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기행
심경호 지음
이가서 /2만5000원
우리민족은 오래전부터 풍류를 중시했다. 굳이 화랑도 얘기를 꺼내들지 않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길떠남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는 백면서생들도 비록 책 속에서라도 무릉도원을 여행하곤 했다.
선비들은 금수강산 곳곳에 펼쳐져 있는 심산유곡, 청풍명월을 찾아 그곳에서 시를 읊고 세상을 논했다. 비단 사대부 양반들만이 아니다. 술주정꾼, 비렁뱅이, 시골 노파라 할지라도 유람길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예술가 강세황은 금강산을 찾은 이같은 사람들 때문에 금강산 유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악한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지 않은가. 물론 그도 결국 70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금강산을 찾았다지만.
선조들은 국토 산하 속에서 노닐면서 평소의 불평불만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감흥을 얻었으며 산하의 아름다움 자체를 형상화했다. 그리고 산천이 지닌 역사미(歷史美)를 재발견했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가 펴낸 ‘한시기행’은 전국 방방곡곡을 읊은 선조들의 노래를 엮은 책이다. 소가 되새김질로 양분을 흡수하듯, 한시 속에 들어있는 조선 팔도의 풍경을 찾아내 당시 여정을 반추한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실험적 로드무비’라고 했다. 종이 위의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연습하는 실습과목이라는 것이다.
역사나 인물의 전기를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역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 이것이 저자가 밝힌 이 책을 펴낸 목표다.
‘한시 기행’은 우리나라 한시 가운데 국토산하의 아름다움과 역사 및 당시 권력관계, 민족의 생활상을 노래한 한시를 소개하고 있다. 격랑에 휩싸인 당시 권력구조와 이를 바라보는 당시 선비의 모습, 역사교과서 속 장면 장면들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가로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는 당시 사람들의 여유자적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시는 총 126명이 쓴 221수에 달한다.
이에 앞서 저자는 10여년 전 ‘국토산하를 노래한 한국 한시의 미학적 전통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그 논문이 나온 이후 저자 자신이 연구한 내용과 한문학계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엮은 결과물이다.
‘南過良才驛 平郊數里餘 … 赤黍圍村徑 黃花照路墟 (남과양재역 평교수리여 … 적서위촌경 황화조로허 : 남으로 양재역을 지나면/ 평평한 들판이 서너 리 … 붉은 기장은 시골길을 에워쌌고/ 국화 꽃은 길가 집을 비춘다)’
조선 전기 학자 성현이 지은 ‘과천별장에 놀며’라는 시다. 성현은 인천, 파주, 과천에 별장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숲인 강남 양재와 과천 일대는 500여년 전에는 기장과 국화가 많은 넓은 들판이었나 보다. 정부과천청사와 경마장은 이 ‘서너 리 평평한 들판’ 어디쯤에 들어섰을 것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과천 관사 뒤의 여우고개에서 어떤 노인이 길손에게 소의 머리를 씌워서는 소로 만들어 팔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가 된 길손은 남에게 팔려가 무를 먹고서야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여우고개는 ‘호령’이라고도 불렸던 남태령이다.
과천 현감은 ‘한양과 경기의 진산’인 관악산에서 가뭄이 들때마다 산신령에게 비를 구하는 의식을 치렀다.
조선 말기 의병장 유인석은 ‘관악산에 올라’라는 시를 통해 ‘… 俯仰乾坤知廣大 胡爲庸碌作羞顔 (부앙건곤지광대 호위용록작수안 : 천지를 부양하여 그 광대함을 알겠나니 어찌 용렬하게 부끄러운 얼굴을 지으랴’라고 했다. 관악산에 올라 광대한 지세를 바라보고 국난의 시기에 염치(廉恥)를 지켜 천지간에 떳떳한 장부라는 결심을 다진 시이다.
이처럼 ‘한시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전국 방방곡곡의 자연은 물론 그속에 숨어 있는 옛 이야기, 선조들의 모습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여름휴가지에 ‘한시기행’ 한권을 옆구리에 꽂고 올 여름휴가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심경호 지음
이가서 /2만5000원
우리민족은 오래전부터 풍류를 중시했다. 굳이 화랑도 얘기를 꺼내들지 않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길떠남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는 백면서생들도 비록 책 속에서라도 무릉도원을 여행하곤 했다.
