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보고서 - 이 역사를 알아야 북핵 풀 수 있다

북한 핵개발 배경에는 중국간섭 벗어날 목적도 있다

지역내일 2005-06-16 (수정 2005-06-16 오전 11:45:55)
중국 통해 북한 핵포기 시키려는 미국 정책은 잘못된 것
1960년대부터 김일성·김정일 부자 체제수호용으로 핵개발 추진
김정일, 2003년 미국 핵공격 대비 50일간 지하벙커 생활

미국의 정책두뇌집단(이른바 싱크탱크)의 하나인 우드로 윌슨센터의 국제냉전사 프로젝트팀(Woodrow Wilson Center’s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CWIHP) 연구원들이 북핵의 비밀을 푸는 글을 워싱턴포스트 12일자에 기고했다. 그들은 1950~80년대 북한지도부와 소련 및 동유럽 관료들의 접촉내용을 담은 외교비밀문서를 수집해 연구했다. 연구결과, 그들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가 북한정권의 역사에 맞먹는 것이며, 핵개발 목적이 단순히 대외협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시각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핵을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북핵의 기조로 삼고 있지만, 연구원들은 이 기조가 북한을 오판해서 나온 싹부터 잘못된 정책임을 지적했다. 이 기고문은 신문지상에 발표된 만큼 매우 축약돼 있지만, 북핵문제를 알고 해법을 찾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가치가 크다. 이에 기고문의 본문을 최대한 살려 게재한다.
본문중 *표 굵은 글씨체 내용은 편집자가 최근 정세 등을 참고해 부연 설명한 것이다. 또 때마침 미국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미국의 정치인들이 미국행정부의 기초부터 잘못된 북핵정책을 지적한 기사가 있어 이를 함께 편집했다. /편집자 주

“미국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는데 우리는 핵무기 제조를 생각하는 것조차 금지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1962년 8월 북한 외무성 부상은 평양주재 소련대사에게 분노에 차 말했다.
2005년 3월 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자회담 의제에 미국의 핵위협문제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40년전에 북한 관리가 던진 말이 2005년 현재 미국 고위관리들에게도 똑같이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년 된 외교문서와 기타자료에서 북한의 핵에 대한 사고방식과 의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반세기 동안 통치해온 북한정권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3월말 6자회담에서 미국의 핵위협도 의제로 다루자는 북한의 주장이 나왔을 때 서방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 확신이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수차례 외교협상을 벌이다 시도단계서 갑자기 중단했다.
북한과 서방의 외교협상은 역사가 짧은 탓에 서방의 전문가들이 북한의 의중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수집한 자료는 이런 서방사회에서 북한의 속뜻을 아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핵논의의 민감한 시점에 공개돼 더 의미가 크다.

◆핵공격 대비 6500km 땅굴 구축 =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진짜이유는 자료를 관통하여 두가지로 요약됐다. 첫째, 북한은 미군의 공격전쟁 위협과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둘째, 북한은 국제사회와 국내문제에 대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 주변국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점에 집착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1950년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1953년 어렵게 휴전협정이 체결됐지만, 김일성 주석은 미국과 한국이 다시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했다.
북한은 한국전쟁 3년동안 미국의 대대적 폭격과 핵무기 사용 위협을 견뎌내야 했다.
*미국은 북한 전역에 기름화염탄인 네이팜탄으로 융단폭격을 벌여 22개 도시 가운데 18개 도시를 파괴했고, 국제법상 금지된 수풍댐 등 농업기반시설을 파괴해 민간인의 식량생산을 말살했다.
**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북한에 모두 30여개의 핵폭탄 투하작전을 승인했다. 미군전폭기는 핵탄두를 제거한 폭탄을 북한전역에 예비투하하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으나, 돌연 맥아더 사령관을 경질하면서 취소됐다. 북한지도부는 전국에 6500킬로미터의 땅굴을 파고 지하벙커로 숨어들었다. 3년을 끈 전쟁이 원점인 38선복귀로 끝나자 북한은 세계최강인 핵공격 위협까지 가한 미국을 물리쳤다고 자랑했다.
북한은 ‘우리는 핵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63년 2월 김일성 주석은 소련대사에게 “핵전쟁이 일어나면 지리조건상 북한이 유리하다. 산악지형이 핵폭발의 위력을 반감시킬 것이다”고 자신했다.

