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우리 문화유산 7.구산선문(선종구산문)>구산선문은 왜, 9개의 산에서 꽃피는가

지역내일 2001-01-12 (수정 2001-01-12 오후 4:43:11)
몇해 전 이른 봄 문경 봉암사 뒤편 월봉토굴에 올라갔었다. 월봉토굴은 봉암사 앞 계곡을 따라 1시
간쯤 올라간 희양산 절벽지대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길게 튀어나온 바위처마 밑을 막아 작은 방을 만든 이 토굴에는 당시 월봉스님이 거처하고 계셨다.
30년 가까이 봉암사 누룽지만 먹고 손수 농사지으며 토굴을 지켜온 월봉선사는 ‘일자무식’이라
했다. 어렵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솔잎효소로 만든 차를 내놓았는데, 오렌지쥬스병에 담긴 차맛이 각
별했다.
그 날은 마침 봉암사 동안거 해제일이었다. 100일 밤낮을 잠자지 않고 용맹정진했던 젊은 선승 3명
이 월봉선사를 찾아 산을 올라왔다. 이들의 대화는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스님, 00(누구누구를 지칭)는요, 화장실에서 똥 누다가 잠들어버렸어요.”
“허허 …”
“00는요, 눈 오는 날 마당에서 산책하다가 눈이 이불인 줄 알고 덮고 잤대요.”
“허허 …”

월봉스님은 마냥 웃을 뿐이었고, 100일 밤낮을 꼬박 새운 선승들은 초등학교 새내기가 할아버지께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을 얘기하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재롱을 떨었다.

도의는 왜 설악산 진전사로 가나
선종(禪宗)은 석가가 영산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았던 것에서
기원한 불교의 한 종파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고 하여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신라의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 경전에 의하지 않고 자기 안에 존재하는 불성
(佛性)을 깨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밖으로부터의 모든 인연을 끊고(外息諸緣) 깊숙한 산간에
파묻혀 좌선(坐禪)을 행했다.
신라에 처음으로 선사상을 전파한 도의(道義) 선사는 경주 왕실에서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멀리 강원도 양양의 산 속에 들어가 은거했다.
이곳은 나중에 진전사(陳田寺)로 발전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멀리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설악산 큰 줄기가 에워싼 곳이다. 지금 진전사는 폐사지가 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조각의 삼
층석탑과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로 여겨지는 도의 선사의 부도(진전사지부도)가 남아 있어 답사객들
의 발걸음이 종종 이어진다.

각자가 가진 불성의 계발을 중요시
절대적인 불타(佛陀)에 귀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불성의 계발을 중요시하는 선종은
자연스럽게 개인주의적 경향을 띄게 된다. 이는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지방호족들의 의
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면 족장들의 집단인 96각간(角干)이 서로 다투는 속에 왕이 살해되는가
하면, 권력쟁탈전에서 패한 중앙귀족들은 연고지에 내려와 지방호족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 각 지방
의 촌주(村主)들도 독자적인 경제력과 무력을 갖춘 토착 호족세력으로 성장한다.
신라말의 선사(禪師)들 중에는 중앙 지배층에서 몰락한 6두품 이하의 하급귀족 출신이나 지방호
족 출신들이 많았다. 이는 신라말 고려초의 선종 승려 중 행적을 알 수 있는 30인 가운데 절반 가
량이 김씨(金氏)로 나타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선종산문의 규모는 대단히 컸다. 《성주사사적기》에 의하면 충남 보령 성주사는 불전 80칸, 행랑
800여칸, 수각(水閣) 7칸, 고사(庫舍) 50여칸으로 무려 1,000칸에 이르는 거대한 사찰이었다.
문도(門徒)들도 많았다. 성주산문의 경우 낭혜의 이름 있는 제자가 2000명이나 되었으며 여엄
(麗嚴)의 제자가 500인, 현휘(玄暉)의 제자가 300인이나 되었다. 문도들은 상인이나 농민은 물론,
도둑떼의 무리까지 포용하고 있었다.

“고통받을 때, 혼자 성주사를 가라”
무염국사는 곧 낭혜화상이다. 낭혜(朗慧)의 법호는 무염이며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인 원각조사
(圓覺祖師) 달마(達磨)의 10세손이다. 어린 나이에 오색석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그는
중국을 떠돌며 진리를 구하다 마곡사(麻谷寺)에서 보철(寶澈)을 만난다.
선종의 법계는 달마를 개조(開祖)로 하여, 혜가(慧可) → 승찬(僧璨) → 도신(道信) → 홍인
(弘忍) → 혜능(慧能) → 남악회양(南嶽懷讓) → 마조도일(馬祖道一) → 마곡보철(馬谷寶澈)을
거쳐 마침내 성주무염(聖住無染)에 이른 것이다.
사적 제307호로 지정된 성주사터(충남 보령시)에는 현재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보물 제19호인 <오층석탑>, 역시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20호)과 <서(西)삼층석탑> (47호) 등이
남아 있다.
그밖에도 <동(東)삼층석탑>과 다 으스러진 <돌계단>이며 <철불대좌>, 시멘트로 얼굴을 때운 <>
상> 등이 지나간 세월의 영욕을 부끄럼 없이 보여준다. 특히 깨진 얼굴을 시멘트로 덧칠해서 복원해
놓은 석불입상은 세상사의 희로애락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잘 말해준다.

그대가 가장 처절하게 고통받을 때, 가령 실연을 당하거나 하면 성주사로 가라. 그것도 11월의 우중
충한 날씨에 혼자서 가라. 돌아올 때면 ‘더 이상의 절망은 없다’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
― 주강현.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구산선문 최초도량 남원 실상사
신라 흥덕왕 3년(828) 구산선문 도량 가운데 최초로 창건된 실상사는 지금도 선종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으니, 살림살이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큰절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엄청난 일들을 해
내고 있다.
이름난 절들이 절을 확장하고 화려하게 장엄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은 그런 외
양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절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화엄학림에서 수행하는 젊은 스님들, 백장암 선방에서 용맹정진하는 선승들, 귀농학교(歸農
學校)와 공동체 농장이 없다면 실상사는 실상사가 아니다.
실상사의 진정한 근원은 튼실한 신앙과 정진, 그리고 민중과 함께하는 상생의 정신이다. 천왕봉이 바
라다 보이는 지리산 북쪽 자락, 실상사 입구에 서 있는 돌장승을 만나보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돌덩이 하나가 얼마나 깊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지, 그 미소는 곧 부처님의 마음이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교(敎)가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없는 자리에 이르는 것이라면,
선(禪)은 말없는 곳으로부터 말없는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 서산대사


글 ·사진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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