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미스터리, 드디어 벗겨지나
주섭일 (언론인·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26년 전 파리에서 실종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미스터리가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진실위의 조사결과는 ‘김형욱 미스터리’의 줄기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이 있다. 중간조사이기는 하지만 미흡한 부분이 눈에 뜨인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절차를 더 밟은 후 발표했다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실위 발표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이상열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는 파리의 중정연수생 신현진씨(가명)와 이만수씨(가명)를 행동대원으로 삼아 납치-살해했다는 것이다. 김재규로부터 독침과 소련제 권총을 받은 이 공사는 행동대원들에게 살해지시를 했고, 신은 동구권 친구 2명을 10만 달러를 주고 음모에 가담시켰다. 신은 파리에서 김형욱을 납치해 근교로 나가 야산 숲에서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살해는 동구인이 했으며, 신은 시체확인도 권총회수도 않고 유품을 세느강 등에 버리고 3일 후 귀국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김은 없다’ 결론
진실위의 발표는 중정 연수생 신의 진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김재규와 이상열 등 중정 지도부의 공작임을 분명히 했고, 파리의 카지노가 무대라는 점에서 실종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 같다. 여기서 당시 중앙일보 프랑스 특파원으로 취재에 임했던 취재경험상 보완점을 살펴보자.
1)살해동기가 분명하지 않다. 당시 김형욱은 회고록원고를 중정에 넘기고 50만 달러의 대가를 받기 위해 파리에 온 것으로, 이 공사는 원고를 받고 돈을 김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인미끼였다고 한다. 2)김형욱은 도박장 ‘그랑 셀클’에서 돈을 잃고 칩을 외상으로 요구했으나 거절되자 술이 취해 호텔 리츠에 돌아왔다. 이튿날 샹제리제 뒷골목 웨스트엔드 호텔로 옮겨 오전 11시경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이 공사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었다. 3)파리경시청 김형욱 수사본부 까르타 본부장은 프랑스의 모든 시신의 신원확인결과 김은 없다고 확인했다. 파리교외서 살해됐다면 그의 시체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4)파리경시청 수사본부는 4개월 후 문을 닫았다. 까르타 본부장은 ‘프랑스 영토에 생존했든, 죽었든 김형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진실위의 발표는 이 수사결과와 어긋난다. ‘낙엽이 덮여 시체발견이 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5)오작교작전으로 알려진 납치-마취-외교 파우치편 서울압송-청와대지하 살해를 기록한 프랑스어 문서가 당시 나에게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출처불명의 문서는 얼마 후 한 일본주간지가 전문번역해 보도했다. 목적이 분명히 있는 문서의 출처조사도 필요하다. 6)까르타 수사본부장은 현재 은퇴했지만 증언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 내무성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며, 그의 협조는 진실규명의 열쇠가 될 것이다.
정부가 프랑스에 중간조사결과를 알리고 이해를 구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러나 프랑스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프랑스는 일단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내용검토 후 판단할 것’이라며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불 한국대사관의 ‘외교관’이 프랑스를 여행하는 전직고관을 살해한 것은 프랑스형법상 중대범죄이나 시효(10년)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
현장조사, 프랑스 협력 필연적
그럼에도 프랑스의 재수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살해현장을 밝히고 시신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가 수사본부를 설치했던 만큼 수사기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까르타 본부장은 당시 이 공사를 1차 소환조사했으나 그의 서울 부임으로 2차 소환에 실패했다고 말했었다. 까르타의 수사 방향은 진실위의 발표를 보면 제대로 조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진실위의 파리 현지조사에 프랑스의 협력은 필연적이다.
군사정권시절의 중정은 나도 3번 연행돼 경험한바,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 못지않은 잔혹성으로 암살과 고문을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 집단이라고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것도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보다는 군사독재유지를 위한 만행이었으니 덮어버릴 수 없는 ‘국가와 역사의 치부’라 하겠다. 진실위가 김형욱 미스터리를 완전히 벗겨 과거사 정리를 깔끔히 매듭지어야 우리는 도덕적 민주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진실위는 김형욱사건의 진실규명으로 ‘치부’를 깨끗이 씻어주기 바란다.