◆전쟁직후 원시상태로 돌아갈 각오로 핵개발 추진 =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미국의 핵기술이 발달되면서 김 주석의 시각도 변했다. 그는 1984년 5월 동독 공산당의 호네커 서기장과 회담에서 “우리는 미국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지 못하다. 하지만 미국은 더 많은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우리가 한반도에서 미국보다 강하다는 구실을 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계속해서 남한을 점령하기 위해 내세우는 변명이다. 미국은 절대 떠날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전투적이라기보다는 체념투다.
2년 후 1986년 10월 다시 호네커 서기장과의 회담에서 김일성은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그럴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를 핑계로 1000개의 미국 핵탄두가 남한에 배치돼 있으며 이 가운데 2개만으로도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대량 배치한 핵 억지전략이 성공했음을 시사한다.
* 북한이 전쟁직후 미국의 핵공격에 맞설 자신감을 보인 것은 더 잃을 게 없는 원시적 국가상태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은 3년전쟁으로 300만명이 죽고 도시와 산업 교통시설 대부분이 파괴돼 악에 받친 상태였다. 그러나 1986년의 핵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는 북한의 국가재건이 최고수준에 달해 평양 등에 핵무기2개가 투하되면 그동안 건설한 도시가 다시 원시수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005년 현재 북한은 외부의 경제봉쇄와 내부체제의 경직성 때문에 300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는 핵보유 의지는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에 더 가깝다.

◆김일성·김정일 정책은 놀랄만한 연속성 지녀 = 북한은 정권수립 후 김일성 김정일 부자 2명의 통치가 이어졌다. 이는 핵개발 등 주요정책이 놀랄만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김일성 주석은 북한의 수령이다.
북한은 1960년대 초부터 핵무기 보유를 추구했다. 1963년 평양주재 동독대사는 소련대사에게 “북한이 핵무기에 관한 사소한 정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에 근무한 소련의 우라늄 전문가는 “북한은 대규모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자 한다”고 보고했다.
김일성 정권은 소련에게 핵발전소를 지어줄 것을 재촉했다. 소련은 핵폭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1976년 소련이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핵기술 이전을 거절하자 화가 난 북한은 “적대국과 맞붙어 있는 북한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소련 지도부는 김일성 정권에게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는 것이 북한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득해보기도 했다.
1969년 헝가리주재 북한대사가 평양에 보낸 전보에 따르면, 구소련 외교관들은 북한에게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대한 찬반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북한은 평소와는 달리 핵확산금지에 찬성했다.

◆북한, 한반도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중국간섭 경계 = 이번 문서들에서 김일성 주석은 소련과 중국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전쟁 동안 소련의 스탈린은 북한이 미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되고 있는데도 소련 공군의 역할을 극히 제한했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은 중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보다 소련의 도움을 받기를 더 선호했다.
중국은 북한의 형제나라이며 한국전쟁에 인민혁명군을 투입해 도왔지만, 김 주석은 과거 수천년 역사에서 중국왕실이 한반도를 지배했던 사례에 대해 매우 민감했으며, 중국이 북한내정에 개입할 것을 우려했다.
당시는 공산주의가 국제적으로 전성기를 누릴 때였는데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이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현재는 공산주의의 세계혁명전략이나 이념이 모두 몰락해 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가 과거보다 약하다. 이런 시기에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압박할 책임을 중국에게 맡기는 북핵전략을 기조로 삼고 있는 미국행정부의 판단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 북한이 중국의 압박을 받아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본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이걸 알고도 중국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 것은 부시행정부가 북핵포기보다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게 만든다.
** 북한연구의 대가인 브루스커밍스 교수는, 김일성 주석과 북한의 항일빨치산 출신 지도부가 중국을 불신하게 된 뿌리로 1930년대 중반 중국공산당이 조선인 공산당원들에게 일제협력혐의를 씌워 1천명 이상을 출당하고 2천명 가량을 처형한 사건을 꼽는다. 지난해말 중국이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자 북한지도부가 중국이 미국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며 반발한다는 기사가 나온 바 있다. 또 올 3월에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대만문제를 양해받는 대신 북한을 미국의 의사대로 처리한다는 딜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중국은 자신들이 북한에 북핵포기 압력을 넣을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고, 그 반면 미국국무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14일 상원청문회에서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효한 압력수단을 다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털어놨다.
북한은 중-미간 관계회복과 소련연방의 몰락,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붕괴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북한은 자기의 체제안보는 어떤 나라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부시 행정부, 체제전복·정권태도 변화 사이서 방황 =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놓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아니면 단지 정권의 태도만 변화시키기를 원하는가. 미국 관리들은 이 두가지 입장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북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정밀폭격이 단순한 핵확산 방지행위로 제한되지 않고 한반도에서 북한정권을 몰아내는 ‘전면전’이 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2003년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미국이 북한까지 공습해 정권을 해체할 것이라고 믿고 50일 동안 지하 벙커에 몸을 감췄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정권이 곧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잘못된 전망에 사로잡혀 대북정책을 펼쳐서는 안된다. 경제봉쇄와 인민이 기아에 허덕여도 북한정권은 예상보다 훨씬 강인하고 끈질기다는 점이 증명됐다. 아무리 북한정권의 생존을 원치않더라도 북핵문제는 부시행정부가 북한정권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신뢰할 수 있는 보장을 해 주어야 풀린다.

/정리 이지혜 리포터 진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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