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시대와 상생의 노사관계>④노사 모두가 풀어야 할 조직과제

허리가 튼튼해야 강력해진다

지역내일 2005-05-27 (수정 2005-05-30 오후 1:56:11)
기업-중간관리자·노조-대의원 등은 조직의 핵심
밑바닥 창의성 수렴하는 ‘팀플레이 리더’로 거듭나야

1분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밑도는 2.7% 수준에 그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본(5.3%)의 회복세나 중국(9.5%)의 약진과 비교되면서 “너무하지 않느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원화절상, 국제유가 상승, 위안화 평가절상 등의 대외적인 불안요소 때문에 ‘낙관은 금물’이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임·단협 시기를 맞아 노·사·정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된다면 한국경제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노동계가 비리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부와 재계는 근로대중으로부터 신뢰받고 있지 못해 노사관계에 불안요소가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글로벌(Global·세계화) 경쟁시대에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주목, 본지는 5회에 걸쳐 노·사·정 경제3주체가 당면한 노사관계 현안을 살펴보고,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노사관계를 21세기형 ‘상생(相生)의 노사관계’로 전환·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영화 ‘슈퍼맨’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배우 크리스토프 리브는 지난 1995년 승마시범 중 낙마(落馬), 그 뒤 줄곧 하반신 마비로 지내다 지난해 사망했다. 그는 냉전시대 미국의 우월한 힘을 상징하며 많은 팬을 확보한 스타였지만, 부도 명예도 그리고 현대 의학도 그의 허리를 되살려내지 못했다.
허리는 정상적 신체 활동을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날이 갈수록 국가간,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층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제가 보편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는 1981년 그룹사상 최연소 회장에 뽑혔는데, 그 직후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라는 경영전략 하에 대대적인 조직혁신에 나선다. 그는 1980년대 미국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조직의 대대적 혁신을 위해 빠르고(Speedy), 단순하며(Simple), 자신감(Selfconfident) 있는 조직으로 만든다는 이른바 3S 경영원칙을 밀고 나갔다.
이를 위해 그는 이전까지 9~11단계까지 거쳐야 했던 결재라인을 대폭 줄여, 최고경영자(CEO)-팀장-팀원으로 이어지는 3단계 결재시스템을 구축해 신속한 업무처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간관리자에 해당하는 팀장의 위상이 새로워졌다. 단순히 조직의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구성원(Team)의 장(長)으로서 그들의 경영자가 된 것이다.
지난날 우리나라 기업들의 중간관리자는 사용자의 앞잡이, 직원들이나 노조원들의 감시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특히 노무담당 관리자들은 70~80년대 노동자들에게 원성의 대상이기도 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횡행하는 전근대적 노사관계나 노동과 자본의 이분법적 대립이 주류를 형성하는 근대적 노사관계에서는 중간관리자의 고유한 역할이 눈에 띄기 어려웠다.
그와 같은 전근대적, 근대적 노사관계를 넘어 현대적인 개념의 소유·경영·노동이 통일되는 상생(Win-Win)의 관계로 전환하면, 경영자나 노동자와는 다른 중간관리자만의 고유한 역할이 주목되기 시작한다.
중간관리자는 수동적이던 틀에서 벗어나 또 다른 소우주(小宇宙)이자 조직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퀴 뉴엔 후이 교수는 한 대형 통신회사에서 진행한 조직혁신 프로젝트의 사례에서 117개의 세부 프로그램 중 최고경영자의 주도로 진행한 것은 성공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중간관리자들이 제안한 것은 80%가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회사는 3억 달러의 경제적 이득을 실현했음을 실증했다.
후이 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낳은 이유에 관해, 중간관리자가 자기 관리하의 하급직원들과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창의적인 혁신안을 현실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주류회사인 아사히맥주의 중간관리자들은 혁신적인 신제품 수퍼 드라이 비어(Beer)를 개발해 재기의 기반을 닦았으며, 모토롤라의 중간관리자들 역시 보통 2~3년이 소요되는 무선 디지털 시스템을 1년 만에 개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반면 중간관리자가 혁신과 창의에 기초한 팀플레이의 리더가 되지 못하면, 거대 기업조직에서 비효율과 간섭,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가 사무실과 학교에서 하나씩 옆에 두고 사용하는 메모지인 포스트잇(Post-It)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무려 1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3M의 연구자 스펜서 실버는 1970년 ‘잘 붙지 않는 접착제’라는 특이한 물질을 만들었다. 수년이 지난 후 그의 동료 아트 프라이는 이 접착제를 종이에 붙여 메모지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고안해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유통을 담당하는 중간관리자(팀장)가 이를 무시하고 넘어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포스트잇은 그 뒤 3M의 직원들 사이에서 조금씩 호평을 받아 결국 1981년 시판되기에 이르고, 현재 3M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로 성장했다.
