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중시 정책으로 도미노식 폐과 위기 … 특성화 없는 단순결합 곤란
학교 특성살린 구조조정 필요 … 예산지원 대상선정·집행방식 개선 필요
지난해부터 대학가의 최대 화두는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학문간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총장들도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집자 주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방향과 수단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획일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학사회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학구조개혁이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재정투자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그리고 부채비율 등을 공개하는 ‘대학정보공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문학·기초과학이 위험 = 제도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부는 대학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각종 지표가 공개되지 않아 학생, 학부모, 정부, 산업체 등이 학교 선택이나 직원 채용 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학운영과 관련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해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대학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교육 내실화를 꾀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학교 선택권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4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7월 국회에 제출,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 고등교육법이 시행되면 각 대학의 취업률은 수험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각 대학은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문제는 자칫 대학정보공시제가 문학, 사학, 철학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통계학, 수학, 논리학 등 기초학문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학문은 학문특성상 상대적으로 취업이 용이하지 않다.
현재도 각 대학은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학과에 대한 집중지원으로 학과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고 있다.
일부 자연과학 계열 실험실의 경우, 외국인 학생이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정부가 예산지원 전제조건으로 정원축소와 학과통폐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학문분야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광주·전남지역 한 사립학교는 대대적인 정원축소 방안을 수립하면서 기초·인문학부터 폐과 또는 통폐합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남대 백승대 교수(사회학과)는 이에 대해 “연구중심대학을 몇 개 육성하겠다는 식의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접근방식이 잘못됐다”며 “대학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연구중심이든 교육중심이든 취업중심이든 방향을 잡아 가고 교육부는 잘하는 대학을 선택해 지원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를 들어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 기초과학 등 응용성이 부족한 학과들은 대학 팽창과정에서 비전 없이 너무 많이 생긴 것이 문제이긴 하나 교육부가 여기에 대해 취업률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곤란하다”며 “기초과학이나 인문학 등이 그나마 성장한 것은 대학과 같은 제도화된 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 학문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 및 육성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일대 김성동 총장은 “취업률 낮은 분야는 대부분 인문학, 기초과학 등의 학과라 정보공시제가 강행될 경우 이들 학문은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 몸에도 소량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이며 철학, 기초과학 등이 바로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부는 이들 학문에 대해 지금보다 적극적인 육성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장학제도 등을 활성화해 이들 학문에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 결합은 곤란하다 = 또한 일각에서는 학교·학과 통폐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획일적인 양적 구조조정에 앞서 각 학교마다 특성과 그에 걸 맞는 발전방향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부권의 한 국립대 총장은 “무조건 합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춰가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훨씬 유리한 대학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해양대학의 경우, 같은 지역 대학들이 권역별 통합을 논의하는 가운데 학교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두 개의 캠퍼스를 운영한다’는 발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학 간의 통폐합이 특성화를 동반한 화학적 결합이 아닌 형식적으로 결합시킨 물리적 결합에 대한 경계도 늦춰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지방 국립대학들은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없이 통폐합과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과거 통폐합을 거쳤던 대학들 중 일부는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해 특성화 중심의 구조조정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또 다시 통폐합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예산집행도 문제 = 한편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관련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대학 구조개혁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0년대 말부터 대학 구조개혁을 위해 ‘대학재정 지원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3000여억원씩의 예산을 지원했다.
그러나 대학재정 지원자금은 구조개혁과 연계되지 않는 소규모 분산지원방식과 사후평가 시스템 미비 등으로 예산만 투자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집행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구조조정 유도 목적의 사업인 ‘국립대학 발전계획 추진 및 평가사업(01~03년)’의 경우, 지원 대상 선정을 위한 평가배점 400점 중 구조조정 관련사항은 20점에 불과했다.
특히 지원대상인 23개 국립대학의 정원이 사업이 시작된 2001년 5만9756명에서 2004년 6만65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물론 이 대학들은 재학생 인원과 단과대 수도 증가해 사업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 정부가 중·장기 계획사업을 후속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해 오히려 혼선과 애로를 초래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지방대 육성사업’이다.
전체 지원대상 39개 대학 중 38개 대학이 1~3년의 사업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교육부가 2004년부터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2003년 ‘바이오 지식기반센터’ 과제로 20억원을 지원받았던 C대학의 경우, 전산장비를 구축했으나 지원 중단으로 30억원에 달하는 운영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애로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재정지원과 대학 구조개혁간 연계성 제고 △사업추진상황·성과에 대한 점검·평가시스템 보강 △정책당국의 편의적인 사업 운용관행 개선 등을 교육부에 권고했다.
