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2일 시정연설에서 제의한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는 그가 취임 후 꾸준히 추진해 온 ‘대통합’ 정책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시정연설에서 제안한 연석회의는 경제계·노동계·시민단체·종교계·농민·전문가와 정당 등으로 구성하여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주요한 사회문제와 갈등에 대한 대타협”을 추진하는 기구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의제로 ‘양극화 해소, 노사문제, 국민연금’ 등을 들었다.
노 대통령의 대통합 정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합 정책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7월 당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안한 네덜란드 식 노사모델이었다. 이 실장은 자신의 제안이 재계,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산업자원부의 반대에 부딪치자 “어느 정도까지 궁지에 몰려야 네덜란드 사람이나 스웨덴, 아일랜드 사람이 발휘하는 지혜를 우리도 발휘하게 되겠느냐”면서 설득 노력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도 노 대통령의 대통합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이것 역시 최근 박근혜 대표와의 청와대 회담을 고비로 무위로 끝났다.
시동 걸린 대통합 연석회의
노무현 정부 들어 특히 강조되는 시대적 화두인 ‘양극화’, ‘갈등’, ‘대통합’ 등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단어이다. 우리 사회는 고소득과 저소득,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여러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사회적 약자의 박탈감을 자극함으로써 산업·계층· 직종·지역·노사·노정·세대간의 갈등을 더욱 일상화시키고, 악화시킨다. 양극화와 갈등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되는 것이 ‘대통합’이다. 따라서 사회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면 할수록 통합을 부르짖는 목소리도 커지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시정연설로 밝혔고,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 입안을 주도한 이해찬 총리가 연석회의 추진까지 주도함으로써 연석회의가 구성·가동되는 데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합 제안에 대한 메아리가 없다는데 있다. 연석회의에 사회 모든 세력의 힘이 실리려면 정부의 주선이 아니라 사회 모든 세력의 자발성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석회의가 사회적 의제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연석회의는 물론이고 대통합이라는 과제에 대해서조차 거의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에 기대를 거는 것은 유럽에 이와 같은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1938년 스웨덴의 사회협약인 잘츠요바덴 협약,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1967년 독일의 협력적 행동협약, 1995년 역시 독일의 일자리연대, 1980년대 정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한 아일랜드의 국가재건프로그램 협약 등의 사회협약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성공하고 있는 사회 대통합이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회협약 성공의 사례들은 모두 경제를 구성원들 간의 합의에 의해 운영하는 유럽형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축의 하나인 노동조합의 경우 스웨덴 노동조합은 조직률이 80%에 가까우며 실업보험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네덜란드 노동조합은 50년 이상 최고의결기구인 경제사회평의회를 통해 사회적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독일 노동조합은 직업훈련을 사용자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운영하고 있다.
반대한다면 대안 내놔야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선을 맴도는데다, 노조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노사정위원회 운영에서 드러났듯이 타협의 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다. 시민 사회단체의 활동이 과거에 비하면 크게 두드러지고는 있지만, 이들 단체들의 회원수 등에서 가늠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조직률 또한 매우 낮다. 따라서 연석회의가 어떤 합의에 도달하기도 어렵거니와 합의 내용이 실천되기는 더욱 어렵고, 이 때문에 합의자체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정부가 제기한 문제 자체의 엄중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양극화와 갈등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정도로 심각하며, 이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연석회의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전개돼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통합을 제안하자 한나라당은 대연정의 속편이라면서 즉각적으로 거부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가 아닌, 한나라당의 대안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언론인·실업극복국민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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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대통합 정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합 정책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7월 당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안한 네덜란드 식 노사모델이었다. 이 실장은 자신의 제안이 재계,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산업자원부의 반대에 부딪치자 “어느 정도까지 궁지에 몰려야 네덜란드 사람이나 스웨덴, 아일랜드 사람이 발휘하는 지혜를 우리도 발휘하게 되겠느냐”면서 설득 노력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도 노 대통령의 대통합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이것 역시 최근 박근혜 대표와의 청와대 회담을 고비로 무위로 끝났다.
시동 걸린 대통합 연석회의
노무현 정부 들어 특히 강조되는 시대적 화두인 ‘양극화’, ‘갈등’, ‘대통합’ 등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단어이다. 우리 사회는 고소득과 저소득,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여러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사회적 약자의 박탈감을 자극함으로써 산업·계층· 직종·지역·노사·노정·세대간의 갈등을 더욱 일상화시키고, 악화시킨다. 양극화와 갈등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되는 것이 ‘대통합’이다. 따라서 사회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면 할수록 통합을 부르짖는 목소리도 커지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시정연설로 밝혔고,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 입안을 주도한 이해찬 총리가 연석회의 추진까지 주도함으로써 연석회의가 구성·가동되는 데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합 제안에 대한 메아리가 없다는데 있다. 연석회의에 사회 모든 세력의 힘이 실리려면 정부의 주선이 아니라 사회 모든 세력의 자발성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석회의가 사회적 의제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연석회의는 물론이고 대통합이라는 과제에 대해서조차 거의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에 기대를 거는 것은 유럽에 이와 같은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1938년 스웨덴의 사회협약인 잘츠요바덴 협약,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1967년 독일의 협력적 행동협약, 1995년 역시 독일의 일자리연대, 1980년대 정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한 아일랜드의 국가재건프로그램 협약 등의 사회협약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성공하고 있는 사회 대통합이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회협약 성공의 사례들은 모두 경제를 구성원들 간의 합의에 의해 운영하는 유럽형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축의 하나인 노동조합의 경우 스웨덴 노동조합은 조직률이 80%에 가까우며 실업보험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네덜란드 노동조합은 50년 이상 최고의결기구인 경제사회평의회를 통해 사회적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독일 노동조합은 직업훈련을 사용자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운영하고 있다.
반대한다면 대안 내놔야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선을 맴도는데다, 노조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노사정위원회 운영에서 드러났듯이 타협의 문화가 성숙되지 못했다. 시민 사회단체의 활동이 과거에 비하면 크게 두드러지고는 있지만, 이들 단체들의 회원수 등에서 가늠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조직률 또한 매우 낮다. 따라서 연석회의가 어떤 합의에 도달하기도 어렵거니와 합의 내용이 실천되기는 더욱 어렵고, 이 때문에 합의자체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정부가 제기한 문제 자체의 엄중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양극화와 갈등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정도로 심각하며, 이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연석회의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전개돼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통합을 제안하자 한나라당은 대연정의 속편이라면서 즉각적으로 거부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가 아닌, 한나라당의 대안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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