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의원 무죄선고로 본 검찰 딜레마

“진술밖에 없는 사건 어떻게 입증하나”

지역내일 2005-06-22
“이 사건의 증거는 피고인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김윤수(이인재 의원의 전 공보특보)씨 진술뿐인데 돈을 전달한 경위나 시점 등이 불명확해 김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
21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형사 5부 법정.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서 2억 5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자민련 이인제 의원에 대한 항소심이 무죄로 결론나자 희비가 교차했다. 이 의원은 “노 정권 의도가 좌절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말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희생됐다는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수사를 했던 검찰은 당혹스러운 반응이다.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진술에 대해 항소심이 별다른 추가 증거 없이 무죄판결 했다는 것이다. 항소심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할 뜻을 비쳤다.
최근 달라지고 있는 범죄수법과 수사환경, 그리고 재판경향에 대한 검찰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지는 뇌물이나 정치자금 사건 등에 대한 혐의입증에 대한 고민이 깊다.

◆“뻔히 보이는데…” = 얼마 전 수자원공사 발주공사 수주를 둘러싼 비리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유재만 부장검사)는 건설브로커 이 모씨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다. 세간의 관심이 쏠려있던 수 십 억원의 비자금 용처에 대해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세탁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 가운데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 36억원에 이르렀고, 수사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나 거의 40억원대의 비자금 행방이 묘연해졌다. 당시 이 돈의 행방을 두고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비자금이 모두 현금이었고 당사자가 입을 굳게 닫으면서 수사는 답보상태에 그쳤다. 브로커 이씨는 “죽일 테면 죽여라. 먼 훗날 밝히겠다”며 검찰을 우롱했다. 검찰관계자는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당사자가 부인하면 사실상 입증할 길이 없다”면서 “여러 정황을 통해 어렵게 진술을 확보해도 법정에서 또 한 번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관계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자금 문제에 대해 “현금으로 했기 때문에 꼬리가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도 지난해 말 강동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둘러싸고 뇌물을 받은 재건축조합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세 번 모두 기각되자 검찰이 발끈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관계자는 “어렵게 진술확보하고 정황까지 제시했는데 돈 준 사람은 구속하고 돈 받은 사람은 기각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흥분했다.

◆검찰 “수사기관에만 입증책임 무리” = 검찰의 불만은 단순히 수사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이 의원 재판처럼 진술이 나왔다할지라도 불충분할 경우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경향이 짙다.
특수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검찰관계자는 “아무리 정황증거와 진술을 다 꺼내도 현금으로 오고가고 당사자까지 부인하면 어렵다”면서 “더구나 최근 법원이 뇌물을 준 사람 진술이 나와도 증거불충분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국처럼 의심스러운 자금이 있으면 처벌받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입증책임을 수사기관에만 맡기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검찰고위관계자도 “미국처럼 일정금액 이상 자금흐름은 곧바로 추적되고 수상한 자금의 경우 입증책임을 당사자가 져야 하는 장치조차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수사기관에만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근거지로 ‘밤의 황제’라고 불리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처벌되는 과정을 예로 들었다. 밀주, 매춘, 도박 등으로 떼돈을 벌고 다른 갱과의 싸움에서 수 백 명을 죽이는 등 온갖 불법과 살인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법망을 빠져나간 알 카포네가 결국 부정한 돈의 출처에 대해 입증하지 못하고 탈세혐의로 구속된 유명한 사건이다.
탈세로 구속된 알 카포네는 7년의 옥살이를 한 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 과정은 나중에 ‘언터처블’이라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검찰이 뇌물사건 못지않게 진술에 의존하는 것이 조직폭력배 사건인데 이 또한 입증이 간단치 않다는 주장이다.

◆법원 “인신에 관한 사항 철저할 수밖에” = 검찰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자는 공판중심주의 방향은 옳은 것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려움은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수사의 어려움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재판의 어려움도 있다”면서 “특히 현금의 경우 줬다는 사람말만 믿을 경우 A한테 준 것인데 B에게 덮어씌울 수도 있고 중간전달자가 가로챘는데 유죄를 선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형법에도 나와 있지만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면서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의심만 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못 박았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현금으로 건넨 뇌물의 경우 검찰이 유죄를 입증해야지 다른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면서 “인신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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