어용집행부가 판을 쳤던 1970~80년대엔 위원장과 소수 상근간부들이 제멋대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조원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이를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할 대의원대회가, 거수기들의 집합소에 불과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치 유신과 5공화국 시대의 ‘통일주체국민회의’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런 집행부-대의원 아래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은 지난날 노동계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극복하는 계기였다. 민주집행부가 하나 둘씩 늘기 시작하면서 노조 대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집행부와 노조원을 잇는 가교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게 된 것이다.
잘못된 집행부의 판단에 대해 노조원의 힘을 바탕으로 제동을 걸기도 했고, 집행부의 방침을 노조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장에 내려가 설득하고 투쟁 판을 조직해 내기도 했다.
마치 로마군대의 기본 구성단위를 책임진 백인대장(百人隊長·Centurio)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노동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백인대는 로마군대의 최소 단위로 오늘날로 하면 팀과 같은 개념이다. 백인대장은 단순히 군단이나 대대장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100명 안팎의 백인대 구성원들의 생활과 전투와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백인대장은 대략 15~20년 가까이 군단생활을 거친 사람에게 자격이 주어지며, 그중 백인대 내에서 신망이 높아 리더십을 갖춘 군사 중에서 선출됐으며, 출신계급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특혜가 주어졌다.
결국 인류역사상 최장의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한 로마군대는 100명 안팎의 군사들 내에서 신망 받고 지지받는 유능한 군사 가운데 선출된 백인대장과, 이를 믿고 따르는 군사들의 유기적 군사행동(팀플레이)을 기초로 삼은 셈이다.
오늘날 유럽의 웬만한 도시가 로마시대 군단기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데서도 살필 수 있듯, 군단의 기본단위였던 백인대와 백인대장의 역사적 의미는 되새겨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노조 대의원도 로마의 백인대장처럼 조직의 최소단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높은 도덕성과 함께 노조원들에게 봉사하려는 의지 또한 탁월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노조 전·현직 대의원들이 부정·비리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노동계의 허리에 디스크가 발병했다.
한편 허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곳은 바로 축구계다. 21세기 현대축구는 허리를 중심으로 한 팀플레이의 완성도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촉망받는 축구선수 가운데 한명이 박지성 선수다. 박 선수는 현재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에인트호벤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midfielder)로 활약하면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4강전에 올라 멋진 골까지 넣었다. 그가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중원을 장악하고, 공수(攻守)를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한때 ‘예술축구(Art Soccer)의 마술사’라는 칭송을 받았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중원을 장악하고, 공격과 수비에서 선수들을 조율하여 당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세계축구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눈부시게 진화해 왔다. 그때 마다 선진축구의 가장 큰 전술적 변화는 미드필드를 중심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팀플레이, 거기서부터 시작돼 최전방 공격수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어지는 송곳 패스가 승패를 갈랐다.
세계축구의 변방이었던 한국축구가 2002년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에 따라 4강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미드필드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전술로 상대편을 압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필더나 노조 대의원, 중간관리자 모두가 동일한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분야는 다르지만 역할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두 성실(誠實)해야 한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공-수, 노조원-집행부, 현장근로자-경영자 사이에서 조율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기교만 부릴 줄 아는 미드필더를 기용하거나, 현장의 창의성을 묵살함으로써 조율능력을 상실한 채 관료주의에 물든 중간관리자가 판을 치거나, 집행부의 허수아비일 뿐이거나 부패한 대의원들이 있다면, 그들이 속한 조직은 결코 미래사회의 희망일 수 없다.

/백만호·이강연 기자 hopebai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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