/장세풍·최세호 기자 spjang@naeil.com
학교 특성살린 구조조정 필요 … 예산지원 대상선정·집행방식 개선 필요
지난해부터 대학가의 최대 화두는 통폐합 등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학문간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총장들도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집자 주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방향과 수단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획일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학사회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학구조개혁이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재정투자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그리고 부채비율 등을 공개하는 ‘대학정보공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문학·기초과학이 위험 = 제도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부는 대학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각종 지표가 공개되지 않아 학생, 학부모, 정부, 산업체 등이 학교 선택이나 직원 채용 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학운영과 관련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해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대학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교육 내실화를 꾀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학교 선택권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4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7월 국회에 제출,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 고등교육법이 시행되면 각 대학의 취업률은 수험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각 대학은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문제는 자칫 대학정보공시제가 문학, 사학, 철학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통계학, 수학, 논리학 등 기초학문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학문은 학문특성상 상대적으로 취업이 용이하지 않다.
현재도 각 대학은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학과에 대한 집중지원으로 학과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고 있다.
일부 자연과학 계열 실험실의 경우, 외국인 학생이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정부가 예산지원 전제조건으로 정원축소와 학과통폐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학문분야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광주·전남지역 한 사립학교는 대대적인 정원축소 방안을 수립하면서 기초·인문학부터 폐과 또는 통폐합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남대 백승대 교수(사회학과)는 이에 대해 “연구중심대학을 몇 개 육성하겠다는 식의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접근방식이 잘못됐다”며 “대학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연구중심이든 교육중심이든 취업중심이든 방향을 잡아 가고 교육부는 잘하는 대학을 선택해 지원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를 들어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 기초과학 등 응용성이 부족한 학과들은 대학 팽창과정에서 비전 없이 너무 많이 생긴 것이 문제이긴 하나 교육부가 여기에 대해 취업률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곤란하다”며 “기초과학이나 인문학 등이 그나마 성장한 것은 대학과 같은 제도화된 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 학문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 및 육성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일대 김성동 총장은 “취업률 낮은 분야는 대부분 인문학, 기초과학 등의 학과라 정보공시제가 강행될 경우 이들 학문은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 몸에도 소량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이며 철학, 기초과학 등이 바로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부는 이들 학문에 대해 지금보다 적극적인 육성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장학제도 등을 활성화해 이들 학문에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 결합은 곤란하다 = 또한 일각에서는 학교·학과 통폐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획일적인 양적 구조조정에 앞서 각 학교마다 특성과 그에 걸 맞는 발전방향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부권의 한 국립대 총장은 “무조건 합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춰가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훨씬 유리한 대학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해양대학의 경우, 같은 지역 대학들이 권역별 통합을 논의하는 가운데 학교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두 개의 캠퍼스를 운영한다’는 발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학 간의 통폐합이 특성화를 동반한 화학적 결합이 아닌 형식적으로 결합시킨 물리적 결합에 대한 경계도 늦춰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지방 국립대학들은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없이 통폐합과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과거 통폐합을 거쳤던 대학들 중 일부는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해 특성화 중심의 구조조정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또 다시 통폐합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예산집행도 문제 = 한편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관련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대학 구조개혁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0년대 말부터 대학 구조개혁을 위해 ‘대학재정 지원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3000여억원씩의 예산을 지원했다.
그러나 대학재정 지원자금은 구조개혁과 연계되지 않는 소규모 분산지원방식과 사후평가 시스템 미비 등으로 예산만 투자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집행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구조조정 유도 목적의 사업인 ‘국립대학 발전계획 추진 및 평가사업(01~03년)’의 경우, 지원 대상 선정을 위한 평가배점 400점 중 구조조정 관련사항은 20점에 불과했다.
특히 지원대상인 23개 국립대학의 정원이 사업이 시작된 2001년 5만9756명에서 2004년 6만65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물론 이 대학들은 재학생 인원과 단과대 수도 증가해 사업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 정부가 중·장기 계획사업을 후속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해 오히려 혼선과 애로를 초래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지방대 육성사업’이다.
전체 지원대상 39개 대학 중 38개 대학이 1~3년의 사업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교육부가 2004년부터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2003년 ‘바이오 지식기반센터’ 과제로 20억원을 지원받았던 C대학의 경우, 전산장비를 구축했으나 지원 중단으로 30억원에 달하는 운영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애로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재정지원과 대학 구조개혁간 연계성 제고 △사업추진상황·성과에 대한 점검·평가시스템 보강 △정책당국의 편의적인 사업 운용관행 개선 등을 교육부에 권고했다.
/장세풍·최세호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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