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후퇴 시킨 죄’
유승삼 (언론인)
1980년대에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드러나던 1987년 12월 16일 밤의 슬픔과 분노를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노태우 828만2738표(35.9%), 김영삼 633만7581표(27.5%), 김대중 611만3375표(26.5%). 그 날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분열만 없었더라면 민주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전두환의 7년이 불가항력적인 ‘빼앗긴 세월’이었다면, 노태우 정권 5년은 양 김의 개인적 탐욕과 분열이 빚어낸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그래서 그 때 국민은 더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씨는 차례로 개인적인 정치 야망을 달성했지만 국민은 그 잃어버린 5년을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오는 2007년의 대선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1987년과 같은 역사의 지체와 후퇴를 목격할지도 모른다. 개혁 세력이라 자부했고 많은 국민도 그렇게 믿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인기는 지금 바닥에 떨어진 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 이대로만 가면 집권 세력의 실패와 무능에 따른 반사 이익 만으로도 보수 세력은 정권의 재장악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정체성 허문 ‘악성코드’ 인사
4일 열린 국회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는 이 정권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보여 주었다. 열린우리당이 무엇보다도 개혁성 때문에 추천했다는 조대현 후보는 꼭 한나라당이 추천한 후보 같았다. 개혁성을 묻는 질문에는 “헌법재판관의 요건에 개혁성이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있다”며 자신의 보수성을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질문 대상이 된 다른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도 ‘보수’와 ‘평범’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듣다 못한 한나라당 의원이 “견해를 들어 보니 열린우리당의 추천 이유와 전혀 맞지 않으니 용퇴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할 지경이었다.
야당은 현 정권이 ‘코드 인사’를 한다고 비난을 해 왔고 청와대와 여당은 이를 부인하기에 급급했지만 코드 인사가 나쁜 건 아니다. 자신과 정치적 이념과 정책적 지향을 같이 하는 인사를 동원해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권의 이념이나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연이나 개인적 친분에 따른 인사이다. 이런 코드 인사야말로 비난 받아 마땅한 ‘악성 코드’ 인사이다.
현 정권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주로 이런 무원칙한 인사, 연고주의적인 인사에서 비롯한다.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게 차라리 비용이 적게 든다”는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현 정권은 실은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거리가 더 가까운 중도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워낙 극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보적, 개혁적으로 비치며 또 얼마간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 승리한 것도 그러한 상대적 진보성과 개혁성을 국민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이 나온 지 이미 오래 됐지만 이 정권은 정치적 레토릭에서만 이따금 개혁 냄새를 풍길 뿐이다. 특히 정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경제 부문에서는 계속적으로 보수주의자를 동원해 철저히 보수의 길을 걸어 왔다.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조대현 후보가 꼭 한나라당 추천 후보 같다’지만 실은 경제정책이 더 그런 꼴이다. 시장주의의 무조건적인 옹호, 성장 우선주의, 실용주의라는 이름의 각종 보수적 정책은 현 정권이 과연 한나라당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왼쪽 깜박이에 우회전’ 여전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서도 ‘비 서민적’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반짝 성과라도 났으면 좋으련만 결과는 참담하다. 경제는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산층은 갈수록 해체돼 빈부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고용불안과 청년실업률도 높아져 현 정권의 지지층이 많았던 20대, 30대, 40대층에서도 인기가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됐다. 현 정권이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우선 창당 정신으로 돌아가 한나라당과 다른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 무성격과 무능 때문에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어 역사를 후퇴시킨다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역사의 진전을 5년 지체시킨 양 김 이상으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유승삼 (언론인)
1980년대에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드러나던 1987년 12월 16일 밤의 슬픔과 분노를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노태우 828만2738표(35.9%), 김영삼 633만7581표(27.5%), 김대중 611만3375표(26.5%). 그 날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분열만 없었더라면 민주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전두환의 7년이 불가항력적인 ‘빼앗긴 세월’이었다면, 노태우 정권 5년은 양 김의 개인적 탐욕과 분열이 빚어낸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그래서 그 때 국민은 더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씨는 차례로 개인적인 정치 야망을 달성했지만 국민은 그 잃어버린 5년을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오는 2007년의 대선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1987년과 같은 역사의 지체와 후퇴를 목격할지도 모른다. 개혁 세력이라 자부했고 많은 국민도 그렇게 믿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인기는 지금 바닥에 떨어진 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 이대로만 가면 집권 세력의 실패와 무능에 따른 반사 이익 만으로도 보수 세력은 정권의 재장악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정체성 허문 ‘악성코드’ 인사
4일 열린 국회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는 이 정권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보여 주었다. 열린우리당이 무엇보다도 개혁성 때문에 추천했다는 조대현 후보는 꼭 한나라당이 추천한 후보 같았다. 개혁성을 묻는 질문에는 “헌법재판관의 요건에 개혁성이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있다”며 자신의 보수성을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질문 대상이 된 다른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도 ‘보수’와 ‘평범’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듣다 못한 한나라당 의원이 “견해를 들어 보니 열린우리당의 추천 이유와 전혀 맞지 않으니 용퇴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할 지경이었다.
야당은 현 정권이 ‘코드 인사’를 한다고 비난을 해 왔고 청와대와 여당은 이를 부인하기에 급급했지만 코드 인사가 나쁜 건 아니다. 자신과 정치적 이념과 정책적 지향을 같이 하는 인사를 동원해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권의 이념이나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연이나 개인적 친분에 따른 인사이다. 이런 코드 인사야말로 비난 받아 마땅한 ‘악성 코드’ 인사이다.
현 정권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주로 이런 무원칙한 인사, 연고주의적인 인사에서 비롯한다.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게 차라리 비용이 적게 든다”는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현 정권은 실은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거리가 더 가까운 중도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워낙 극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보적, 개혁적으로 비치며 또 얼마간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 승리한 것도 그러한 상대적 진보성과 개혁성을 국민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이 나온 지 이미 오래 됐지만 이 정권은 정치적 레토릭에서만 이따금 개혁 냄새를 풍길 뿐이다. 특히 정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경제 부문에서는 계속적으로 보수주의자를 동원해 철저히 보수의 길을 걸어 왔다.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조대현 후보가 꼭 한나라당 추천 후보 같다’지만 실은 경제정책이 더 그런 꼴이다. 시장주의의 무조건적인 옹호, 성장 우선주의, 실용주의라는 이름의 각종 보수적 정책은 현 정권이 과연 한나라당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왼쪽 깜박이에 우회전’ 여전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서도 ‘비 서민적’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반짝 성과라도 났으면 좋으련만 결과는 참담하다. 경제는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산층은 갈수록 해체돼 빈부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고용불안과 청년실업률도 높아져 현 정권의 지지층이 많았던 20대, 30대, 40대층에서도 인기가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됐다. 현 정권이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우선 창당 정신으로 돌아가 한나라당과 다른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 무성격과 무능 때문에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어 역사를 후퇴시킨다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역사의 진전을 5년 지체시킨 양 김 이상으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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