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을 자초합니까. 자업자득입니다.”
2004년 3월 12일,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의결의 의사봉을 두드리기 전에 박관용 전국회의장이 정확히 두 번 외쳤던 이 말은 그 해 ‘말말말’에 선정됐다. 탄핵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박 전의장에게도 항상 붙는 수식어가 됐다. 탄핵을 의결시킨 국회의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 그는 2002년 7월 9일부터 2004년까지 의장직을 수행하고 약속했던 대로 정계은퇴했다.
이제 탄핵으로부터 1년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마침 박 전의장은 탄핵 1년에 맞춰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탄핵은 2004년 총선을 통해 심판받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탄핵 주역들이 ‘탄핵 쓰나미’에 밀려 정치권 뒷편으로 물러났다. 그 중심에 있었던 박 전의장을 만나봤다.
“탄핵은 상당히 계획된 것”
지난달 27일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전의장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간단한 근황을 시작으로 얘기를 풀어나갔다.
박 전의장은 자신의 모교인 동아대학교의 석좌교수인 동시에 11년전에 자신이 세웠던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의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전 국회의장이었던데다 청와대도 경험한 터라 그의 경험을 들으려는 강의 일정 때문에 바쁘게 생활중이다. 주로 남북문제나 국제외교관계, 그리고 정치경험담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탄핵부터 물었다. 박 의장은 탄핵을 회고한 저서에서 노대통령과 여권이 탄핵을 정국반전의 계기로 삼을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까.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오해가 있으면 해명도 하고, 그걸 막기 위해서 다행히 노력을 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대통령이 만나는 걸 거부해요. 해석할 길이 없었죠. 그 때 여당의 고위직 지도부 중 한 명이 사석에서 만약에 자기네들을 물리적으로 끌어내면 유리해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사람에게 전해들은 바가 있습니다. 등등으로 봐서 상당히 계획된 방향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그랬어도 박 전의장은 사실 탄핵 전날 밤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경호권을 발동하더라도 탄핵을 의결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건 전 국무총리들과의 만남을 갖고 나서였다.
“탄핵이 국회 상정되고 나면 고민은 의장에게 오게 돼 있습니다. 여당 쪽에서는 의장이 사회봉을 안 잡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몰아붙이고. 그러니까 내가 결정을 해야 되는데 솔직한 얘기로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못하겠습디다. 내가 의장을 끝으로 정치를 그만두기로 작심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엄청난 순간을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 지도 모르겠고. 탄핵 전날 전직 국무총리들을 모셨는데 아무도 해답을 안 줬지만 대다수가 나라 걱정을 정말 너무 하고 계셨습니다. 국회에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결심을 못했지만 의장은 전체 의원들의 의사를 투표를 하든 어떤 방법이든 반영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단상 점거한다는 이유로 사회봉 잡기를 거부한다면 이건 직무유기다. 볼썽사납다 해서 기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만약에 조금 골치아픈 걸 피해서 빠져나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원망을듣고 직무를 다하지 못한 의장으로 얼마나 원망을 받았을까. 지금도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3년차 자신감이 레임덕 불러
박 전의장은 탄핵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고 했지만 탄핵주역들이 역풍을 맞았듯이 박 전의장도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동아대 석좌교수 임명시에도 학생들의 반발이 있을 정도로 젊은 층에서는 아직 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충고를 풀어놓았다.
그는 최근의 노 대통령이 레임덕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 대해 입을 뗐다.
“레임덕이라는 건 임기 마치기 1년전 쯤에는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그러면 2년전에도 일어날 수 있는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레임덕이라고 볼 수 있죠. 금년 초에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신청해서 대통령 임기 3년차가 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대통령이 3년차가 되면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한테 보답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이상한 욕심이 생겨요. 요즘에 희안한 인사가 많은데 처음엔 적재적소의 사람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동안 도와줬던 사람들이 불평을 막 한단 말이야. 나중에 원망 들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챙겨주기 시작하는 거죠."
그의 오랜 정치경험으로 봤을 때 보통 대통령들의 일반적인 인사 패턴은 이렇다. 처음엔 최고의 인물을 막 고른다. 고르다 보면 우리나라에는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들이 다 이용을 당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인물난에 시달린다는 것. 그러다 보면 대학교수들을 많이 임용하는데 참신하다는 것 의욕 하나로 일을 망치기 십상이고, 그 다음에는 경험있는 사람들을 쓴다고 해도 잘 안되고, 그 다음엔 과거 참모들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바로 이 전형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전의장은 그렇다고 레임덕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하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지금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큰 걸 끄내기 시작하면 뒤죽박죽이 된다”면서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그런 자세로 국정을 봐야지 다음 정권 재창출해야겠다 인기 만회해야겠다 하면 큰일날 것”이라고 말했다.
YS는 국민여론에 민감, 노 대통령은 특수계층에만 민감
박 전의장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재미있게도 박 전의장이 그렇게도 비판적인 노 대통령은 김 전대통령과 스타일 면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말하는 김 전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차이점은 어디 여론에 민감하냐이다.
“YS는 사실 그 정책에 대한 고려보다 국민들 지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굉장히 중요시했죠. 파도소리를 맨날 듣는 사람은 서울에 와서 호텔에서 자라고 하면 잘 못자는 것처럼 대중 속에서 자란 정치인은 인기없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면에서는 YS보다 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게 특수 계층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 지지 계층을 향해서 계속 말하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내가 젊을 때 어떤 대통령이 미국에게 얼굴 붉히겠다고 하는 사람 있었으면 나는 좋아서 미쳤을 겁니다. 내가 그 때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런 주장을 많이 했던 사람이니까. 근데 그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할 말이냐는 건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2004년 3월 12일,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의결의 의사봉을 두드리기 전에 박관용 전국회의장이 정확히 두 번 외쳤던 이 말은 그 해 ‘말말말’에 선정됐다. 탄핵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박 전의장에게도 항상 붙는 수식어가 됐다. 탄핵을 의결시킨 국회의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 그는 2002년 7월 9일부터 2004년까지 의장직을 수행하고 약속했던 대로 정계은퇴했다.
