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5번째 논문집 발간 … “외부에 실체 알리고 고민하는 계기 마련”
회원들 사법파동·대법관 제청파문 주도 … 9월 대법원장 임명 앞두고 역할 주목
그 동안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법원내 개혁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5번째 논문집을 발간하고 사실상 모임을 외부에 공개했다.
22일 ‘우리법연구회’ 관계자는 “지난 19일 정례 가족모임을 갖고 5번째 논문집을 발간했다”며 “그 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우려, 외부 공개를 안했지만 이번 논문집 발표로 모임 자체를 사실상 공식화했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집은 1998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우리법연구회’ 월례세미나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박상훈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논문집 머리글을 통해 “우리법연구회의 실체를 알리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표명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 교체가 예정된 9월말을 앞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우리법연구회’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우리법연구회’ 는 소속 판사들이 지난 2003년 연판장을 돌리며 대법관제청파문을 주도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제청파문은 현재 한창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개혁의 실질적인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8년 출범 이후 17년 동안 외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우리법연구회’는 사법부 내부 문제와 국민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구체적 사법개혁방안 제시 = ‘우리법연구회’는 참여정부와 코드와 맞는다는 점에서 외부에 알려진 2003년부터 줄곧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다수 활동하면서 민변 출신 변호사들과 함께 사법개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논문집은 사법개혁에 관한 ‘우리법연구회’의 다양한 주장들을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논문집에 실린 첫 글이 대법원장의 임명방식을 설명한 정진경 부장판사가 쓴 ‘사법권의 독립과 관련한 사법개혁방안’(2001년 2월)이란 점도 그렇다.
정 부장판사는 글에서 “현재까지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확보할 사람보다 자신의 권력행사에 장애를 야기하지 않을 사람을 임명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국민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데에 적절한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장 임명의 전제조건으로 법관추천회의를 구성해 법조 내외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봤다.
대법원장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과도한 권한집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실렸다.
윤성식 판사는 ‘대법원장의 권한과 그 범위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사법행정 권한이 대법원장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의 서열화로 인해 대법관회의가 실질적인 기능을 다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한을 대폭 각급 법원에 넘겨주고 법원행정처도 행정권한을 고등법원 내지 지방법원에 대폭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관인사제도, 형소법 개정 논의까지 = 논문집에는 최근 검찰이 반발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관한 글도 실려 눈길을 끌고 있다.
신인수 판사 등이 작성한 ‘형사공판심리절차의 개선방안’이란 글에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소법 개정안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이글은 2004년 10월2일 발표된 것으로 사개추위 논의보다 몇 달 앞서있다.
이 글에는 ‘검사에 의한 피고인신문제도’에 대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침해하고 실무운용상 위압적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으므로 폐지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이 반발한 사개추위안과 같다.
하지만 형소법 개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생략’이라고만 표시한 채 관련 내용을 뺐다.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판사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인사제도와 근무평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글도 실렸다.
이용구 판사는 ‘법관인사제도’라는 글에서 “법관은 법관에 의해 평정을 받고 법관에 의해 승진될 뿐이었지 법원 외부로부터 검증 받은 바가 없다”며 “현재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법원은 제헌 이래 한번도 검증 받지 않은 권력집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관인사위원회제도는 구성방식에 있어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운영방식에 있어 의결기구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차 사법파동 당시의 뒷얘기 = 논문집에서 재밌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실린 ‘홈페이지에 올린 글 모임’이다. 우리법연구회 홈페이지에 회원들이 올린 글을 정리한 것으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쓴 ‘아메리카 2악장’이라는 수필형식의 글부터 2·3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회원들의 뒷얘기까지 다양하다.
2·3차 사법파동의 주역인 김종훈 변호사가 쓴 ‘1988. 6.15. 회고’와 ‘1993년 사법민주화운동 회고’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김 변호사는 글을 통해 1988년 2차 사법파동 당시 인천지법에서 판사들의 서명을 받을 때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수석 단독판사에게 서명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일과 전라도 출신보다 경상도 출신 판사들의 서명을 먼저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전라도 사람들이 서명을 주도했다는 비난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시환 변호사도 글에서 “당시 법원 안팎에서 모두들 명문이라고 입을 모아 평가해 준 이 의견서(3차 사법파동 성명서)는 우리법 회원이신 이창훈 변호사님이 술 먹고 집에 들어가 하루 저녁에 일필휘지로 갈겨 쓴 글”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박 변호사는 ‘무제’(2002.8)라는 글을 통해 “우리가 처음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서로 손잡고 함께 싸우자고 했던 그 고민들과 문제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가는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직도 준비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중인가?”라며 당시의 고민을 회원들에게 물음표로 던졌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회원들 사법파동·대법관 제청파문 주도 … 9월 대법원장 임명 앞두고 역할 주목
그 동안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법원내 개혁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5번째 논문집을 발간하고 사실상 모임을 외부에 공개했다.
