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은 사회와 괴리된 별천지이자 인권의 사각지대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통해 봄을 느끼듯 최근 교정행정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개방형 시설과 환경정비 그리고 수용자에 대한 처우개선까지 변화는 이미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김승규 법무장관 등 수뇌부 의지가 강하게 배어있다. 본지는 매주 1회씩 달라지고 있는 교정행정의 현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813번지에 위치한 의정부교도소. 농장으로 출발한 탓인지 교도소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주위를 둘러싼 논밭이 먼저 반긴다. 주변을 둘러봐도 인가는 거의 없고 미군부대만 있다.
4미터가 넘는 교도소 담장은 안과 밖을 완전히 구분 짓고 있다. 사회와 완전한 절연을 선언한 듯한 위용(?)이다.
그러나 막상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간 담장 안은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에 어렵지 않다. 교도소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예리하게 잇닿아 있음을 웅변하는 분위기다.
◆경성형무소 의정부 농장 = 의정부교도소는 그 출발이 교도소가 아니라 농장으로 시작했다. 일제시대인 1944년 3월 경성형무소 의정부 농장이다. 교도소 주위 땅을 경작하는 일이 주였다. 면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총 30만평의 부지 가운데 구내면적은 9000여평에 불과하다. 나머지 19만여평이 모두 구외면적이다. 이 중에서 농지만 14만 5000평에 이른다.
이것이 지난 1963년에 서울교도소 의정부지소로 개칭했다. 다시 1966년에는 의정부교도소로 승격했고, 1982년 5월 지금의 위치로 신축 이전했다.
김기호 서무과장은 “처음에는 농장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각종 전무화 교육으로 훨씬 더 유명해졌다”고 소개했다.
◆‘범털’들의 집결소? = 의정부교도소 수용자들은 미결수와 기결수가 절반씩 나눠지는데 기결수는 형기 5년 이하 초범을 주로 수용한다. 현재 이곳에는 수용자 1600여명과 400여명 직원 및 경비교도가 있다. 이곳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계로 각종 비리에 연루된 유명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자주 수용되고 있다. 속칭 ‘범털’(권력이나 배경이 든든한 재소자를 일컫는 은어)들이다. 처우도 어렵고 수용자들 속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리 반가운 대상들은 아니다.
이밖에 특이한 경우로는 마약사범이 50여명 수용돼 있으며, 외국인범죄자가 10여명 있다. 외국인 수용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교도소 측 설명이다. 이럴 경우 계란 후라이 등을 제공하는 등 조금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마약사범들을 위해 전국 교정기관 가운데 최초로 체력단련실을 통한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30평 규모의 체력단련실엔 2500만원 상당에 이르는 헬스기구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 모(52)씨는 “운동으로 치료하니까 훨씬 좋다”면서 “다른 교도소에도 이런 것이 활성화되고 운동기구도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동현 보안과장은 “상담과 재활을 병행해 실시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금단현상을 느끼지만 운동을 통해 재활치료를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어민 강사와 함께 하는 외국어 교육 = 의정부교도소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교육이다.
이 가운데 외국어 교육은 전국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실력 또한 상당하다. 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외국어 교육반은 영어와 일어로 나눠진다. 정원은 각 30명으로 제한돼 있다. 매년 10월초에 입교해 이듬해 9월에 수료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을 진행하고, 대학교수들을 통한 교재수업과 원어민 강사를 통한 회화를 병행하고 있다.
또 성적관리를 위해 매월 1회 이상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교육이 끝날 무렵인 8월에는 TEPS와 JPT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 교육생 가운데는 대외수상자들도 꽤 있다.