선비들은 금수강산 곳곳에 펼쳐져 있는 심산유곡, 청풍명월을 찾아 그곳에서 시를 읊고 세상을 논했다. 비단 사대부 양반들만이 아니다. 술주정꾼, 비렁뱅이, 시골 노파라 할지라도 유람길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예술가 강세황은 금강산을 찾은 이같은 사람들 때문에 금강산 유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악한 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지 않은가. 물론 그도 결국 70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금강산을 찾았다지만.
선조들은 국토 산하 속에서 노닐면서 평소의 불평불만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감흥을 얻었으며 산하의 아름다움 자체를 형상화했다. 그리고 산천이 지닌 역사미(歷史美)를 재발견했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가 펴낸 ‘한시기행’은 전국 방방곡곡을 읊은 선조들의 노래를 엮은 책이다. 소가 되새김질로 양분을 흡수하듯, 한시 속에 들어있는 조선 팔도의 풍경을 찾아내 당시 여정을 반추한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실험적 로드무비’라고 했다. 종이 위의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연습하는 실습과목이라는 것이다.
역사나 인물의 전기를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역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 이것이 저자가 밝힌 이 책을 펴낸 목표다.
‘한시 기행’은 우리나라 한시 가운데 국토산하의 아름다움과 역사 및 당시 권력관계, 민족의 생활상을 노래한 한시를 소개하고 있다. 격랑에 휩싸인 당시 권력구조와 이를 바라보는 당시 선비의 모습, 역사교과서 속 장면 장면들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가로이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는 당시 사람들의 여유자적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시는 총 126명이 쓴 221수에 달한다.
이에 앞서 저자는 10여년 전 ‘국토산하를 노래한 한국 한시의 미학적 전통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낸 바 있다. 이 책은 그 논문이 나온 이후 저자 자신이 연구한 내용과 한문학계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엮은 결과물이다.
‘南過良才驛 平郊數里餘 … 赤黍圍村徑 黃花照路墟 (남과양재역 평교수리여 … 적서위촌경 황화조로허 : 남으로 양재역을 지나면/ 평평한 들판이 서너 리 … 붉은 기장은 시골길을 에워쌌고/ 국화 꽃은 길가 집을 비춘다)’
조선 전기 학자 성현이 지은 ‘과천별장에 놀며’라는 시다. 성현은 인천, 파주, 과천에 별장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숲인 강남 양재와 과천 일대는 500여년 전에는 기장과 국화가 많은 넓은 들판이었나 보다. 정부과천청사와 경마장은 이 ‘서너 리 평평한 들판’ 어디쯤에 들어섰을 것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과천 관사 뒤의 여우고개에서 어떤 노인이 길손에게 소의 머리를 씌워서는 소로 만들어 팔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가 된 길손은 남에게 팔려가 무를 먹고서야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여우고개는 ‘호령’이라고도 불렸던 남태령이다.
과천 현감은 ‘한양과 경기의 진산’인 관악산에서 가뭄이 들때마다 산신령에게 비를 구하는 의식을 치렀다.
조선 말기 의병장 유인석은 ‘관악산에 올라’라는 시를 통해 ‘… 俯仰乾坤知廣大 胡爲庸碌作羞顔 (부앙건곤지광대 호위용록작수안 : 천지를 부양하여 그 광대함을 알겠나니 어찌 용렬하게 부끄러운 얼굴을 지으랴’라고 했다. 관악산에 올라 광대한 지세를 바라보고 국난의 시기에 염치(廉恥)를 지켜 천지간에 떳떳한 장부라는 결심을 다진 시이다.
이처럼 ‘한시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전국 방방곡곡의 자연은 물론 그속에 숨어 있는 옛 이야기, 선조들의 모습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여름휴가지에 ‘한시기행’ 한권을 옆구리에 꽂고 올 여름휴가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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