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강국 코리아!
산업기술 인력이 희망이다
60~70년대 과학기술인 우대 정책과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는 80~90년대의 고도성장을 낳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지금도 자기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산업기술인력들을 만나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리즈는 매주 목요일 7회에 걸쳐 진행된다. <편집자주>
76년 겨울.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다. 국가 과학산업 진흥을 위해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시절의 재외한국인과학자 초빙. 사실 세계의 중심에 서있던 그에게 귀국 결심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국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신물질창출 국책연구사업단장·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며 세계최초로 퀴놀론계 신규 항생제 및 에이즈 치료제(AZT) 를 개발하는 등 국내 신약부문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지금은 바이오벤처기업인 (주)씨트리를 창업, 면역분야 연구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유학, 인생의 반전
“약학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엔크로이츠캄프 교수가 72년 유학의 첫발을 내디딘 김완주 회장(64)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우물쭈물하던 그에게 엔크로이츠캄프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약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며 “의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약이 없으면 병을 못 고친다. 이를 위해서는 신약개발이 최선이자 필수다”
국내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면서도 별다른 신념을 가지지 못한 김 회장은 이 한마디가 전광석화 같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정치인 꿈꾸다 약학생 되다
김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전국웅변대회 대상을 휩쓸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꿈 많던 전주고 재학시절, 그래서 김 회장은 정치외교학과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그 꿈을 접고, 이공계에서 다른 진로를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성균관대 약학과. 고교시절 내내 문과였던 김 회장으로선 입학시험에서 수학1만 치르면 된다는 것이 사뭇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그의 이공계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 회장은 “적성이라는 게 별게 아니다. 어떻게 키우느냐가 문제지, 타고 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창 시절에는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기나긴 인생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조그만 부문”이라며 “오히려 그때 실패를 경험하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내 인생에 큰 교훈이자, 행운 이었다”고 말했다.
물질특허 위기가 가져온 일
전두환 정부 들어 우리나라가 무역흑자를 많이 내자,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셌다. 그때 나왔던 게 ‘슈퍼 301조’. 즉 어느 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전 제품에 무차별적 특별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슈퍼301조 발동의 핵심이 물질특허 도입이었다.
“물질특허란 개발자에게 20년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전화를 개발했다고 개발자에게 전화라는 독점권을 주지 않지만 바이오, 특히 신약분야는 다르다. 배타적 독점권이 있는 만큼 시장과 수익성이 대단히 크다”고 설명했다.
채영복 전 과기처 장관의 권유로 성균관대학교 약대교수 재직 중 화학연구소로 이적, 정부가 주도하는 신물질창출 국책연구사업단(G7프로젝트의 전신) 단장을 맡아 88년 슈퍼 항생제로 불리는 ‘퀴놀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스미스클라인 비참(현 GSK)’사와 특허실시권 양도계약으로 2100만달러의 기술료계약과 경상실시료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한국화학연구소는 미국 머크사와 일본 쭈가이 등과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연구비 지원 제안을 받게 되고, 실제로 쭈가이는 이듬해부터 매년 5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기에 이른다.
연구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
김 회장은 신약개발 외에도 국내기업들을 위한 제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88년 삼천리제약 유성현 회장의 요청으로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에이즈치료제 AZT를 개발, 기술이전에 성공한 것은 하나의 신화로 평가된다.
삼천리제약은 이 제품 하나만으로 IMF 한파로 국내 모든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있던 때 7000만달러의 매출과 25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또 95년 한미약품의 R&D담당 부사장과 한미약품 자회사인 한미정밀화학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세계 2번째로 탁솔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했다. 한미정밀화학은 95년 70억원이던 매출이 3년만인 98년 360억원을 기록,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그는 제3 세대 세파로스포린계 전문기업 한미정밀화학의 설립과 바이러스 전문기업 삼천리 제약의 설립, 그리고 신약개발 분야에서 모델을 제시했던 퀴놀론계 특허실시권 양도계약을 생애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은 발달했지만, 세계수준의 신약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글로벌 마케팅 할 회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측면에서 김 회장이 일궈놓은 라이센싱 방안은 현재로서도 유효한 전략이다. 우리가 연구개발한 제품을 외국기업에 제공하고, 대신 우리는 개발비·로열티를 챙긴다. 이를 다시 새로운 제품개발에 투자하면 된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商)과 공(工)이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면 국가미래는 없다”고 우려했다.
