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끼호떼 1·2
세르반떼스 지음 /민용태 옮김
/창비 /각권 2만2000원
“죽음도 그의 삶을 죽임으로써/ 승리하지 못한 듯 보이도다./ 온 세상 사람들을 얕보았던/ 그는 온 세상의 허수아비이며/ 무서운 도깨비였다, 좋은 기회를/ 맞았던 그의 운명의 평판,/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산손 까르라스꼬가 적은 돈 끼호떼의 묘비명이다.
마지막으로 세르반테스는 이 위대한 영웅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돈 끼호떼는 태어났고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 그는 행동할 줄 알았고 나는 그것을 적을 줄 알았다. 오직 우리 둘만이 한몸이라 할 수 있으니 … 이미 지치고 다 썩어문드러진 돈 끼호떼의 뼈들을 이제 무덤 속에서 편히 쉬게 하라 …”
◆풍부한 수사법을 살린 완역본 = ‘인류의 책’(A. 티보데)이라 불리는 고전 ‘돈 끼호떼’의 스페인어판 완역본 1·2권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됐다.
미겔 데 세르반떼스가 1605년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돈 끼호떼’(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제목으로 1권을 펴낸 지 400년 만이다.
‘돈 끼호떼’ 1권의 내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중세 ‘기사소설’에 심취한 라 만차의 시골 양반 알론소 끼하노(Alonso Quijano)가 세상의 약자를 구원하고 정의를 드높이고자 하인 산초 빤사와 함께 출정한다.
돈 끼호떼는 자신의 농사용 말(馬) ‘로신안떼’를 타고 스페인 전역을 유랑하며 모험을 벌인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비친다.
그는 여인숙을 성으로 오해하고 그곳의 농사꾼 처녀들을 아름다운 공주로 착각한다. 풍차를 악의 화신인 거인으로 생각해 결투를 벌이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그는 특히 농사꾼 처녀를 자신의 사랑과 충성을 바칠 이상형 여인 ‘또보소의 둘시네아’로 명명하고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불의와 싸운다.
둘시네아는 미모와 덕성으로 늘 돈 끼호떼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도 재미있다.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는 온갖 고생을 겪은 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1권 이야기의 끝이다.
2권(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돈 끼호떼 Ⅱ)에서 두 사람은 다시 출정해 모험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하고 어리석은 산초 빤사는 자신의 주인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진짜 둘시네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면서도 세상의 부를 위해 모험을 계속한다.
두 사람은 세상에 다소의 폐해를 끼치며 복잡하게 변화한다. 산초는 점점 더 뚜렷한 주관과 현실적 판단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되는 반면, 긴 모험 끝에 귀향해 죽어가는 마지막 침상에서 돈 끼호떼는 그동안 자신의 행적이 미친 짓이었음을 고백한다.(제74장 돈 끼호떼가 병들어 누운 이야기와 그가 쓴 유서,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하여)
◆사회구조는 부당해도 개인은 정당할 수 있다 = 세르반떼스는 17세기를 주름잡던 기사소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돈 끼호떼를 썼다고 한다.
이 대작은 인간이 지닌 온갖 허구와 역설을 한몸에 구현한 주인공을 완벽하게 창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선 불후의 고전으로 남았다.
역자인 민용태 교수(고려대 서문과)는 무엇보다 ‘원문의 맛을 살리는 번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40여년 전 스페인 유학 시절 박사논문 주제로 인연을 맺고 1·2권 완역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번 완역본은 중세 소설의 특징인 긴 제목과 원서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원문의 오자와 원 저자의 실수까지 그대로 옮긴 뒤 옮긴이 주를 달아 원서의 참맛을 느끼도록 했다.
언어 유희가 많은 저자의 문체와 수사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우리말에서 유사한 말(사투리·속담 등)들을 찾아 넣고 맥락에 맞는 문장으로 옮겼다.
‘돈 끼호떼’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혀왔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당대를 풍자하는 코믹소설이었지만 1789년 프랑스혁명 무렵에는 상당한 사회적 메시지 - 사회구조는 부당해도 개인은 정당할 수 있다 - 를 지닌 소설로 인기를 누렸다.