이제 탄핵으로부터 1년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마침 박 전의장은 탄핵 1년에 맞춰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탄핵은 2004년 총선을 통해 심판받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탄핵 주역들이 ‘탄핵 쓰나미’에 밀려 정치권 뒷편으로 물러났다. 그 중심에 있었던 박 전의장을 만나봤다.
“탄핵은 상당히 계획된 것”
지난달 27일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전의장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간단한 근황을 시작으로 얘기를 풀어나갔다.
박 전의장은 자신의 모교인 동아대학교의 석좌교수인 동시에 11년전에 자신이 세웠던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의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전 국회의장이었던데다 청와대도 경험한 터라 그의 경험을 들으려는 강의 일정 때문에 바쁘게 생활중이다. 주로 남북문제나 국제외교관계, 그리고 정치경험담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탄핵부터 물었다. 박 의장은 탄핵을 회고한 저서에서 노대통령과 여권이 탄핵을 정국반전의 계기로 삼을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까.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오해가 있으면 해명도 하고, 그걸 막기 위해서 다행히 노력을 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대통령이 만나는 걸 거부해요. 해석할 길이 없었죠. 그 때 여당의 고위직 지도부 중 한 명이 사석에서 만약에 자기네들을 물리적으로 끌어내면 유리해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사람에게 전해들은 바가 있습니다. 등등으로 봐서 상당히 계획된 방향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그랬어도 박 전의장은 사실 탄핵 전날 밤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경호권을 발동하더라도 탄핵을 의결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건 전 국무총리들과의 만남을 갖고 나서였다.
“탄핵이 국회 상정되고 나면 고민은 의장에게 오게 돼 있습니다. 여당 쪽에서는 의장이 사회봉을 안 잡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몰아붙이고. 그러니까 내가 결정을 해야 되는데 솔직한 얘기로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못하겠습디다. 내가 의장을 끝으로 정치를 그만두기로 작심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엄청난 순간을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 지도 모르겠고. 탄핵 전날 전직 국무총리들을 모셨는데 아무도 해답을 안 줬지만 대다수가 나라 걱정을 정말 너무 하고 계셨습니다. 국회에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결심을 못했지만 의장은 전체 의원들의 의사를 투표를 하든 어떤 방법이든 반영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단상 점거한다는 이유로 사회봉 잡기를 거부한다면 이건 직무유기다. 볼썽사납다 해서 기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만약에 조금 골치아픈 걸 피해서 빠져나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원망을듣고 직무를 다하지 못한 의장으로 얼마나 원망을 받았을까. 지금도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3년차 자신감이 레임덕 불러
박 전의장은 탄핵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고 했지만 탄핵주역들이 역풍을 맞았듯이 박 전의장도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동아대 석좌교수 임명시에도 학생들의 반발이 있을 정도로 젊은 층에서는 아직 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충고를 풀어놓았다.
그는 최근의 노 대통령이 레임덕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 대해 입을 뗐다.
“레임덕이라는 건 임기 마치기 1년전 쯤에는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그러면 2년전에도 일어날 수 있는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레임덕이라고 볼 수 있죠. 금년 초에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신청해서 대통령 임기 3년차가 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대통령이 3년차가 되면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한테 보답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이상한 욕심이 생겨요. 요즘에 희안한 인사가 많은데 처음엔 적재적소의 사람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동안 도와줬던 사람들이 불평을 막 한단 말이야. 나중에 원망 들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챙겨주기 시작하는 거죠."
그의 오랜 정치경험으로 봤을 때 보통 대통령들의 일반적인 인사 패턴은 이렇다. 처음엔 최고의 인물을 막 고른다. 고르다 보면 우리나라에는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들이 다 이용을 당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인물난에 시달린다는 것. 그러다 보면 대학교수들을 많이 임용하는데 참신하다는 것 의욕 하나로 일을 망치기 십상이고, 그 다음에는 경험있는 사람들을 쓴다고 해도 잘 안되고, 그 다음엔 과거 참모들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바로 이 전형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전의장은 그렇다고 레임덕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하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지금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큰 걸 끄내기 시작하면 뒤죽박죽이 된다”면서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그런 자세로 국정을 봐야지 다음 정권 재창출해야겠다 인기 만회해야겠다 하면 큰일날 것”이라고 말했다.
YS는 국민여론에 민감, 노 대통령은 특수계층에만 민감
박 전의장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재미있게도 박 전의장이 그렇게도 비판적인 노 대통령은 김 전대통령과 스타일 면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말하는 김 전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차이점은 어디 여론에 민감하냐이다.
“YS는 사실 그 정책에 대한 고려보다 국민들 지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굉장히 중요시했죠. 파도소리를 맨날 듣는 사람은 서울에 와서 호텔에서 자라고 하면 잘 못자는 것처럼 대중 속에서 자란 정치인은 인기없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면에서는 YS보다 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게 특수 계층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 지지 계층을 향해서 계속 말하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내가 젊을 때 어떤 대통령이 미국에게 얼굴 붉히겠다고 하는 사람 있었으면 나는 좋아서 미쳤을 겁니다. 내가 그 때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런 주장을 많이 했던 사람이니까. 근데 그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할 말이냐는 건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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