잘 나갈 때 투자해라
김 회장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선진국형 벤처기업의 기술성과 장단기적인 연구개발 아이템을 조화시킨 (주)씨트리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6년 만에 특허 45건과 신 제조기술 10건을 확보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연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제품의 시장이 창출되려면 기초연구, 연구개발 시기부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계속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 바이오벤처로서는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투자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벤처가 망하거나, 아니면 다른 수익사업을 찾아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적인 것은 수익사업은 유지하되, 꾸준한 연구개발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연구개발을 하는 방안이다.
이런 측면에서 씨트리는 지난 99년 국내 생산 철수를 결정한 독일 바이엘약품의 생산설비부문을 인수, 수익사업에 진출하면서 연구개발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있다. 현재도 매출의 2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최근 김 회장은 면역분야 연구개발에 온 관심이 집중돼 있다. 면역기능을 이해하면 인간의 모든 질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례로 에이즈의 핵심도 면역기능 파괴에 있다. 에이즈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면역기능을 파괴시켜 다른 질병이 쉽게 침투, 그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
다만 인간의 몸은 워낙 복잡해 면역시스템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것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관건이다.
김 회장은 “모든 기업이 황금 알을 낳지는 못한다”고 전제한 후 “뛰어난 연구력·기술력·창의력을 토대로 글로벌 마케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한국경제의 차세대 성장엔진 중 하나는 신약개발”이라고 확신했다.
학교교육이 이공계 위기 부추겨
그는 인력의 역류현상을 우리 산업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벤처기업에서 기껏 재교육시켜 실력을 갖춰놓으면 대기업으로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더 대우 좋은 곳으로 옮기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고.
이런 원인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산업현장에서 바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암기식 위주 공부에 익숙하다보니, 연구직이나 산업현장에서 종사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반화됐다. 변호사, 의사 아니면 사무직만 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이공계 붕괴위기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것이 안 바뀌면 국가경쟁력도 갈수록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신입사원들을 재교육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때문에 실용화된 교육만큼은 국가가 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산업 각 분야에 전문가가 태부족하다는 것.
김 회장은 “요즘 삼성전자, LG전자가 잘 나가다보니, 일본의 소니를 우습게 알지만, 결코 그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소니가 마케팅방법에서 실패해 주춤거리고 있지만 해당분야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산업기술인력의 체계적인 육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사진 이의종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편집자주>
산업기술 인력이 희망이다
60~70년대 과학기술인 우대 정책과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는 80~90년대의 고도성장을 낳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지금도 자기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산업기술인력들을 만나 우리나라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리즈는 매주 목요일 7회에 걸쳐 진행된다. <편집자주>
76년 겨울.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다. 국가 과학산업 진흥을 위해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시절의 재외한국인과학자 초빙. 사실 세계의 중심에 서있던 그에게 귀국 결심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국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신물질창출 국책연구사업단장·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며 세계최초로 퀴놀론계 신규 항생제 및 에이즈 치료제(AZT) 를 개발하는 등 국내 신약부문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지금은 바이오벤처기업인 (주)씨트리를 창업, 면역분야 연구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유학, 인생의 반전
“약학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엔크로이츠캄프 교수가 72년 유학의 첫발을 내디딘 김완주 회장(64)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우물쭈물하던 그에게 엔크로이츠캄프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약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며 “의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약이 없으면 병을 못 고친다. 이를 위해서는 신약개발이 최선이자 필수다”
국내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면서도 별다른 신념을 가지지 못한 김 회장은 이 한마디가 전광석화 같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정치인 꿈꾸다 약학생 되다
김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전국웅변대회 대상을 휩쓸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꿈 많던 전주고 재학시절, 그래서 김 회장은 정치외교학과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그 꿈을 접고, 이공계에서 다른 진로를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성균관대 약학과. 고교시절 내내 문과였던 김 회장으로선 입학시험에서 수학1만 치르면 된다는 것이 사뭇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그의 이공계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 회장은 “적성이라는 게 별게 아니다. 어떻게 키우느냐가 문제지, 타고 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창 시절에는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기나긴 인생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조그만 부문”이라며 “오히려 그때 실패를 경험하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내 인생에 큰 교훈이자, 행운 이었다”고 말했다.
물질특허 위기가 가져온 일
전두환 정부 들어 우리나라가 무역흑자를 많이 내자,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셌다. 그때 나왔던 게 ‘슈퍼 301조’. 즉 어느 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전 제품에 무차별적 특별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슈퍼301조 발동의 핵심이 물질특허 도입이었다.