20세기에는 단지 독창적이고 위대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 정도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걸작’으로 읽힌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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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떼스 지음 /민용태 옮김
/창비 /각권 2만2000원
“죽음도 그의 삶을 죽임으로써/ 승리하지 못한 듯 보이도다./ 온 세상 사람들을 얕보았던/ 그는 온 세상의 허수아비이며/ 무서운 도깨비였다, 좋은 기회를/ 맞았던 그의 운명의 평판,/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산손 까르라스꼬가 적은 돈 끼호떼의 묘비명이다.
마지막으로 세르반테스는 이 위대한 영웅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돈 끼호떼는 태어났고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 그는 행동할 줄 알았고 나는 그것을 적을 줄 알았다. 오직 우리 둘만이 한몸이라 할 수 있으니 … 이미 지치고 다 썩어문드러진 돈 끼호떼의 뼈들을 이제 무덤 속에서 편히 쉬게 하라 …”
◆풍부한 수사법을 살린 완역본 = ‘인류의 책’(A. 티보데)이라 불리는 고전 ‘돈 끼호떼’의 스페인어판 완역본 1·2권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됐다.
미겔 데 세르반떼스가 1605년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돈 끼호떼’(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제목으로 1권을 펴낸 지 400년 만이다.
‘돈 끼호떼’ 1권의 내용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중세 ‘기사소설’에 심취한 라 만차의 시골 양반 알론소 끼하노(Alonso Quijano)가 세상의 약자를 구원하고 정의를 드높이고자 하인 산초 빤사와 함께 출정한다.
돈 끼호떼는 자신의 농사용 말(馬) ‘로신안떼’를 타고 스페인 전역을 유랑하며 모험을 벌인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비친다.
그는 여인숙을 성으로 오해하고 그곳의 농사꾼 처녀들을 아름다운 공주로 착각한다. 풍차를 악의 화신인 거인으로 생각해 결투를 벌이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그는 특히 농사꾼 처녀를 자신의 사랑과 충성을 바칠 이상형 여인 ‘또보소의 둘시네아’로 명명하고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불의와 싸운다.
둘시네아는 미모와 덕성으로 늘 돈 끼호떼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도 재미있다.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는 온갖 고생을 겪은 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1권 이야기의 끝이다.
2권(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돈 끼호떼 Ⅱ)에서 두 사람은 다시 출정해 모험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하고 어리석은 산초 빤사는 자신의 주인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진짜 둘시네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면서도 세상의 부를 위해 모험을 계속한다.
두 사람은 세상에 다소의 폐해를 끼치며 복잡하게 변화한다. 산초는 점점 더 뚜렷한 주관과 현실적 판단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되는 반면, 긴 모험 끝에 귀향해 죽어가는 마지막 침상에서 돈 끼호떼는 그동안 자신의 행적이 미친 짓이었음을 고백한다.(제74장 돈 끼호떼가 병들어 누운 이야기와 그가 쓴 유서,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하여)
◆사회구조는 부당해도 개인은 정당할 수 있다 = 세르반떼스는 17세기를 주름잡던 기사소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돈 끼호떼를 썼다고 한다.
이 대작은 인간이 지닌 온갖 허구와 역설을 한몸에 구현한 주인공을 완벽하게 창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선 불후의 고전으로 남았다.
역자인 민용태 교수(고려대 서문과)는 무엇보다 ‘원문의 맛을 살리는 번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40여년 전 스페인 유학 시절 박사논문 주제로 인연을 맺고 1·2권 완역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번 완역본은 중세 소설의 특징인 긴 제목과 원서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원문의 오자와 원 저자의 실수까지 그대로 옮긴 뒤 옮긴이 주를 달아 원서의 참맛을 느끼도록 했다.
언어 유희가 많은 저자의 문체와 수사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우리말에서 유사한 말(사투리·속담 등)들을 찾아 넣고 맥락에 맞는 문장으로 옮겼다.
‘돈 끼호떼’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읽혀왔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당대를 풍자하는 코믹소설이었지만 1789년 프랑스혁명 무렵에는 상당한 사회적 메시지 - 사회구조는 부당해도 개인은 정당할 수 있다 - 를 지닌 소설로 인기를 누렸다.
20세기에는 단지 독창적이고 위대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 정도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걸작’으로 읽힌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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