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바보의 벽’을 깨라(2005.06.07)

지역내일 2005-06-06 (수정 2005-06-07 오후 1:35:42)
‘바보의 벽’을 깨라
유 승 삼 (언론인· 카이스트 초빙교수)

필자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한 대학생으로부터 최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경상도 분이신 제 아버지는 무조건 노무현 대통령은 잘못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저는 노 대통령에 대해 특별히 호감이나 악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 괜한 반감이 생깁니다. 대통령이나 그 보좌역들이, 정말 아버지 말씀처럼 머리가 비고 아버지보다도 나라 일을 할 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리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지 않았겠느냐, 방송에선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느냐는 등의 말씀을 드려도 그것 역시 제가 잘못 이해한 것, 혹은 방송에서 조작·왜곡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성 기사 내용은 믿으시면서 말입니다”

증오의 고정관념에 갇힌 사회
이 학생의 아버지가 지닌 관점과 태도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 반대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관점과 태도이다. 언론계에 있다는 이유로 자주 주위로부터 이런저런 소문과 보도 등에 관한 확인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열이면 열, 그들이 기대하는 건 사실 확인이 아니다. 자신들이 이미 내리고 있는 판단과 믿음에 대한 동의와 그 판단과 믿음을 굳히기 위한 보충 자료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평가야 자유지만 사실만은 분명히 이러저러하다’고 고쳐 말해 주어도 믿으려는 기색이 전혀 없다.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되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과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오지 않는 ‘바보의 벽’이란 개념이 있는데 요즘 우리 사회엔 이 두 개념이 중첩된 느낌이다.
노 대통령도 이런 현상을 잘 인지하고 있는지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정일기에 따르면 최근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는 한국 사회에 있는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정치는 “분노 때문에 시작했고” 청문회 스타 시절까지만 해도 “그 분노가 식지 않아서” 정치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그러한 문제 인식과 태도 변화는 현충일 추념사에서 재확인된다. 이날 추념사는 ‘공동체적 통합’을 주조로 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의 해결과 함께 합리적 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은 적극 수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러시아 시인의 이런 일갈은 백번 옳다. 지난 반세기와 같은 야만적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조차 새기지도 않았다면 그는 양심을 지닌 인간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를 이끈 동력이었다.
그러나 군부 세력이 집권하던 때와는 달리, 절대 악이 사회의 전면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여전히 과거의 ‘분노와 증오’와 편 가르기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것은 방법상으로 문제가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은 ‘바보의 벽’에 갇혀 시대 변화를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치의 책무가 갈등의 해결에 있고 대통령은 정치의 정점에 위치하는 존재인 한, 사회가 극단적인 증오로 분열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에게도 그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 대통령의 인식 변화는 자성의 결과라고 본다. 노 대통령도, 노 대통령의 반대자들도 독선과 배타주의를 버리고 민주 사회 기초인 ‘관용’과 ‘공존’에 우선 합의해야 한다.

우리 미래를 다투고 경쟁하라
우리들의 길은 여전히 멀고 멀다.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빈곤층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냉엄하다. 세계화는 기회적인 측면도 있지만 위협적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북핵 위기는 우리의 생존조차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다음 대통령에 뜻을 둔 사람들이 정말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주제는 실은 이런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으면서도 돌아서면 정치적 증오감에 그만 눈이 멀어 버리고 만다.
‘공동체적 통합’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올려진 어느 신문 인터넷 판엔 즉각 이런 댓글이 올랐다. “공동체적 통합을 저해하는 절대 요소는 노무현 대통령이며… 그가 대통령 직에 있는 동안은 해결되기 힘든 일…”
‘바보의 벽’을 깨라. 맹목적인 증오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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