코리아헤럴드 주최 전국웅변대회 최우수상과 우수상 1회, 장려상 2회 수상했으며, 한국번역가 협회 주관 번역능력 인정시험 영어 2급에 3명이나 합격했다. 또 지난해 8월에 실시된 어학능력평가에서 영어 TEPS 검정최고 957점, 일어 JPT 검정최고 850점을 얻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4년형을 받고 현재 영어반에 속해 있는 김 모(36)씨는 “교도소에 다양하게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다행”이라면서 “사회적으로 좀 더 따뜻한 시선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어반에 속해 있는 이모(41)씨는 일본계 회사에 다닌 경력을 살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홍성교도소에 있다가 지난해 시험을 치러 이곳으로 온 그는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정부엔 컴맹이 없어요 =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이다. 직업훈련을 통해 수용자들의 사회복귀를 수월하도록 돕고 있다.
교육분야로는 PC정비사, 조경, 자동차 정비 등 실제 쓰임새가 많은 분야가 주를 이룬다. 내실있는 정보화 교육을 위해 강서기능대학 및 대진대학과 관학협약을 맺었고, 펜티엄급 컴퓨터와 VTR 프로젝터 등을 활용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IT관련 자격증 취득인원만 241명에 이른다. 또 교도소 안팎에 설치한 공장 또한 새로운 사회화 과정이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상품은 전기면도기 조립과 다이어리 문구류 등이다. 일반기업체와 마찬가지로 전일근로제를 도입해 하루 8시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런 탓인지 상품 경쟁력 또한 상당하다. 전기면도기 직영공장 운영으로 해마다 7억원 이상의 세입증대 효과를 얻고 있다.
이처럼 의정부교도소 사회화는 사회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실제로 사회에 다시 나갈 경우 적응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각종 문화행사를 교도소에 유치하는 것이나 재소자들을 사회봉사활동에 내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수용사동 복도에 걸려있던 ‘어두웠던 지난시간 밝은 내일로 빛나리라’라는 문구가 의정부교도소에선 빈말이 아닌 것이다.
김건휘 의정부 교도소장은 “교도소는 사람을 가둬놓고 고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곳”이라면서 “사회에서도 인식을 바꿔 이들이 나갔을 때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그러나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통해 봄을 느끼듯 최근 교정행정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개방형 시설과 환경정비 그리고 수용자에 대한 처우개선까지 변화는 이미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김승규 법무장관 등 수뇌부 의지가 강하게 배어있다. 본지는 매주 1회씩 달라지고 있는 교정행정의 현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813번지에 위치한 의정부교도소. 농장으로 출발한 탓인지 교도소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주위를 둘러싼 논밭이 먼저 반긴다. 주변을 둘러봐도 인가는 거의 없고 미군부대만 있다.
4미터가 넘는 교도소 담장은 안과 밖을 완전히 구분 짓고 있다. 사회와 완전한 절연을 선언한 듯한 위용(?)이다.
그러나 막상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간 담장 안은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에 어렵지 않다. 교도소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예리하게 잇닿아 있음을 웅변하는 분위기다.
◆경성형무소 의정부 농장 = 의정부교도소는 그 출발이 교도소가 아니라 농장으로 시작했다. 일제시대인 1944년 3월 경성형무소 의정부 농장이다. 교도소 주위 땅을 경작하는 일이 주였다. 면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총 30만평의 부지 가운데 구내면적은 9000여평에 불과하다. 나머지 19만여평이 모두 구외면적이다. 이 중에서 농지만 14만 5000평에 이른다.
이것이 지난 1963년에 서울교도소 의정부지소로 개칭했다. 다시 1966년에는 의정부교도소로 승격했고, 1982년 5월 지금의 위치로 신축 이전했다.
김기호 서무과장은 “처음에는 농장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각종 전무화 교육으로 훨씬 더 유명해졌다”고 소개했다.
