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스승, 그들의 모델]⑬ 천정배 의원과 고 조영래 변호사·김대중 전 대통령

“그를 따라가면 잘못 살 일 없을 것 같았다”

지역내일 2005-05-19 (수정 2005-05-19 오전 11:48:38)
‘신들메 매어주는 것으로도 영광’이던 조영래 변호사
‘정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김대중 전 대통령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성서의 한 구절인 이 말 중 ‘신들메’란 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발에다 동여매는 끈을 의미한다.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라고 말한 세례 요한에게 있어 예수는 신발끈 하나 매어주기도 가슴이 벅 찰만큼 귀한 존재였다.
지난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맡아 국정운영의 최일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이끌었던 천정배 의원. 천 의원이 진심으로 ‘신들메를 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태일 평전’의 저자로 세간에 잘 알려진 고 조영래 변호사다.
조 변호사는 천 의원에게 인권변호사로서 사는 길을 열어주었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줬다고 한다. 천 의원은 “조 변호사를 따라다니면 최소한 잘 못 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며 자신을 낮췄다.
삶의 지평을 넓힌 사람이 조영래였다면 정치인 천정배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의 말 중 천 의원이 가슴 속 깊이 새기는 말이 있다.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무엇을 하려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던진 이 한마디는 현재까지도 천정배의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가 가는 곳에 진실이 있었다”= 19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은 굵직굵직한 사건을 변호하며 소외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다 1990년 43세의 짧은 생을 마친 조영래. 47년 대구에서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수석입학, 사법시험 합격 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6년간 수배생활, 80년 사법연수원 재입학 후 83년부터 인권변호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를 사람들은 천재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영래는 수배 도중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전태일 평전으로 70~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문장가였고 해박한 법논리로 부당한 공권력에 맞선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조영래를 ‘보석 같이 빛나던 이’라고 했다.
천정배와 조영래가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1972년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 후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 3년여 공군법무관을 거쳐 81년 ‘김&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간 천정배는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김&장에서 활동하던 조영래를 만났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82년 조영래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85년 남대문합동법률 사무소를 같이 개소하면서 본격적으로 ‘동료’가 됐다. 그 때부터 조영래는 그 유명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대우어패럴 사건, 25살에 정년퇴직해야 했던 한국통신 여성 전화교환원 문제, 망원동 수재 집단소송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건들을 맡았다.
어떤 이는 그래서 “조영래가 가는 곳만 따라다니면 그 곳에 진실이 있었고 정의가 있었고 승리가 있었다”고 했다.
조영래가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변론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천정배는 변호사 사무실 안살림을 꾸려야 했다.
당시 조영래의 절친한 친구였던 손학규 현 경기지사가 사무실에 들러 “영래야! 너 여러 가지 사회적인 활동도 하고, 글도 쓰는데, 너 글 쓸 때 ‘이 글은 천정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나왔다’고 써야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천정배는 조영래의 신들메를 매어주는데 역할에 충실했다.
김&장이라는 대형 로펌에서 촉망 받은 변호사 생활을 했던 천정배. 그 후 얼마든지 ‘편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결국 선택은 조영래와 함께하는 삶이었다.
조영래의 해박한 법률지식에 놀랐던 천정배는 그의 현실적 균형감각에 다시 한번 놀랐다. 당시 조영래는 좌파·운동진영 사람들 시각으로 보면 너무 보수·우파적 인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붕괴되기 이전이었는데, 조 변호사가 ‘동유럽과 소련은 한국보다 훨씬 못 살고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평가를 내리더라구요. 저로선 생소하고 충격적인 얘기였어요.”
천 의원은 이외에도 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 저항세력이라고 해서 항상 역사의 종속변수는 아니라며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평가한 점, 조갑제씨 등 보수진영 인사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진 조영래의 모습에서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김대중 팬’ =‘변호사 천정배’에서 ‘정치인 천정배’로 변신한지 10여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고향(전남 목포)인 천 의원은 어렸을 적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팬이었다.
1966년 천정배의 중학교 시절,당시 재선에 도전한 김대중 의원이 목포에서 유세할 때 학생 천정배는 김대중의 연설을 따라하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최근 천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그만 둔 이후 처음으로 여수대에서 외부강연을 했다. 천 의원은 ‘집권여당이 중산·서민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정책중심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언뜻 들으면 그냥 평범한 말 같지만, 이 말 속에 천 의원의 향후 정치행보가 그려져 있다.
‘중산·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당’이라는 모티브를 제공한 이는 바로 김 전 대통령.
“한국사회에서 중산·서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를 이슈화해 국가적 아젠다로 만들어낸 정치인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보수화되기 십상이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천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아직도 비생산적인 정치풍토에서 군계일학으로 생산성을 추구한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또 김대중과 같은 식견을 가진 정치인이 한 두명이라도 더 있었다라면 우리나라 정치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에피소드 하나.
15대 국회의원이 된 천 의원이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아 지방강연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일이다.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천 의원에게 김 전 대통령은 ‘사형제도’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했다고 한다. 요지는 “인류사적으로 사형제도는 폐지되는 추세다. 특히 정치범에 대한 사형은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천정배는 어떤 사안이든 핵심을 꿰뚫고 있는 그의 식견에 놀라우면서도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니, 언론 인터뷰할 때는 사형제 폐지 같은 것들은 얘기하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 조영래와 김대중. 그들은 지금도 천정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할 때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소외된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현실을 보는 균형감각만은 잃지 않았던 조영래, 중산·서민의 정당건설을 외치며 생산적인 정치를 추구했던 김대중. 천 의원은 “그들의 삶 속에 내가 닮고 싶고 가고 싶은 길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신창훈 기자 chuns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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