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맞아 김철수 김 산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해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을 한 214명에게 건국훈장이나 대통령표창이 수여된다.
정부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으나, 해방 후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항일운동가를 발굴해 서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3·1절에도 여운형 선생을 비롯하여 권오설 조동호 구연흠 김재봉 등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54명을 서훈한바 있다.
한편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기념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민족 문학가 현진건(1900~1943) 선생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다.
◆후손 “통일관문 열리는 것 같아”=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항일운동가 6명에게 3등급에 해당하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독립장에 추서된 김철수(1893~1986) 선생은 1926년 하반기에 조선노동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김철수는 1930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살았으나 1940년 여름 서대문예방구금소에 구금됐다. 해방과 함께 출옥한 후 조선공산당 안에서 박헌영파와 대립해 무기정권됐다. 1946년 여운형 선생과 함께 사회노동당을 창당했다. 여운형이 암살되자 낙향했다.
그의 손자 김소중(70)씨는 “훈장 추서를 받으니 민족통일의 관문이 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공자 대우를 받으려고 연연해하지 말고 죽거든 조그만 비석에 이름 석 자만 파고 책을 쓰지도 마라는 조부님의 뜻을 받들어왔다”고 말했다.러시아 중국 등으로 오가며 항일투쟁을 했고, 1925년 조선공산당에 참여한 김태연(별명 김단야·1900~1938) 선생도 독립장을 받는다. 그는 1926년 중국으로 건너가 6·10만세운동을 기획 지원했다.
독립장에 추서된 김 한(1887~1938)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사법부장을 지냈으며,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 사건에 연루되어 6년형을 살았다. 1930년 소련으로 갔는데 그 후 그곳에서 사망했다. 김 한 선생의 따님인 김예정(89)씨는 “죽기 전에 평생 한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김 한은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의 외조부이다.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직,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정헌태(1902~1940) 선생과 조선혁명군 제1연대장을 역임한 최윤구(1903~1938) 선생, 3·1운동 학생대표와 임시정부 내무위원을 지냈고, 1929년 이후 사회주의 항일투쟁을 전개한 한위건(1896~1937)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북은 연안파, 남은 공산주의자 이유로 양쪽에서 인정못받은 김산 = 이번에 눈길을 끄는 사람은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인 김 산(본명 장지락·1905~1938) 선생이다. 그는 북한에서는 연안파라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양쪽에서 항일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다 4등급 애국훈장에 추서됐다.
한일합방 후 해외로 망명하여 러시아와 만주에 독립운동을 벌였고, 조공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정운해(1893~?),소작농운동을 벌였고,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강택진(1892~1926), 조공 당원으로 제주도에서 해녀시위를 조직한 신재홍(1900~?) 선생 등은 4등급 애국장에 추서됐다.
신명식 기자 msshin@naeil.com
정부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으나, 해방 후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항일운동가를 발굴해 서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3·1절에도 여운형 선생을 비롯하여 권오설 조동호 구연흠 김재봉 등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54명을 서훈한바 있다.
한편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기념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민족 문학가 현진건(1900~1943) 선생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다.
◆후손 “통일관문 열리는 것 같아”=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항일운동가 6명에게 3등급에 해당하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독립장에 추서된 김철수(1893~1986) 선생은 1926년 하반기에 조선노동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김철수는 1930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살았으나 1940년 여름 서대문예방구금소에 구금됐다. 해방과 함께 출옥한 후 조선공산당 안에서 박헌영파와 대립해 무기정권됐다. 1946년 여운형 선생과 함께 사회노동당을 창당했다. 여운형이 암살되자 낙향했다.
그의 손자 김소중(70)씨는 “훈장 추서를 받으니 민족통일의 관문이 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공자 대우를 받으려고 연연해하지 말고 죽거든 조그만 비석에 이름 석 자만 파고 책을 쓰지도 마라는 조부님의 뜻을 받들어왔다”고 말했다.러시아 중국 등으로 오가며 항일투쟁을 했고, 1925년 조선공산당에 참여한 김태연(별명 김단야·1900~1938) 선생도 독립장을 받는다. 그는 1926년 중국으로 건너가 6·10만세운동을 기획 지원했다.
독립장에 추서된 김 한(1887~1938)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사법부장을 지냈으며,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 사건에 연루되어 6년형을 살았다. 1930년 소련으로 갔는데 그 후 그곳에서 사망했다. 김 한 선생의 따님인 김예정(89)씨는 “죽기 전에 평생 한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김 한은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의 외조부이다.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직,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정헌태(1902~1940) 선생과 조선혁명군 제1연대장을 역임한 최윤구(1903~1938) 선생, 3·1운동 학생대표와 임시정부 내무위원을 지냈고, 1929년 이후 사회주의 항일투쟁을 전개한 한위건(1896~1937)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북은 연안파, 남은 공산주의자 이유로 양쪽에서 인정못받은 김산 = 이번에 눈길을 끄는 사람은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인 김 산(본명 장지락·1905~1938) 선생이다. 그는 북한에서는 연안파라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양쪽에서 항일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다 4등급 애국훈장에 추서됐다.
한일합방 후 해외로 망명하여 러시아와 만주에 독립운동을 벌였고, 조공 중앙집행위원을 지낸 정운해(1893~?),소작농운동을 벌였고,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강택진(1892~1926), 조공 당원으로 제주도에서 해녀시위를 조직한 신재홍(1900~?) 선생 등은 4등급 애국장에 추서됐다.
신명식 기자 mssh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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