◆‘범털’들의 집결소? = 의정부교도소 수용자들은 미결수와 기결수가 절반씩 나눠지는데 기결수는 형기 5년 이하 초범을 주로 수용한다. 현재 이곳에는 수용자 1600여명과 400여명 직원 및 경비교도가 있다. 이곳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계로 각종 비리에 연루된 유명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자주 수용되고 있다. 속칭 ‘범털’(권력이나 배경이 든든한 재소자를 일컫는 은어)들이다. 처우도 어렵고 수용자들 속에서도 특별한 존재들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리 반가운 대상들은 아니다.
이밖에 특이한 경우로는 마약사범이 50여명 수용돼 있으며, 외국인범죄자가 10여명 있다. 외국인 수용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교도소 측 설명이다. 이럴 경우 계란 후라이 등을 제공하는 등 조금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마약사범들을 위해 전국 교정기관 가운데 최초로 체력단련실을 통한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30평 규모의 체력단련실엔 2500만원 상당에 이르는 헬스기구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 모(52)씨는 “운동으로 치료하니까 훨씬 좋다”면서 “다른 교도소에도 이런 것이 활성화되고 운동기구도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동현 보안과장은 “상담과 재활을 병행해 실시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금단현상을 느끼지만 운동을 통해 재활치료를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어민 강사와 함께 하는 외국어 교육 = 의정부교도소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교육이다.
이 가운데 외국어 교육은 전국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실력 또한 상당하다. 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외국어 교육반은 영어와 일어로 나눠진다. 정원은 각 30명으로 제한돼 있다. 매년 10월초에 입교해 이듬해 9월에 수료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을 진행하고, 대학교수들을 통한 교재수업과 원어민 강사를 통한 회화를 병행하고 있다.
또 성적관리를 위해 매월 1회 이상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교육이 끝날 무렵인 8월에는 TEPS와 JPT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 교육생 가운데는 대외수상자들도 꽤 있다.
코리아헤럴드 주최 전국웅변대회 최우수상과 우수상 1회, 장려상 2회 수상했으며, 한국번역가 협회 주관 번역능력 인정시험 영어 2급에 3명이나 합격했다. 또 지난해 8월에 실시된 어학능력평가에서 영어 TEPS 검정최고 957점, 일어 JPT 검정최고 850점을 얻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4년형을 받고 현재 영어반에 속해 있는 김 모(36)씨는 “교도소에 다양하게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다행”이라면서 “사회적으로 좀 더 따뜻한 시선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어반에 속해 있는 이모(41)씨는 일본계 회사에 다닌 경력을 살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홍성교도소에 있다가 지난해 시험을 치러 이곳으로 온 그는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정부엔 컴맹이 없어요 =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이다. 직업훈련을 통해 수용자들의 사회복귀를 수월하도록 돕고 있다.
교육분야로는 PC정비사, 조경, 자동차 정비 등 실제 쓰임새가 많은 분야가 주를 이룬다. 내실있는 정보화 교육을 위해 강서기능대학 및 대진대학과 관학협약을 맺었고, 펜티엄급 컴퓨터와 VTR 프로젝터 등을 활용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IT관련 자격증 취득인원만 241명에 이른다. 또 교도소 안팎에 설치한 공장 또한 새로운 사회화 과정이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상품은 전기면도기 조립과 다이어리 문구류 등이다. 일반기업체와 마찬가지로 전일근로제를 도입해 하루 8시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런 탓인지 상품 경쟁력 또한 상당하다. 전기면도기 직영공장 운영으로 해마다 7억원 이상의 세입증대 효과를 얻고 있다.
이처럼 의정부교도소 사회화는 사회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실제로 사회에 다시 나갈 경우 적응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각종 문화행사를 교도소에 유치하는 것이나 재소자들을 사회봉사활동에 내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수용사동 복도에 걸려있던 ‘어두웠던 지난시간 밝은 내일로 빛나리라’라는 문구가 의정부교도소에선 빈말이 아닌 것이다.
김건휘 의정부 교도소장은 “교도소는 사람을 가둬놓고 고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곳”이라면서 “사회에서도 인식을 바꿔 이들이 나갔을 때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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