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용서도 사치다!”
유승삼 (언론인·KAIST 초빙교수)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모함’이라고까지 강변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반응을 접하니 태평양 전쟁의 주범 도조 히데키의 손녀 도조 유코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50년을 제 이름조차 숨기며 죽어지내다가 근래 군국주의 부활 분위기에 힘입어 일약, 일본 사회의 지도자로 등장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을 지닌 분이셨다. 그 분이 저지른 죄라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다.” 그 누구의 말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인터뷰를 읽으면서 역시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고 탄복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그녀를 “흠잡을 데 없는 매너와 은퇴한 선생님같은 분위기의 이 작은 여성이 바로 아시아를 들끓게 하고 있는, 일본 내 수정주의 사관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라고 묘사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이 묘사 역시 바로 연상을 불러와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반성 모르는 박근혜 대표
기자가 “히틀러도 그렇게 변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답변했다. “조부님은 동포를 죽이지는 않았다” 이 대목에서만은 우리 경우와 내용이 다르다.
국정원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 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과연 박근혜 대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동안 드러난 그녀의 과거 인식과 태도로 미루어 제대로 된 반성의 말이 나오리라고는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도,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만큼 세월이 흘렀고, 많은 증언도 나왔으며 또 사건의 내용이 너무도 참혹한지라 간단히 유감의 뜻 정도는 표할지 모른다는 짐작도 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였다. 그녀는 ‘유신의 딸’ ‘유신 공주’라는 항간의 지적에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는커녕 발표 내용에 대해서 냉혹하게도 “한 마디로 가치 없는 것”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는 극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발표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번 조사에서도, 그녀의 아버지가 사건을 조작·과장하는 지침을 주고 사형집행을 지시했다는 ‘정황’만 있지 그것을 ‘확인할 문서나 증언은 없었다’. 그러나 8명이 억울하게 숨졌다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던 절대 권력자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의 아버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씨의 발언은 마치 ‘잘못한 게 뭐냐’고 도리어 삿대질하고 대드는 식이다. 감히 밖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속으론 아직도 인혁당 사건 관련자가 ‘죽을 짓’을 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표의 인식과 발언을 통해 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오랫동안 화해와 관용없이, 둘로 갈라져서 사생결단식의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가해자가 지난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려고만 하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전혀 없는 것이다. 피해자는 아직도 과거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불행하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오히려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기만 한 것이다.
관련자·기관, 참회 나서야
과거사 평가에 있어 당시의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재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후세의 오만’도 물론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가해자의 비양심과 후안무치’일 것이다. 그렇게 사건에 관련된 자들이 단계 단계마다 많은데도 국가정보원이 이번 조사에서마저도 확실한 문서나 증언을 못 얻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상황에서는 용서도 사치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에게, 참회하며 죽어 가는 나치 병사에 대한 ‘용서의 용기’를 권하자 이렇게 절규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먼저 사건을 조작·과장한 정치세력, 그것을 집행한 인권 유린자, 그것에 합법성을 부여해준 검찰과 각급 법원의 그 많은 판사들이 줄줄이 고백과 참회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첫 번 째 순서이다. 그것이 용서와 화해의 전제요 절차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사죄는커녕 도리어 ‘모함이다!’라고 외치는 판에 누가 용서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재심조차도 꾸물거리고 있는 판에 누가 화해를 말하겠는가.
아직 우리 상황에서도 역시, ‘용서도 사치’일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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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 (언론인·KAIST 초빙교수)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모함’이라고까지 강변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반응을 접하니 태평양 전쟁의 주범 도조 히데키의 손녀 도조 유코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50년을 제 이름조차 숨기며 죽어지내다가 근래 군국주의 부활 분위기에 힘입어 일약, 일본 사회의 지도자로 등장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을 지닌 분이셨다. 그 분이 저지른 죄라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다.” 그 누구의 말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인터뷰를 읽으면서 역시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고 탄복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그녀를 “흠잡을 데 없는 매너와 은퇴한 선생님같은 분위기의 이 작은 여성이 바로 아시아를 들끓게 하고 있는, 일본 내 수정주의 사관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의 하나”라고 묘사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이 묘사 역시 바로 연상을 불러와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반성 모르는 박근혜 대표
기자가 “히틀러도 그렇게 변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답변했다. “조부님은 동포를 죽이지는 않았다” 이 대목에서만은 우리 경우와 내용이 다르다.
국정원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 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과연 박근혜 대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동안 드러난 그녀의 과거 인식과 태도로 미루어 제대로 된 반성의 말이 나오리라고는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도,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만큼 세월이 흘렀고, 많은 증언도 나왔으며 또 사건의 내용이 너무도 참혹한지라 간단히 유감의 뜻 정도는 표할지 모른다는 짐작도 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였다. 그녀는 ‘유신의 딸’ ‘유신 공주’라는 항간의 지적에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억울하게 숨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는커녕 발표 내용에 대해서 냉혹하게도 “한 마디로 가치 없는 것”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는 극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발표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번 조사에서도, 그녀의 아버지가 사건을 조작·과장하는 지침을 주고 사형집행을 지시했다는 ‘정황’만 있지 그것을 ‘확인할 문서나 증언은 없었다’. 그러나 8명이 억울하게 숨졌다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던 절대 권력자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녀의 아버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행정적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씨의 발언은 마치 ‘잘못한 게 뭐냐’고 도리어 삿대질하고 대드는 식이다. 감히 밖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속으론 아직도 인혁당 사건 관련자가 ‘죽을 짓’을 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표의 인식과 발언을 통해 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오랫동안 화해와 관용없이, 둘로 갈라져서 사생결단식의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가해자가 지난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려고만 하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전혀 없는 것이다. 피해자는 아직도 과거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불행하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오히려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기만 한 것이다.
관련자·기관, 참회 나서야
과거사 평가에 있어 당시의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재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후세의 오만’도 물론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가해자의 비양심과 후안무치’일 것이다. 그렇게 사건에 관련된 자들이 단계 단계마다 많은데도 국가정보원이 이번 조사에서마저도 확실한 문서나 증언을 못 얻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상황에서는 용서도 사치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에게, 참회하며 죽어 가는 나치 병사에 대한 ‘용서의 용기’를 권하자 이렇게 절규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먼저 사건을 조작·과장한 정치세력, 그것을 집행한 인권 유린자, 그것에 합법성을 부여해준 검찰과 각급 법원의 그 많은 판사들이 줄줄이 고백과 참회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첫 번 째 순서이다. 그것이 용서와 화해의 전제요 절차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사죄는커녕 도리어 ‘모함이다!’라고 외치는 판에 누가 용서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재심조차도 꾸물거리고 있는 판에 누가 화해를 말하겠는가.
아직 우리 상황에서도 역시, ‘용서도 사치’일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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