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의 휴가였다. “어디를 갈까?”머릿속에 이런 저런 계획들이 쉴 새 없이 스쳐갔지만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는 아내의 한 마디에 싱겁게(?) 행선지가 정해졌다. 아침 일찍 찾은 할인점은 사람들로 붐비던 평소와는 다른 여유로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즐길 새도 없이 금세 밀려드는 아이들로 인해 매장안이 시끌벅적하게 변해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영 생뚱맞았다. 모두들 미리 준비한 구매목록을 보면서 직접 상품을 고르고 계산을 하더니 영수증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할인점 주변에 있는 유치원생들이 금융교육을 위해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이렇듯 금융교육은‘생활교육’이다. 그래서 금융교육은 생활주변에서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는 수많은 일상의 활동들을 금융교육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체험을 통해 배운다.”미국 부모들을 위한 금융교육 가이드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주변에는 금융교육을 위한 생생한 체험학습 현장이 널려있다.
특히 생활속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은 아이에게 ‘예산’의 개념을 심어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여행’이 바로 그렇다. 가족여행도 유치원이나 학교의 수학여행도 좋다. 어떤 여행이건 아이가 낯선 풍물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경험 뿐 아니라 예산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살 때 아이들에게 ‘계획적 소비’에 대해 가르치는 것처럼,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교통비며 입장료, 식사나 간식비 등 여행에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지 아이 스스로 예산을 세워보게 하는 것이다. 본래 예산의 목적은 ‘경제성’에 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멋진 여행의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예산을 짜고 또 그에 맞추어 돈을 써야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예산을 적절하게 세웠는지를 평가하는 것도 빼놓아선 안될 일이다. 돈이 남았다면 예산이 필요 이상으로 책정되지 않았는지, 반대로 예산이 부족했다면 계산착오가 있었는지 아니면 낭비요인이 없었는지 등을 아이와 함께 꼼꼼히 따져보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예산의 필요성과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또 아이가 예산을 체험할 수 있는 연례 이벤트가 있다. 바로 아이의 ‘생일잔치’다. 그것도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의 개성없는 ‘파티’보다는 엄마의 정성이 깃든 집에서의 생일잔치가 제격이다. 생일잔치의 예산을 짜기위해 먼저 해야할 것은 쓸 수 있는 돈의 한계를 정해주는 일이다. 다음은 아이와 상의해서 과자와 음료 등의 ‘간식비’, 생일 케익이며 초와 같은 ‘소품비’등 필요한 비용항목을 정해야 한다.
이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해보자. 우선 봉투를 한장 준비해서 생일잔치에 쓸 돈을 모두 넣어둔다. 그리고 항목이 정해질 때마다 봉투속에서 필요한 돈을 꺼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도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뻔히 알기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지출해야 할 것이 저절로 정해지게 된다.
또 아이와 함께하는 ‘장보기’도 예산을 가르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이벤트이다.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 등 모든 시장은 아이들에게 별천지 같은 곳이다. 아이들 눈으로 보면 신기하고 흥미로운 물건이 유혹하는 매력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예산의 중요성을 실감시켜 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항상 시장을 찾기 전에 아이와 함께‘쇼핑목록’을 적어보자. 이렇게 목록을 적어가면 필요없는 물건을 사지않고 꼭 필요한 물건을 잊어버리지 않을뿐아니라 예산에 맞추어 돈을 쓰는 훈련도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는 충동구매를 하지 않게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또 아이의 기획력도 키워주고 아이와의 대화시간까지 늘어나는 ‘덤’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생활속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예산을 체험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은 아이를 똑똑한 소비자로 키우는 첫걸음이다. 물론 정해진 범위내에서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가 무엇을 하건 어디를 가건간에 항상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이 그에 맞는 예산을 짜고 또 그것을 지키는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금융교육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부모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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