주섭일 (언론인·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26년 전 파리에서 실종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미스터리가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진실위의 조사결과는 ‘김형욱 미스터리’의 줄기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이 있다. 중간조사이기는 하지만 미흡한 부분이 눈에 뜨인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절차를 더 밟은 후 발표했다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실위 발표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이상열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는 파리의 중정연수생 신현진씨(가명)와 이만수씨(가명)를 행동대원으로 삼아 납치-살해했다는 것이다. 김재규로부터 독침과 소련제 권총을 받은 이 공사는 행동대원들에게 살해지시를 했고, 신은 동구권 친구 2명을 10만 달러를 주고 음모에 가담시켰다. 신은 파리에서 김형욱을 납치해 근교로 나가 야산 숲에서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살해는 동구인이 했으며, 신은 시체확인도 권총회수도 않고 유품을 세느강 등에 버리고 3일 후 귀국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김은 없다’ 결론
진실위의 발표는 중정 연수생 신의 진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김재규와 이상열 등 중정 지도부의 공작임을 분명히 했고, 파리의 카지노가 무대라는 점에서 실종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 같다. 여기서 당시 중앙일보 프랑스 특파원으로 취재에 임했던 취재경험상 보완점을 살펴보자.
1)살해동기가 분명하지 않다. 당시 김형욱은 회고록원고를 중정에 넘기고 50만 달러의 대가를 받기 위해 파리에 온 것으로, 이 공사는 원고를 받고 돈을 김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인미끼였다고 한다. 2)김형욱은 도박장 ‘그랑 셀클’에서 돈을 잃고 칩을 외상으로 요구했으나 거절되자 술이 취해 호텔 리츠에 돌아왔다. 이튿날 샹제리제 뒷골목 웨스트엔드 호텔로 옮겨 오전 11시경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이 공사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었다. 3)파리경시청 김형욱 수사본부 까르타 본부장은 프랑스의 모든 시신의 신원확인결과 김은 없다고 확인했다. 파리교외서 살해됐다면 그의 시체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4)파리경시청 수사본부는 4개월 후 문을 닫았다. 까르타 본부장은 ‘프랑스 영토에 생존했든, 죽었든 김형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진실위의 발표는 이 수사결과와 어긋난다. ‘낙엽이 덮여 시체발견이 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5)오작교작전으로 알려진 납치-마취-외교 파우치편 서울압송-청와대지하 살해를 기록한 프랑스어 문서가 당시 나에게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출처불명의 문서는 얼마 후 한 일본주간지가 전문번역해 보도했다. 목적이 분명히 있는 문서의 출처조사도 필요하다. 6)까르타 수사본부장은 현재 은퇴했지만 증언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 내무성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며, 그의 협조는 진실규명의 열쇠가 될 것이다.
정부가 프랑스에 중간조사결과를 알리고 이해를 구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러나 프랑스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프랑스는 일단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내용검토 후 판단할 것’이라며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불 한국대사관의 ‘외교관’이 프랑스를 여행하는 전직고관을 살해한 것은 프랑스형법상 중대범죄이나 시효(10년)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
현장조사, 프랑스 협력 필연적
그럼에도 프랑스의 재수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살해현장을 밝히고 시신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가 수사본부를 설치했던 만큼 수사기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까르타 본부장은 당시 이 공사를 1차 소환조사했으나 그의 서울 부임으로 2차 소환에 실패했다고 말했었다. 까르타의 수사 방향은 진실위의 발표를 보면 제대로 조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진실위의 파리 현지조사에 프랑스의 협력은 필연적이다.
군사정권시절의 중정은 나도 3번 연행돼 경험한바,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 못지않은 잔혹성으로 암살과 고문을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 집단이라고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것도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보다는 군사독재유지를 위한 만행이었으니 덮어버릴 수 없는 ‘국가와 역사의 치부’라 하겠다. 진실위가 김형욱 미스터리를 완전히 벗겨 과거사 정리를 깔끔히 매듭지어야 우리는 도덕적 민주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진실위는 김형욱사건의 진실규명으로 ‘치부’를 깨끗이 씻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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