“물질특허란 개발자에게 20년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전화를 개발했다고 개발자에게 전화라는 독점권을 주지 않지만 바이오, 특히 신약분야는 다르다. 배타적 독점권이 있는 만큼 시장과 수익성이 대단히 크다”고 설명했다.
채영복 전 과기처 장관의 권유로 성균관대학교 약대교수 재직 중 화학연구소로 이적, 정부가 주도하는 신물질창출 국책연구사업단(G7프로젝트의 전신) 단장을 맡아 88년 슈퍼 항생제로 불리는 ‘퀴놀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스미스클라인 비참(현 GSK)’사와 특허실시권 양도계약으로 2100만달러의 기술료계약과 경상실시료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한국화학연구소는 미국 머크사와 일본 쭈가이 등과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연구비 지원 제안을 받게 되고, 실제로 쭈가이는 이듬해부터 매년 5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기에 이른다.
연구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
김 회장은 신약개발 외에도 국내기업들을 위한 제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88년 삼천리제약 유성현 회장의 요청으로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에이즈치료제 AZT를 개발, 기술이전에 성공한 것은 하나의 신화로 평가된다.
삼천리제약은 이 제품 하나만으로 IMF 한파로 국내 모든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있던 때 7000만달러의 매출과 25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또 95년 한미약품의 R&D담당 부사장과 한미약품 자회사인 한미정밀화학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세계 2번째로 탁솔의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했다. 한미정밀화학은 95년 70억원이던 매출이 3년만인 98년 360억원을 기록,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그는 제3 세대 세파로스포린계 전문기업 한미정밀화학의 설립과 바이러스 전문기업 삼천리 제약의 설립, 그리고 신약개발 분야에서 모델을 제시했던 퀴놀론계 특허실시권 양도계약을 생애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은 발달했지만, 세계수준의 신약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글로벌 마케팅 할 회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측면에서 김 회장이 일궈놓은 라이센싱 방안은 현재로서도 유효한 전략이다. 우리가 연구개발한 제품을 외국기업에 제공하고, 대신 우리는 개발비·로열티를 챙긴다. 이를 다시 새로운 제품개발에 투자하면 된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商)과 공(工)이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면 국가미래는 없다”고 우려했다.
잘 나갈 때 투자해라
김 회장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선진국형 벤처기업의 기술성과 장단기적인 연구개발 아이템을 조화시킨 (주)씨트리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6년 만에 특허 45건과 신 제조기술 10건을 확보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연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제품의 시장이 창출되려면 기초연구, 연구개발 시기부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계속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 바이오벤처로서는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투자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벤처가 망하거나, 아니면 다른 수익사업을 찾아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적인 것은 수익사업은 유지하되, 꾸준한 연구개발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연구개발을 하는 방안이다.
이런 측면에서 씨트리는 지난 99년 국내 생산 철수를 결정한 독일 바이엘약품의 생산설비부문을 인수, 수익사업에 진출하면서 연구개발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있다. 현재도 매출의 2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최근 김 회장은 면역분야 연구개발에 온 관심이 집중돼 있다. 면역기능을 이해하면 인간의 모든 질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례로 에이즈의 핵심도 면역기능 파괴에 있다. 에이즈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면역기능을 파괴시켜 다른 질병이 쉽게 침투, 그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
다만 인간의 몸은 워낙 복잡해 면역시스템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것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관건이다.
김 회장은 “모든 기업이 황금 알을 낳지는 못한다”고 전제한 후 “뛰어난 연구력·기술력·창의력을 토대로 글로벌 마케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한국경제의 차세대 성장엔진 중 하나는 신약개발”이라고 확신했다.
학교교육이 이공계 위기 부추겨
그는 인력의 역류현상을 우리 산업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벤처기업에서 기껏 재교육시켜 실력을 갖춰놓으면 대기업으로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더 대우 좋은 곳으로 옮기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고.
이런 원인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산업현장에서 바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암기식 위주 공부에 익숙하다보니, 연구직이나 산업현장에서 종사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반화됐다. 변호사, 의사 아니면 사무직만 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이공계 붕괴위기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것이 안 바뀌면 국가경쟁력도 갈수록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신입사원들을 재교육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때문에 실용화된 교육만큼은 국가가 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산업 각 분야에 전문가가 태부족하다는 것.
김 회장은 “요즘 삼성전자, LG전자가 잘 나가다보니, 일본의 소니를 우습게 알지만, 결코 그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소니가 마케팅방법에서 실패해 주춤거리고 있지만 해당분야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산업기술인력의 체계적인 육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사진 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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