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농업예산으론 경쟁력 못갖춰
구조조정·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농업·농민 대책 분리 필요
논란 끝에 쌀협상 비준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10년간 쌀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수입쌀의 의무수입물량은 2014년까지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40만8700톤)까지 늘어난다. 또 가공용으로만 공급하던 밥쌀용 수입쌀 시판물량도 내년에는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확대된다. 우리쌀과 수입쌀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정부는 쌀협상 비준대책으로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농업예산을 투입, 농업구조조정과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농업전문가들은 이같은 예산편성만으론 우리 농업의 체질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간 천문학적 농업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다. 농심(農心) 달래기식 숫자놀음을 벗어나 우리 농업의 미래를 냉정하게 설계하고 실제 경쟁력을 확보할 인프라구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UR 이후, 잃어버린 10년 =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 농업의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향후 10년동안 45조원대 농업구조조정예산을 추가 투입, 관세화가 되더라도 쌀산업이 외국쌀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기간 우리 쌀값은 오히려 2배로 높아졌고 농가부채는 25조원으로 늘어났다. 또 당시 정부는 2004년까지 벼농사와 축산업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업농 15만가구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11월 현재 10만가구 남짓할 뿐이다.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20만명에게 전직교육을 실시한다고 하고도 실제 교육 이수 농가는 지난해까지 4만가구를 넘지 못했다.
장기전략에 입각해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천문학적 농업예산도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구조개선 사업이 아닌 농가 부채탕감이나 소득보전 등 선심성 예산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농업시설 투자나 유통개혁 같은 구조개선용 예산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 지난해 농가부채 탕감과 양곡지원 등에 투입된 비구조조정 예산은 4조원대에 이른 반면 생산기반 조성과 농업인 육성 등 구조조정 예산은 2조500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또 농수산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어민들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식’ 예산집행도 ''10년 허송세월''을 거들었다. 실제 2003년 러시아수역 명태잡이 쿼터가 28%가량 줄면서 어민들이 반발하자 명태잡이 어선을 줄이기 위한 특별 예산 7000억원을 긴급배정했다. 또 같은 해 마늘파동 당시에는 마늘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1조800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도 했다.
◆농업 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신기엽 농협 조사연구소 부장은 “향후 10년이 우리 농업의 존폐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번 국회 비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쌀을 포함한 모든 농업분야가 전면 개방되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정부는 이번 쌀협상 국회비준에 대해 농민들이 왜 자살까지 하면서 극렬하게 반발하는지 그 배경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농업정책이나 예산집행이 경쟁력 강화가 아닌 우는 아이 떡 주는 식으로 쓰여지면서 농정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농민들의 반발 무마를 고려하기 보다는 농촌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종오 농업기반공사 사장도 “정부가 농촌·농업종합대책으로 내놓은 119조원의 투자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안 사장은 “UR 이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예산배정 방식도 하향식보다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상향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우선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119조원의 농업예산도 여기에 맞게 쓰여질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 강화 문제와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을 분리해 예산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엽 부장은 “농업경쟁력 강화문제는 시장논리에서,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 문제는 사회복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책정된 119조원 예산은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프라구축에 집중투입해야 하며 수입쌀 시판과 함께 더욱 어려워질 고령농에 대해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범정부적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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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농업·농민 대책 분리 필요
논란 끝에 쌀협상 비준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10년간 쌀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수입쌀의 의무수입물량은 2014년까지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40만8700톤)까지 늘어난다. 또 가공용으로만 공급하던 밥쌀용 수입쌀 시판물량도 내년에는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확대된다. 우리쌀과 수입쌀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정부는 쌀협상 비준대책으로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농업예산을 투입, 농업구조조정과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농업전문가들은 이같은 예산편성만으론 우리 농업의 체질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간 천문학적 농업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다. 농심(農心) 달래기식 숫자놀음을 벗어나 우리 농업의 미래를 냉정하게 설계하고 실제 경쟁력을 확보할 인프라구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UR 이후, 잃어버린 10년 =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 농업의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향후 10년동안 45조원대 농업구조조정예산을 추가 투입, 관세화가 되더라도 쌀산업이 외국쌀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기간 우리 쌀값은 오히려 2배로 높아졌고 농가부채는 25조원으로 늘어났다. 또 당시 정부는 2004년까지 벼농사와 축산업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업농 15만가구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11월 현재 10만가구 남짓할 뿐이다.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20만명에게 전직교육을 실시한다고 하고도 실제 교육 이수 농가는 지난해까지 4만가구를 넘지 못했다.
장기전략에 입각해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천문학적 농업예산도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구조개선 사업이 아닌 농가 부채탕감이나 소득보전 등 선심성 예산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농업시설 투자나 유통개혁 같은 구조개선용 예산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 지난해 농가부채 탕감과 양곡지원 등에 투입된 비구조조정 예산은 4조원대에 이른 반면 생산기반 조성과 농업인 육성 등 구조조정 예산은 2조500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또 농수산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어민들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식’ 예산집행도 ''10년 허송세월''을 거들었다. 실제 2003년 러시아수역 명태잡이 쿼터가 28%가량 줄면서 어민들이 반발하자 명태잡이 어선을 줄이기 위한 특별 예산 7000억원을 긴급배정했다. 또 같은 해 마늘파동 당시에는 마늘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1조800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도 했다.
◆농업 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신기엽 농협 조사연구소 부장은 “향후 10년이 우리 농업의 존폐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번 국회 비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쌀을 포함한 모든 농업분야가 전면 개방되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정부는 이번 쌀협상 국회비준에 대해 농민들이 왜 자살까지 하면서 극렬하게 반발하는지 그 배경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농업정책이나 예산집행이 경쟁력 강화가 아닌 우는 아이 떡 주는 식으로 쓰여지면서 농정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농민들의 반발 무마를 고려하기 보다는 농촌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종오 농업기반공사 사장도 “정부가 농촌·농업종합대책으로 내놓은 119조원의 투자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안 사장은 “UR 이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예산배정 방식도 하향식보다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상향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우선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119조원의 농업예산도 여기에 맞게 쓰여질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 강화 문제와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을 분리해 예산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엽 부장은 “농업경쟁력 강화문제는 시장논리에서,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 문제는 사회복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책정된 119조원 예산은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프라구축에 집중투입해야 하며 수입쌀 시판과 함께 더욱 어려워질 고령농에 대해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범정부적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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