22일 ‘우리법연구회’ 관계자는 “지난 19일 정례 가족모임을 갖고 5번째 논문집을 발간했다”며 “그 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우려, 외부 공개를 안했지만 이번 논문집 발표로 모임 자체를 사실상 공식화했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집은 1998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우리법연구회’ 월례세미나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박상훈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논문집 머리글을 통해 “우리법연구회의 실체를 알리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표명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 교체가 예정된 9월말을 앞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우리법연구회’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우리법연구회’ 는 소속 판사들이 지난 2003년 연판장을 돌리며 대법관제청파문을 주도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제청파문은 현재 한창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개혁의 실질적인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8년 출범 이후 17년 동안 외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우리법연구회’는 사법부 내부 문제와 국민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구체적 사법개혁방안 제시 = ‘우리법연구회’는 참여정부와 코드와 맞는다는 점에서 외부에 알려진 2003년부터 줄곧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다수 활동하면서 민변 출신 변호사들과 함께 사법개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논문집은 사법개혁에 관한 ‘우리법연구회’의 다양한 주장들을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논문집에 실린 첫 글이 대법원장의 임명방식을 설명한 정진경 부장판사가 쓴 ‘사법권의 독립과 관련한 사법개혁방안’(2001년 2월)이란 점도 그렇다.
정 부장판사는 글에서 “현재까지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확보할 사람보다 자신의 권력행사에 장애를 야기하지 않을 사람을 임명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국민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데에 적절한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장 임명의 전제조건으로 법관추천회의를 구성해 법조 내외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봤다.
대법원장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과도한 권한집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실렸다.
윤성식 판사는 ‘대법원장의 권한과 그 범위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사법행정 권한이 대법원장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의 서열화로 인해 대법관회의가 실질적인 기능을 다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한을 대폭 각급 법원에 넘겨주고 법원행정처도 행정권한을 고등법원 내지 지방법원에 대폭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관인사제도, 형소법 개정 논의까지 = 논문집에는 최근 검찰이 반발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관한 글도 실려 눈길을 끌고 있다.
신인수 판사 등이 작성한 ‘형사공판심리절차의 개선방안’이란 글에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소법 개정안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이글은 2004년 10월2일 발표된 것으로 사개추위 논의보다 몇 달 앞서있다.
이 글에는 ‘검사에 의한 피고인신문제도’에 대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침해하고 실무운용상 위압적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으므로 폐지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이 반발한 사개추위안과 같다.
하지만 형소법 개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생략’이라고만 표시한 채 관련 내용을 뺐다.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판사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인사제도와 근무평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글도 실렸다.
이용구 판사는 ‘법관인사제도’라는 글에서 “법관은 법관에 의해 평정을 받고 법관에 의해 승진될 뿐이었지 법원 외부로부터 검증 받은 바가 없다”며 “현재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법원은 제헌 이래 한번도 검증 받지 않은 권력집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관인사위원회제도는 구성방식에 있어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운영방식에 있어 의결기구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차 사법파동 당시의 뒷얘기 = 논문집에서 재밌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실린 ‘홈페이지에 올린 글 모임’이다. 우리법연구회 홈페이지에 회원들이 올린 글을 정리한 것으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쓴 ‘아메리카 2악장’이라는 수필형식의 글부터 2·3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회원들의 뒷얘기까지 다양하다.
2·3차 사법파동의 주역인 김종훈 변호사가 쓴 ‘1988. 6.15. 회고’와 ‘1993년 사법민주화운동 회고’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김 변호사는 글을 통해 1988년 2차 사법파동 당시 인천지법에서 판사들의 서명을 받을 때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수석 단독판사에게 서명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일과 전라도 출신보다 경상도 출신 판사들의 서명을 먼저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전라도 사람들이 서명을 주도했다는 비난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시환 변호사도 글에서 “당시 법원 안팎에서 모두들 명문이라고 입을 모아 평가해 준 이 의견서(3차 사법파동 성명서)는 우리법 회원이신 이창훈 변호사님이 술 먹고 집에 들어가 하루 저녁에 일필휘지로 갈겨 쓴 글”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박 변호사는 ‘무제’(2002.8)라는 글을 통해 “우리가 처음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서로 손잡고 함께 싸우자고 했던 그 고민들과 문제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가는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직도 준비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중인가?”라며 당시의 고민을 회원들에게 물음표로 던졌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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