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주의(巨國主義)’ 중국
안 병 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중국 본색을 담아낸 신조어가 있다. ‘거국주의(巨國主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패권주의에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치·경제의 급상승세를 탄 중국이 호시탐탐 거국주의적 검은 그림자를 사방에 드리운다. 황해도 옹진반도 서쪽 끝과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끝을 직선으로 이으면 174km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척이니 기발한 착상이 나올 때도 있다.
해를 넘긴 얘기지만, 전북도청 새만금사업소장이 어느 날 기자실을 찾아가 중국 국책연구원 관계자가 새만금과 산둥을 교량으로 연결하자는 제안을 했다면서 “부지사는 경제적 측면에서 터널건설이 낫겠다는 의견을 냈고 지사는 관광효과로 보아 교량건설이 좋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안의 거리는 평양-목포 간 거리와 맞먹는 5백80km라니, 교량이던 터널이던 양안을 잇는 기상천외한 꿈은 아직 지방자치단체의 희망사항인 것으로 여겨진다.
새만금과 산둥반도를 연결
좀 허황하다고 할 이런 구상이 나올 정도로 가까운 중국이 한국에 대해 무례한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여야의원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자제하라고 요구하여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었다. 지난주에 베이징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중국당국이 거칠게 저지한 일도 문제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치 이슬람을 믿는 이라크 땅에 가서 기독교를 선교하려는 것과 비견할 만한 거사였다. 좋게 말하면 ‘순교정신’을 표출한 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리수’였다.
중국은 ‘인권문제’에 신경이 예민한 나머지 그런 강경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의 밑자리에는 은연중 중국의 거국주의적 오만방자함이 깔려있는 것을 느낀다. 중국의 거국주의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고구려사 왜곡도 중국의 덩치 키우기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도 중국에 동화된 중국인민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법에 따라서 청일전쟁을 ‘갑오 중일전쟁’이라고 부른다.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정권과 일본 군국주의가 부딪친 전쟁이 아니라 중국이 일본과 명분을 걸고 대결한 전쟁이라고 의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역사 간편(簡編)’을 보면 갑오중일전쟁 폭발은 일본이 중국과 산수(山水)를 연해 입술과 치아 관계인 맹방 조선을 침략한데서 비롯했다고 쓰고 있다.
“1894년 7월, 북양대신 이홍장이 일본의 위협 앞에 전쟁 피할 구실만 찾으며 반동노선을 취할 때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돌연 조선 아산 항에 머물던 중국 병선을 격침하고 아산의 청병을 공격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키니, 역사상 중일전쟁을 일컬어 ‘갑오전쟁’이라 칭한다…. 영용불굴(英勇不掘)의 조선인민은 일본 침략전쟁에 맞서 무장 봉기하여 철수하지 못한 중국사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공동 투쟁을 하였다. 평양 전투가 벌어진 다음날 일본 침략자는 황해에서 일장의 격렬한 해전을 도발하였다. 당시 중일 쌍방의 해군 역량은 상당하였으나 북양함대는 작전준비가 매우 부족하고 포탄이 부족하였다. … 매국적 이홍장은 자기 병력을 더 잃을 것이 두려워 북양함대를 웨이하이(威海) 항내에 도피시켜 일본에게 제해권을 내주고 말았다….”
패전지를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중국은 최근 산동성 웨이하이 항 서쪽에 있는 북양함대의 본거지 류궁도(劉公島)를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바꾸어 놓았다. 톈진대학 건축설계연구원이 설계하고 중국건축공정국이 시공한 ‘갑오해전관’은 미국 디즈니랜드형 입체 전시관처럼 꾸며 웅장함에 손색이 없다. 높이 15m의 해군장령 상과 중국 최대의 북양함대 수군 지휘부 조각상군, 해전 경관 유화(38m×8mm), 컴퓨터그래픽 해전 영상 등은 중국의 거국주의적 애국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1994년에 류궁도의 중국갑오전쟁박물관을 전국 10대 우수사회교육기지로 지정했다. 그 해 장쩌민 국가주석은 붓글씨로 ‘중국갑오전쟁박물관’ 이름을 썼다.
이곳이 당 중앙선전부에 의해 이른바 ‘애국주의교육 시범기지’로 지정된 것은 1997년이다. 비록 변발(남자 머리의 주위를 깎고 중앙의 머리만을 땋아 뒤로 길게 늘인 머리)을 한 만주족 장수들의 패전이지만 중국은 ‘애국’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만주족은 중국에서 정권을 잡자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자손을 자처하는 한족에게 변발을 강요했었다. 그것을 거부하여 몇 만 명의 한족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런 청사(淸史)라도 중국은 냉큼 흡수하여 거국의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안 병 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중국 본색을 담아낸 신조어가 있다. ‘거국주의(巨國主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패권주의에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치·경제의 급상승세를 탄 중국이 호시탐탐 거국주의적 검은 그림자를 사방에 드리운다. 황해도 옹진반도 서쪽 끝과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끝을 직선으로 이으면 174km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척이니 기발한 착상이 나올 때도 있다.
