의 불참을 아쉬워할 것도 없다. 정치와 경제계가 하나 둘씩 구각을 벗어가는 모습을 보면 오지 말래도 올 것이다. 서두르는 것이 일을 그르치는 제일 큰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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