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연 250시간 회의 … 활동평가결과 공개키로
확 달라진 국민은행 이사회
한 제조업체 CEO는 올 초 국민은행으로부터 사외이사 제안을 받았다. 국민은행이 국내 최대 은행인데다 대우도 괜찮다고 판단해 일단 수락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우연한 기회에 예전에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했던 다른 CEO에게 국민은행 이사회에 대한 악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규모가 커서 공부할 게 많고 자주 나와야 한다”는 말이 부담됐다.
이미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수락한 이 CEO는 그날로 “해외진출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사외이사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사외이사들만의 ‘성역’ = 국민은행 이사회가 확 달라졌다. ‘사외이사=거수기’ 등식을 거부하고 나섰다. 권한을 확대했다. 우선 사내이사들이 범접할 수 없게 ‘성역’을 만들었다. 사외이사를 뽑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만으로 구성했다. 과거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은행장도 참여했다.
한 사외이사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하다”며 “은행장이 사외이사를 뽑는데 참여하면 은행장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보상위원회도 사외이사로만 꾸며졌다. 이 위원회에서는 경영성과를 평가하고 보상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평가대상인 은행장이나 상임부행장(두 명)을 제외한 것이다. 평가보상위원회는 은행장과 사외이사 후보군을 평상시에 관리하는 임무도 맡게 됐다. 임기가 끝나거나 중간에 그만둔 후 급하게 찾으려면 적합한 인재를 뽑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를 지원하는 사무국을 따로 뒀다. 예전에는 비서팀에서 맡은 업무였다.
사외이사 모임은 일년에 두 번이상에서 네 번이상으로 늘렸다. 국민은행 이사는 13명이며 이중 9명이 사외이사다. 4명의 사내이사는 은행장, 감사, 부행장 두 명(리스크관리담당 도날드 에이치 맥킨지 부행장, 재무관리담당 신현갑 부행장)이다.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유롭게 말할 시간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사외이사 모임이다.
사무국 최종근 차장은 “사외이사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이사회로 제안돼 있어 독립적인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로 사외이사 모임을 만들었다”면서 “비공식적이지만 여기서 나온 의견은 행장에게 건의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은 ‘무더기’로 = 지난달 28일 한창 회의를 진행중인 국민은행 이사회장에 점심식사가 배달됐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대신하면서 ‘종일 회의’가 이어졌다. 이날 회의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최 차장은 “연구용역결과 해외사례 권고로 ‘이사는 최소한 250시간의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게 포함됐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회사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사외이사에게는 정기이사회 일년에 네 번, 임시이사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기본이다. 네 개의 소위원회 중 두 개씩 맡고 있는데 소위원회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열린다.
회의 준비를 위해 예습을 해야 할 정도다.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는 견제와 균형, 감시와 감독을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회의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장형덕 감사는 “은행업종이 복잡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를 평가하고 지적할 수 없다”면서 “질문도 많아 부행장들도 준비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평가와 주식매입 = 지금껏 사업보고서에는 이사회 안건과 이사들의 출석 여부, 표결 결과 등이 공개됐다. 국민은행은 평가결과까지 올해 사업보고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주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외부로 이사에 대한 평가를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사들에 대한 평가는 이사회에 보고돼 재선임 여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한편 국민은행 이사 중 일부는 보수를 국민은행 주식 매입에 쓰고 있다. 실무는 사무국에서 한다. 지난 3월에 사외이사로 선임된 ‘초임’ 사외이사는 예외다. 김정태 행장시절부터 사외이사를 했던 ‘중임’ 사외이사 중 국민은행 주식이 가장 많은 사람은 김기홍 교수로 2600주다. 차석용 이사가 2490주로 뒤를 이었고 정동수 이사회 의장은 1660주, 전영순 이사는 1590주였다.
