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
장행훈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황우석 박사의 ‘난자 파동’ 진상이 밝혀지면서 못내 아쉬운 것은 1년 전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문이 처음 제기됐을 때 황 박사가 그 일을 사실대로 설명했더라면 당시에는 다소 논란이 있었을지 몰라도 세계 과학계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스캔들로 확대되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의문이 제기된 지 1년 반 뒤에야 그것도 섀튼 교수의 폭탄선언이 나온 뒤에 시인하게 되니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면서 ‘거짓말’을 한 셈이 됐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진상을 밝힌 미덕까지 평가받지 못하고 변명하는 처지에 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됐다. 황 박사가 난자를 기증한 연구원의 간청으로 사실을 부인한 것이 오늘에 와서는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인식되게 됐으니 더욱 안타깝다.
거짓말은 살인에 버금가는 죄악
한국의 잣대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살인행위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적어도 공인(公人)에게는 그렇다. 분명한 문화의 차이다. 그러나 이 문화 차이는 우리가 결코 가볍게 봐 넘길 수 없는 문화의 차이다. 이것만은 서양의 문화가 우선한다. 우리가 국제교류에서 특히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지금도 30여 년 전 파리 베트남평화회담 취재 때의 한 기자회견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월남전 당시 미군은 하노이의 전의(戰意)를 꺾기 위해 연일 북 베트남을 융단폭격 하던 때였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회담이 끝난 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북 베트남 대변인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베트남의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자’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수십 명의 미국 기자들은 이 비난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도했다. 왜 닉슨이 살인자냐고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북 베트남 대표가 닉슨을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확대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자 미국 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항의했다. 변명으로 발뺌하려던 북 베트남 대변인도 결국 미국 기자들의 항의에 굴복하고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사과했다.
미국 사람이 거짓말을 얼마나 큰 수치로 생각하는지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거짓말은 이미 구약 성경 10계명에서 금했던 행위다. 그만큼 동서고금을 통해 거짓말은 엄중한 금기로 취급돼 왔다. 거짓말을 하는 사회는 부패한다.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있을 수 없다. 공자가 말한 대로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경제력을 측정하는 국민총생산이 단위로 이용되지만 투명을 부르짖는 오늘 날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선진국의 기준은 돈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정직성이다. 북 유럽 국가는 작지만 사회의 청렴도에서 미국이나 일본 중국을 훨씬 앞선다. 그 만큼 더 정직하고 더 선진국이라는 뜻이다.
오늘 날 세계적으로 정치인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보도한다는 신문을 독자들이 믿지 않고 불신하고 그래서 신문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거짓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문이 경영의 위기에 못지않게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거짓말 못하게 교육해야
프랑스의 정치평론가 알랭 에취과양은 이미 10여 년 전 ‘거짓말로 병든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정치인들의 거짓말 때문에 민주주의가 병들고 있다고 고발했다. 여기에 언론의 허위보도 과장보도가 편승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병들게 될 것인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믿고 질서가 유지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정직하고 거짓말을 추방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직한가?’ 연일 신문에 보도되는 정치인의 거짓말, 사기사건, 천여 건의 도청을 해놓고도 시치미 떼는 국정원장들의 거짓말을 보면 우리가 정직한 사회와는 꽤 먼 곳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며 “총체적인 정직운동을 벌어야 한다”는 일부 성직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주장한다.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배게 교육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난자 파동’을 통해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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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황우석 박사의 ‘난자 파동’ 진상이 밝혀지면서 못내 아쉬운 것은 1년 전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문이 처음 제기됐을 때 황 박사가 그 일을 사실대로 설명했더라면 당시에는 다소 논란이 있었을지 몰라도 세계 과학계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스캔들로 확대되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의문이 제기된 지 1년 반 뒤에야 그것도 섀튼 교수의 폭탄선언이 나온 뒤에 시인하게 되니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면서 ‘거짓말’을 한 셈이 됐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진상을 밝힌 미덕까지 평가받지 못하고 변명하는 처지에 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됐다. 황 박사가 난자를 기증한 연구원의 간청으로 사실을 부인한 것이 오늘에 와서는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인식되게 됐으니 더욱 안타깝다.
거짓말은 살인에 버금가는 죄악
한국의 잣대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살인행위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적어도 공인(公人)에게는 그렇다. 분명한 문화의 차이다. 그러나 이 문화 차이는 우리가 결코 가볍게 봐 넘길 수 없는 문화의 차이다. 이것만은 서양의 문화가 우선한다. 우리가 국제교류에서 특히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지금도 30여 년 전 파리 베트남평화회담 취재 때의 한 기자회견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월남전 당시 미군은 하노이의 전의(戰意)를 꺾기 위해 연일 북 베트남을 융단폭격 하던 때였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회담이 끝난 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북 베트남 대변인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베트남의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자’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수십 명의 미국 기자들은 이 비난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도했다. 왜 닉슨이 살인자냐고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북 베트남 대표가 닉슨을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확대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자 미국 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항의했다. 변명으로 발뺌하려던 북 베트남 대변인도 결국 미국 기자들의 항의에 굴복하고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사과했다.
미국 사람이 거짓말을 얼마나 큰 수치로 생각하는지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거짓말은 이미 구약 성경 10계명에서 금했던 행위다. 그만큼 동서고금을 통해 거짓말은 엄중한 금기로 취급돼 왔다. 거짓말을 하는 사회는 부패한다.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있을 수 없다. 공자가 말한 대로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경제력을 측정하는 국민총생산이 단위로 이용되지만 투명을 부르짖는 오늘 날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선진국의 기준은 돈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정직성이다. 북 유럽 국가는 작지만 사회의 청렴도에서 미국이나 일본 중국을 훨씬 앞선다. 그 만큼 더 정직하고 더 선진국이라는 뜻이다.
오늘 날 세계적으로 정치인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보도한다는 신문을 독자들이 믿지 않고 불신하고 그래서 신문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거짓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문이 경영의 위기에 못지않게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거짓말 못하게 교육해야
프랑스의 정치평론가 알랭 에취과양은 이미 10여 년 전 ‘거짓말로 병든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정치인들의 거짓말 때문에 민주주의가 병들고 있다고 고발했다. 여기에 언론의 허위보도 과장보도가 편승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병들게 될 것인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믿고 질서가 유지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정직하고 거짓말을 추방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직한가?’ 연일 신문에 보도되는 정치인의 거짓말, 사기사건, 천여 건의 도청을 해놓고도 시치미 떼는 국정원장들의 거짓말을 보면 우리가 정직한 사회와는 꽤 먼 곳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며 “총체적인 정직운동을 벌어야 한다”는 일부 성직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주장한다.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배게 교육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난자 파동’을 통해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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