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임·단협 3대 쟁점>①불안한 일자리 ‘안정화’ 방안

고용불안 없애려면 기업가치 높여야

지역내일 2005-06-28
6월 들어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체결·갱신을 둘러싼 노사간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노동부는 얼마 전 “올해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추세”라고 공언했지만, 금속(자동차 포함)·병원·운수 등에서 파열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낙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사관계가 파행에 이를 가능성’은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근로자들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주거비·사교육비·세금 부담 등이 오히려 늘어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노동자를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파업 등 극단적인 형태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근로자들의 생활이 안정 기조에 들어서려면 한국경제가 활력을 되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가 안정돼야 한다. 본지는 올 임단협의 주요 쟁점을 3회에 걸쳐 검토, 노·사·정 경제3주체가 안정적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 /편집자 주

IMF 외환위기 이후 산업현장에 짙게 드리워진 고용불안의 그림자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매년 임단협 시기 때마다 고용불안 해소책을 놓고 노사간 반목이 일상화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흑자경영구조가 정착되는 등 기업가치(경쟁력)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만 만성적인 고용불안을 극복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전폭적인 의기투합이 노사간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당장 일자리 유지에 급급해 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의 경영층이 “이렇게 가다가는 2∼3년 안에 적자의 늪에 허덕일 수 있다”며 “인력운용에 대해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다 경영을 사용자의 몫으로만 치부하는 논리가 노동계 내부에 상존하면서 경영난을 자초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으로 인원감축에 지나치게 집착하곤 한다. 기업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시인하지 않은 채, 비용절감에 매달리는 모습은 근로자들의 불신을 얻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고용불안과 관련해서는 거의 무풍지대였다. 외환위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철밥통’의 이미지는 퇴색되지 않았다. 나아가 불필요한 규제를 통해 민간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스스로 혁신하기보다는 노사 모두에게 주문을 쏟아내는 모습은 노사로 하여금 정부를 공정한 중재자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올 임단협에서도 ‘고용불안 해소’가 가장 큰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2005년 노사관계 전망조사’에 응한 주요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88명)들은 노조의 중점 요구사항으로 ‘구조조정 반대 및 고용안정’을 1순위(24%)로 꼽았다. 민주노총 대의원들도 올 1월 실시된 자체 설문조사에서 노사간 올해 주요 쟁점으로 ‘고용불안과 구조조정(30.4%)’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고용불안이 유령처럼 우리 곁을 배회하기 시작한 것은 철옹성처럼 보였던 재벌그룹과 은행들이 간판을 내리면서부터다. 30대 재벌그룹 가운데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에 무너진 곳만도 7군데. 1997년 1월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3월 삼미와 진로가 쓰러졌고, 7월엔 종업원들이 제1대 주주였던 기아가 부도났으며, 11월 해태와 뉴코아, 12월초엔 한라그룹이 무너졌다. 이후 20여개에 달하는 재벌그룹이 해체되거나 30대 그룹에서 밀려났다.
대마불사(大馬不死)와 함께 은행불사의 신화도 깨졌다. 1998년 6월 경기 충청 대동 동남 동화 등 5개 은행의 퇴출을 필두로 제일·서울은행 지분매각, 주택·국민은행 합병 등이 숨 돌릴 틈 없이 진행됐고, 현재도 은행간 합병이나 매각이 진행 중이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사실상 정리해고 당한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1998년 한 해 동안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을 그만둔 이들이 12만7000여명으로, 취업자 수가 1997년보다 9.7%(98년 전체 실업률 7.0%)나 줄었다. 특히 제조업 분야 취업자 수는 17.0%나 줄어 경제 위기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런 마당에 임금 등 근로조건 악화는 불을 보듯 뻔했다. 1998년 전체 임금상승률은 -2.5%로 임금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1970년 이후 최초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 때 이후론 지금까지 임금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사·정도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1998년 1월 발족한 노사정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경제주체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자”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노·사·정간 의기투합은 단 1년 만에 끝났다.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했던 민주노총이 1999년 2월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지금껏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경제3주체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상태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사정위에서 ‘공정한 고통분담’에 합의했지만, 노동계는 내심 “정부와 재계가 더 많은 고통을 부담하는 것이 공정한 고통분담인데, 어찌된 것인지 우리만 고통당하고 있다”며 불만스러워 했다. 재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리해고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며 ‘노동시장 유연화’에다 목을 매다시피 했다. 국난 초래의 주범인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을 통감하며 고통을 앞장서 분담하기보다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세하려 들었다.