한 사외이사는 “김정태 행장 시절부터 이사들이 경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면서 “보수 전부나 일부를 월급날 자동으로 주식매입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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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달라진 국민은행 이사회
한 제조업체 CEO는 올 초 국민은행으로부터 사외이사 제안을 받았다. 국민은행이 국내 최대 은행인데다 대우도 괜찮다고 판단해 일단 수락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우연한 기회에 예전에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했던 다른 CEO에게 국민은행 이사회에 대한 악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규모가 커서 공부할 게 많고 자주 나와야 한다”는 말이 부담됐다.
이미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수락한 이 CEO는 그날로 “해외진출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사외이사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사외이사들만의 ‘성역’ = 국민은행 이사회가 확 달라졌다. ‘사외이사=거수기’ 등식을 거부하고 나섰다. 권한을 확대했다. 우선 사내이사들이 범접할 수 없게 ‘성역’을 만들었다. 사외이사를 뽑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만으로 구성했다. 과거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은행장도 참여했다.
한 사외이사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하다”며 “은행장이 사외이사를 뽑는데 참여하면 은행장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보상위원회도 사외이사로만 꾸며졌다. 이 위원회에서는 경영성과를 평가하고 보상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평가대상인 은행장이나 상임부행장(두 명)을 제외한 것이다. 평가보상위원회는 은행장과 사외이사 후보군을 평상시에 관리하는 임무도 맡게 됐다. 임기가 끝나거나 중간에 그만둔 후 급하게 찾으려면 적합한 인재를 뽑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를 지원하는 사무국을 따로 뒀다. 예전에는 비서팀에서 맡은 업무였다.
사외이사 모임은 일년에 두 번이상에서 네 번이상으로 늘렸다. 국민은행 이사는 13명이며 이중 9명이 사외이사다. 4명의 사내이사는 은행장, 감사, 부행장 두 명(리스크관리담당 도날드 에이치 맥킨지 부행장, 재무관리담당 신현갑 부행장)이다.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유롭게 말할 시간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사외이사 모임이다.
사무국 최종근 차장은 “사외이사들이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이사회로 제안돼 있어 독립적인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로 사외이사 모임을 만들었다”면서 “비공식적이지만 여기서 나온 의견은 행장에게 건의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은 ‘무더기’로 = 지난달 28일 한창 회의를 진행중인 국민은행 이사회장에 점심식사가 배달됐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대신하면서 ‘종일 회의’가 이어졌다. 이날 회의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최 차장은 “연구용역결과 해외사례 권고로 ‘이사는 최소한 250시간의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게 포함됐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회사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사외이사에게는 정기이사회 일년에 네 번, 임시이사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기본이다. 네 개의 소위원회 중 두 개씩 맡고 있는데 소위원회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열린다.
회의 준비를 위해 예습을 해야 할 정도다.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는 견제와 균형, 감시와 감독을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회의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장형덕 감사는 “은행업종이 복잡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를 평가하고 지적할 수 없다”면서 “질문도 많아 부행장들도 준비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평가와 주식매입 = 지금껏 사업보고서에는 이사회 안건과 이사들의 출석 여부, 표결 결과 등이 공개됐다. 국민은행은 평가결과까지 올해 사업보고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주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외부로 이사에 대한 평가를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사들에 대한 평가는 이사회에 보고돼 재선임 여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한편 국민은행 이사 중 일부는 보수를 국민은행 주식 매입에 쓰고 있다. 실무는 사무국에서 한다. 지난 3월에 사외이사로 선임된 ‘초임’ 사외이사는 예외다. 김정태 행장시절부터 사외이사를 했던 ‘중임’ 사외이사 중 국민은행 주식이 가장 많은 사람은 김기홍 교수로 2600주다. 차석용 이사가 2490주로 뒤를 이었고 정동수 이사회 의장은 1660주, 전영순 이사는 1590주였다.
한 사외이사는 “김정태 행장 시절부터 이사들이 경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면서 “보수 전부나 일부를 월급날 자동으로 주식매입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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