해를 넘긴 얘기지만, 전북도청 새만금사업소장이 어느 날 기자실을 찾아가 중국 국책연구원 관계자가 새만금과 산둥을 교량으로 연결하자는 제안을 했다면서 “부지사는 경제적 측면에서 터널건설이 낫겠다는 의견을 냈고 지사는 관광효과로 보아 교량건설이 좋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안의 거리는 평양-목포 간 거리와 맞먹는 5백80km라니, 교량이던 터널이던 양안을 잇는 기상천외한 꿈은 아직 지방자치단체의 희망사항인 것으로 여겨진다.
새만금과 산둥반도를 연결
좀 허황하다고 할 이런 구상이 나올 정도로 가까운 중국이 한국에 대해 무례한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여야의원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자제하라고 요구하여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었다. 지난주에 베이징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중국당국이 거칠게 저지한 일도 문제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치 이슬람을 믿는 이라크 땅에 가서 기독교를 선교하려는 것과 비견할 만한 거사였다. 좋게 말하면 ‘순교정신’을 표출한 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리수’였다.
중국은 ‘인권문제’에 신경이 예민한 나머지 그런 강경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의 밑자리에는 은연중 중국의 거국주의적 오만방자함이 깔려있는 것을 느낀다. 중국의 거국주의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고구려사 왜곡도 중국의 덩치 키우기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도 중국에 동화된 중국인민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법에 따라서 청일전쟁을 ‘갑오 중일전쟁’이라고 부른다.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정권과 일본 군국주의가 부딪친 전쟁이 아니라 중국이 일본과 명분을 걸고 대결한 전쟁이라고 의미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역사 간편(簡編)’을 보면 갑오중일전쟁 폭발은 일본이 중국과 산수(山水)를 연해 입술과 치아 관계인 맹방 조선을 침략한데서 비롯했다고 쓰고 있다.
“1894년 7월, 북양대신 이홍장이 일본의 위협 앞에 전쟁 피할 구실만 찾으며 반동노선을 취할 때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돌연 조선 아산 항에 머물던 중국 병선을 격침하고 아산의 청병을 공격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키니, 역사상 중일전쟁을 일컬어 ‘갑오전쟁’이라 칭한다…. 영용불굴(英勇不掘)의 조선인민은 일본 침략전쟁에 맞서 무장 봉기하여 철수하지 못한 중국사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공동 투쟁을 하였다. 평양 전투가 벌어진 다음날 일본 침략자는 황해에서 일장의 격렬한 해전을 도발하였다. 당시 중일 쌍방의 해군 역량은 상당하였으나 북양함대는 작전준비가 매우 부족하고 포탄이 부족하였다. … 매국적 이홍장은 자기 병력을 더 잃을 것이 두려워 북양함대를 웨이하이(威海) 항내에 도피시켜 일본에게 제해권을 내주고 말았다….”
패전지를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중국은 최근 산동성 웨이하이 항 서쪽에 있는 북양함대의 본거지 류궁도(劉公島)를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바꾸어 놓았다. 톈진대학 건축설계연구원이 설계하고 중국건축공정국이 시공한 ‘갑오해전관’은 미국 디즈니랜드형 입체 전시관처럼 꾸며 웅장함에 손색이 없다. 높이 15m의 해군장령 상과 중국 최대의 북양함대 수군 지휘부 조각상군, 해전 경관 유화(38m×8mm), 컴퓨터그래픽 해전 영상 등은 중국의 거국주의적 애국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1994년에 류궁도의 중국갑오전쟁박물관을 전국 10대 우수사회교육기지로 지정했다. 그 해 장쩌민 국가주석은 붓글씨로 ‘중국갑오전쟁박물관’ 이름을 썼다.
이곳이 당 중앙선전부에 의해 이른바 ‘애국주의교육 시범기지’로 지정된 것은 1997년이다. 비록 변발(남자 머리의 주위를 깎고 중앙의 머리만을 땋아 뒤로 길게 늘인 머리)을 한 만주족 장수들의 패전이지만 중국은 ‘애국’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만주족은 중국에서 정권을 잡자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자손을 자처하는 한족에게 변발을 강요했었다. 그것을 거부하여 몇 만 명의 한족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런 청사(淸史)라도 중국은 냉큼 흡수하여 거국의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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