다시 말해 정부는 마지못해 노동계를 정책파트너로 삼았을 뿐, 존중하는 데 인색했고, 재계는 이유야 어떻든 간에 경영실패를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노동계는 자신들만이 ‘사회적 약자’라는 통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국제협력실장은 “이처럼 신뢰관계가 붕괴된 상태에선 백약이 무효”라고 단언했다. 역으로 신뢰관계가 정착돼 있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해 진다는 말이다.
도요타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17억1000만 달러로 현대자동차보다 10배나 많았다. 하지만 도요타는 2005년도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았고, ‘4년 연속 기본급 동결’이라는 신화 아닌 신화를 썼다. 노사간 신뢰가 뒷받침되면서 대한민국에선 아직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도요타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최고 경영자가 현장에서 손에 기름때를 묻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고, 지난 1997년부터는 당시 사장이었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의 지시로 임원들의 임금평균을 근로자 임금평균의 3배 이내로 제한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이런 모습을 접하면서 신뢰관계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도요타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1948∼1949년 파산위기에 직면하자, 금융기관으로부터 구제자금을 받는 대가로 16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감축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1950년 전면파업으로 맞섰다. 도요타 역사상 딱 한번 있었던 전면파업을 겪으면서 도요타 노사는 경영난을 예방하지 않고서는 고용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영난 예방을 위해서 도요타 노사는 항상 머리를 맞댄다.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간담회 등을 통해 다양하게 수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조율한다. 엄청난 이익에도 불구하고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기로 한 것도 ‘기업가치를 높여 다시는 경영난을 겪지 말자’는 데에 노와 사가 의기투합한 결과다.
심리학자들은 대부분 상대방을 누군가와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상대방의 처지와 조건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단순비교는 상대방을 설득하기는커녕 불필요한 반항심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도요타와 현대자동차를 단순비교해 한쪽은 엄청난 이익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본급을 동결한 반면, 다른 한쪽은 이익 규모가 10분의 1에 불과한데도 기업이야 망하든 말든 자기 주머니부터 챙기려 든다고 맹비난해도 노조 쪽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98년 8월 1만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감축을 겪으면서 현대차 종업원들 사이에선 언제 잘릴지 모르니 챙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기자는 경향이 생겨났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용불안을 우려해 생산라인 조정은 물론이고, 누가 봐도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작업장 재배치도 거부한다는 것. 이런 흐름이 올 임단협에서도 이어져 국내 공장 축소 금지, 해외공장 부품의 역수입 금지 등의 요구가 나타났다.
따라서 현대차 노사가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합의에 도달하려면 지나칠 정도의 고용불안감을 치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난날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반성,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앞으로 노사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고용안정 방안’에 대해 우선 사측이 밝히고 노측이 화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생산인력 재배치(전환배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경영효율성에 심각한 타격과 손실을 입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으며, “1인당 인건비 수준이 GM보다 많고 도요타에 육박하는 데도 생산성은 이들 경쟁업체의 5분의 3 정도여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 역시 지지세를 늘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용자는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자는 경영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불신을 점차 극복해 나가야 한다. ‘기업가치를 높여 고용안정을 달성하는 데는 노와 사가 따로 일 수 없다’는 상식이 통용되려면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강연 기자 lkyy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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