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김대중 정부가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제 2 건국위원회’가 암초에 걸린 채 갈
팡질팡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이 단체가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식개혁 등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현 정권
의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스러지고 있다.
순수 민간단체 위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는 정부측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사
시(斜視)적 관점에서 제 2 건국위를 재단하는 인사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4·13 총선 직전 여·야가 벌인 선거법 개정 협상에서 ‘선거 기간(28일) 동
안 제 2 건국위가 일체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정부의 입장과 반대쪽에 있
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반증해 주는 대목이다.
관 협력 단체, 순수민간단체 그 어느 쪽으로도 정확한 인식심기에 실패한 제 2 건국위는
위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단체의 정체성 위기까지 낳고 있다.
조레 제정조차 못한 대구시
지난해 초 제 2 건국위 출범당시 시의회의 강력한 반대로 관련 조례 제정에 실패해 대구시
규약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회는 한마디로 정부 또는 관 주도로 이뤄지는 또 하나의 관변
단체로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시 규약에 근거한 임의단체로 전락한 대구시 제 2 건국위는 올 해 한 푼의 예산도
배정 받지 못했다.
관계자들은 그러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체 평가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대구시 제 2 건국위는 169개 사업을 발굴해 각 기관별 네트워크를 형성,
목표한 성과를 이룬다는 전략을 세웠다.
‘담장 허물기’와 체신청과 연계한 ‘효 편지 보내기’등이 지금까지 드러난 가시적 성과
라고 언급하고 있다.
제기되는 역할론
이러한 자체평가에도 불구 많은 시민들은 이 단체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2월에 만들어진 대구시 제 2 건국위는 한해동안 창립총회 등 2차례 모임을 가진 것
이 전부다. 올 들어서는 아직까지 단 한차례의 모임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 이유를‘총선’때문으로 돌리지만 선거법상 선거기간에만 활동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위원들의 상당수가 기관단체장이라는 특성은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 갈 ‘수장 찾
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위원들을 무관심으로 이끄는 것이다.
모든 사업을 위원이나 이들이 속한 단체가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위원들의 활동 의
지를 꺾는 또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 2건국위의 한 위원은 “그렇치 않아도 어려운 기업이나 단체 살림살이를 꾸리기도 힘든
판에 선 듯 경제적 부담까지 안을 위원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한다.
이와 함께 추진 과제 가운데 기존의 관변 단체들이 이미 하고 있는 사업들과 중복되는 것들
이 많은 것도 대구시 제 2 건국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초단체도 헛 바퀴만…
지역 8개 구·군청이 만든 기초자치단체급 제 2 건국위 역시 헛 바퀴 돌기는 마찬가지다.
대구시와는 달리 이들 기초자치단체들은 관련 조례의 제정을 이끌어 냈고 예산도 배정 받았
다.(관련 표 1) 또 간사와 서기 업무를 기초단체 국장과 과장이 맡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순수민간 단체로 규정하기 조차 어렵다.
문제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것. 답은 물론 아니다.
북구를 제외하고는 ‘유명무실’ 그 자체다.
‘북구 제 2 건국위’가 지난해 5번, 올해 2번(1, 6월) 등 창립 이후 모두 7차례 전체 위원
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는 달리 나머지 7개 구·군청 단위 제 2 건국위는 올해 단 한차례의 위원회도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서구의 경우 6월27일 총회 개최)
이들은 그 이유를 총선때문으로 돌리고 있다.
당연히 동·읍·면 단위로 까지 제 2 건국위의 취지가 전파되지 못하고 있다.
실무자들만 채근하는 상급기관과 뜻을 따르지 않는 위원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잘 않된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시 산하 기관의 모 공무원은 “잘 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말로
‘대구시와 8개 기초단체 ‘제 2 건국위’의 위상과 역할을 대변한다.
대구시는 이같은 회의적 시각과는 달리 여전히 나름의 의지를 내 보이고 있다.
대구시의 한 관계자는 “관 주도와는 달리 민간 활동은 파급력이 떨어져 상당한 시간이 걸
린다”며 “불과 1년 남짓한 세월만으로 제 2 건국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
혔다.
그 관계자는 “(출범) 초창기에는 가시적인 성과 보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
다”며 “각 기관단체가 과제를 맡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 정착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
다.
그러나 시의 의지가 관철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절대적이다.
한 관계자는 “제 2 건국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 다음 정권에서도 이 단체가 살
아 남을 수 있다고 보는 이는 별로 없다”고 입을 뗀 뒤 “지금이라도 뭔가를 이뤄 놓지 않
으면 제 2 건국위는 DJ정권에만 한시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곤경에 빠진 정부
정부는 제 2 건국위가 대구 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착근에 실패하자 당혹해 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새마을 운동’을 능가하는 시민의식 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당
초 목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 제 2 건국위 중앙본부 관계자는 “출범 당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단체의 실상과 성격(순수 민간 단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정적
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하지만 “각계 지도급 인사로 구성된 제 2 건국위의 위상과 (추진하고 있는)
일이 어울리느냐”며 우회적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행정자치부 산하 제 2 건국위 본부는 관변 단체로 규정, 선거기간동안 제 2 건국위의 활동
을 금하도록 한 야당의 발목 잡기 전략에 대해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불만을 가지고 있다.
3월 혹은 4월이 당해 연도 신규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할 시점인데도 16대 총선기
간과 중복되고 선거에 개입할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 기간 동안의 활동을 금지시킨 것
은 2차 연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해야 할 제 2 건국위를 주저 앉게 만든 주범이라는
것.
“차라리 관 주도의 ‘제 2 새마을 운동’으로 가자”
일선 기초단체 관련 공무원들은 운용방식의 대전환을 주문한다.
“관 주도로 하지 마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대구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관 주도임을 인
정해야 한다고 것이다.
따라서 국고 지원 등을 통한 ‘참여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의지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 구청 관계자는 새마을 운동과는 다른 순수 민간 차원에서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선에서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며 “전국의 당담 공무원들이 세미나 등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수 차례 건의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갓 돌을 지난 ‘제 2 건국위’는 어디로 가야 할까. 쉽지 않은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
다.
●유선태 기자 you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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